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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un 22. 2020

밀당을 왜 여기서 해

번지수를 잘못 찾았습니다 

마지막 기회다

오늘 4시까지 과제를 내지 않으면 정말 무단 처리된다

.


 더운 날씨에 처음 느껴보는 3월 초의 어색함. 온라인으로는 이미 많은 대화(조금은 일방적인)를 나눴으면서도 마스크 쓴 얼굴을 대면하니 데면데면하기만 하다. 마스크 쓴 얼굴이 겨우 눈에 익었는데 쉬는 시간에 어쩌다가 마스크 벗은 아이의 얼굴을 보니 또 새롭다. 얘가 누군데 우리 반에 있어? 짧은 등교 개학이 끝나고 다시 맞이한 온라인 수업 기간, 온라인 등교 기간에는 씨름(?)도 온라인으로 할 수밖에 없다. 수업을 촬영할 때만 빼고는 여전히 노트북을 열어놓고 진도율을 확인하며 휴대폰으로 연락을 돌리지만 이것도 어느새 2개월째에 접어드니 적응이 되었나 보다.


 여전히 우리 반에는 온라인 과제를 제때 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다른 반에도 많다. 그 누구도 과제 안 하는 게 담임 탓이라고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담임들은 크나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수업을 안 듣고 과제를 안 하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전화를 안 받으면 문자를 남기고, 문자도 안 보면 카톡을 보내고, 부모님께 연락을 드린다. 그런 노력 덕분이라고 해도 될까. 지난주까지 우리 학년의 온라인 과제 이행률은 100%를 달성했다!  


 우리 반 1명과 3반 친구 1명이 정말 끝까지 힘들었다. 학교 나왔을 땐 듣는 척이라도 해주더니 얼굴이 안 보이니 선생님들 전화는 다 수신 거절을 해버리고 카톡은 읽지도 않았다. 어머니께 연락을 드려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너무 힘들다는 말씀만 하셨다. 평소와 말투를 바꿔서 다정함은 하나도 없이 문장 부호도 하나도 없이 '마지막', '정말'이라는 단어를 넣어 카톡을 보냈다. 카톡을 또 읽지 않을 것 같아 마지막에 마침표만 찍어서 보냈다. 얼마 전에 <연애의 참견>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배운 방법이었다. 잠수 탄 남친이 카톡을 읽게 하기 위해 미리보기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마지막에 마침표나 사진 파일을 넣는 것이었다. 


 거짓말처럼 이 기술이 아이에게 성공했다. 좀처럼 카톡을 열지 않던 아이가 바로 메시지를 열어보고 4시 이전에 과제를 완료했다! 마음 졸이는 3반 선생님께도 이 기술을 알려드렸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그 아이에게도 이 기술이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안 보던 아이가 갑자기 메시지를 확인했다고. 엄청난 미션을 성공한 것처럼 기뻐하던 우리를 보고 앞에 계시던 부장님이 웃으며 한 마디 던지셨다.


 "밀당을 왜 여기서 해?"




 결혼을 하면서, 어쩌면 결혼하기 훨씬 그 이전부터 내 인생에서 썸과 연애의 시절은 막을 내렸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머릿속으로는 꽤 여러 명의 남자들을 내 옆에 세워보고는 했다. 나는 연애에 있어서도 억지로 노력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뒤돌아서서 후회하고 몇 달 동안 가슴이 쿵 내려앉더라도 멀어진 상대와 관계를 붙이려는 노력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성 문제로 가슴앓이를 할 때마다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았던 위로처럼 조금만 틀어지면 그저 인연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막연하게 기다렸다. 집에만 있어도 멋있는 남자 친구가 쿵 하고 하늘에서 내려와주길. 


 하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나는 신기하게도 꽤 밀당에 능숙한 편이었다.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카톡이 오는 걸 바로 봤으면서도 미리보기로 슬쩍 확인하고 바빴던 것처럼 답장은 늦게 하기, 먼저 연락하지 않기, 전화가 오면 바로 받지 않고 뜸 들이기, 주말에 다른 일이 있는 것처럼 일단 시간이 안 된다고 말하기. 휴우, 내가 왜 그랬을까. 이런 내 행동이 밀당인지도 모르고, 나는 밀당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밀당 없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는 남편과 이런 연애를 하고 있었으니. 남편 미안...


 뿌린 대로 거두는 격이랄까. 아이들이 연락을 잘 받지 않는다. 3월 초에 인사를 나누기 위해 반 아이들에게 1번부터 쭉 전화를 걸었다. 한 번에 전화를 받은 아이들은 정확히 1/3.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나 싶어 담임이라고 문자를 남겼더니 전화를 걸어준 아이는 단 3명. 사흘에 걸쳐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두 명은 사흘이 지나고도 한참 뒤에야 겨우 통화가 됐다. 도대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마음 졸이면서 응답을 기다리는데 전화를 잘 받지 않았던 과거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왠지 애들도 지금 폰을 손에 들고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벌을 받나 보다. 




 만나면 그래도 잘해주는데 전화를 잘 안 받고 메시지 답장도 늦게 와요.


 언젠가 어디선가 들어봤던 연애 고민이 지금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내 고민과 똑같다. 어머나, 얘네 진짜 왜 이러는 거야. 


 얘들아 너네 밀당을 왜 여기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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