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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un 26. 2020

다시 만난 곱창의 세계

돌고 도는 유행과 함께 추억이 다가온다

 곱창 밴드로 머리를 묶고 다니시는 부장님이 있다. 어쩌다가 그 부장님의 뒷모습을 볼 때면 '나도 예전에 곱창 밴드가 많았었는데'와 같은 생각을 잠시 하곤 했지만 별 뜻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학교에서 제일 어린 20대 선생님도 곱창 밴드로 머리를 묶고 오기 시작했다. 곱창 밴드로 머리를 묶은 두 분의 뒷모습이 눈 앞에 나란히 보였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았는데 신기하게도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마침 '복고 유행' 관련한 글이 보였다. 그중에 내 시선을 확 잡아끈 내용은 역시나 곱창 밴드. 아이유, 제니 같은 연예인들이 하면서 최근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곱창 밴드. 외국어나 외래어를 쓰면 더 세련되어 보인다는 인식은 그간 더 강해졌는지 스크런치, 헤어슈슈라는 이름이 더 많이 쓰여 있었지만 어쨌든 곱창 밴드는 곱창 밴드. 추억의 곱창, 내 머리끈.


 



 중학교 시절, 머리끈은 유일하게 멋 부릴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청소년 화장이 일반적이지도 않았고 복장 규정도 까다로운 편이었기 때문에 모범생의 탈을 뒤집어쓴 소심한 반항아였던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많지 않았다. 귀밑 몇 센티미터라는 숨 막히는 내용 대신 여학생은 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두발 규정이 있는 학교에 다녔던 건 그저 행운이었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는 감사하게도, 머리 길이는 상관없이 단정하게 묶기만 하면 됐다. 게다가 정말 감사하게도, 머리끈 색이나 모양에 관한 규정도 따로 없었다. 발령받은 학교에 여학생은 블라우스 옷깃보다 짧은 단발머리에 머리핀은 검은색으로만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내가 다닌 곳은 그 옛날에 이미 혁신적이었다고 말해도 될 듯하다. 


 학교에 좋아하는 남학생이 생기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거울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과자 상자에 보관하던 곱창 밴드의 수가 하나둘 늘어났다. 매일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오늘은 무슨 머리끈을 할지 생각했다. 어제 무언가 좋은 일이 있었다면 그 즐거움이 이어지길 바라며 같은 머리끈을 하루 더 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흔치 않았다. 어제와 같은 머리끈을 한다는 것은 마치 입었던 옷을 갈아입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름엔 연한 분홍색, 하늘색, 가을엔 카키색, 베이지색 체크무늬, 겨울엔 호피무늬, 검은색, 자주색 곱창 밴드를 즐겨했다. 날이 따뜻해지면 옷이 얇아지는 것처럼 머리끈도 가벼워졌다. 반면 겨울에는 머리카락도 추운 것처럼 털로 만든 머리끈이 유행했다. 팬시점에 갈 때마다 머리끈 디자인이 업데이트되는 걸 확인했다. 금빛 나는 작은 금속이 달랑거리게 붙은 것도 있었고 아기자기한 그림이 한가운데 덧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머리숱이 없는 편이라 곱창 밴드를 세 번 정도는 묶어야 흘러내리지 않았는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 보니 머리를 예쁘게 묶는 방법이 따로 있었다. 먼저 작은 머리끈으로 머리를 단단하게 묶고 그 위에 곱창 밴드를 두 번 정도 돌려 모양만 내는 방법이었다. 머리를 다 묶고 난 뒤에는 윗부분의 곱창 부분을 손가락으로 쭉쭉 당겼다. 곱창의 풍성함이 살아있도록 틈날 때마다 어루만졌다. 


 돈이 생길 때마다 펜이나 필통, 머리끈을 사는 게 학창 시절 나의 소비패턴이었다. 당시 머리끈은 보통 1,000~2,000원이었는데 곱창이 풍성하거나 뭔가 덧붙은 경우에는 3,000원을 훌쩍 넘어갔다. 3,000원이 넘는 머리끈이 마음에 들어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던 나는 그걸 선뜻 사지 못하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큰 결심을 내려야만 했다. 검은색에 통통한 패딩 재질로 만들어진 데다가 가운데 하늘색으로 여자 그림이 붙어 있어 4,000원 정도 하던 곱창 밴드를 사던 날은 큰맘먹고 명품을 장만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 명품 곱창 밴드의 흔적이 중학교 졸업식날 졸업장을 받는 내 뒷모습 사진에 남아 있다. 


 동그랗고 꽤 깊었던 과자 상자 안에 하나둘 모았던 곱창 밴드는, 고등학생이 된 내가 머리끈보다는 점수와 등수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잊혔다. 유행도 바뀌면서 머리끈의 부피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작고 심플한 머리끈이 대세인 듯한 분위기에서 과거의 곱창 밴드는 그저 과거 추억으로, 이제 하기엔 너무 촌스러운 지난 유행으로만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미련 가득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나는 곱창 밴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막상 버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버리고 그 당시의 곱창 밴드는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그 상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이 나는데, 버린 기억도 없고 어디에 놓아둔 기억도 없다. 그냥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곱창 밴드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고 중학교 시절 그 과자 상자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그 상자를 잊은 채로 약 20년을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그 속에 있던 머리끈 모양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그 상자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버려졌을까. 중학교 시절 이후로 내가 거쳐온 거주지들을 하나둘 떠올려 보지만 여전히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2000년대 중반, 대학교 신입생 시절 사진을 보면 나는 나팔바지를 입고 있다. 허벅지 부분은 다리에 딱 달라붙고 아래로 갈수록 통이 무지 넓다. 지금 봐도 다리가 참 길어 보이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너무 촌스럽다. 이 바지를 입고 있는 것만 봐도 30대 이상, 이른바 옛날 사람 인증을 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얼마 전부터 다시 나팔바지가 유행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주위에는 별로 입는 사람이 없다. 쇼핑몰에서 검색해 보니 그 당시 내가 입었던 나팔바지보다 통이 훨씬 좁은 것 같아 이게 무슨 나팔바지인가도 싶다. 


 스키니진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촌스러워진 나팔바지를 엄마는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유행은 돌고 도는 거니까 언젠가 다시 이 나팔바지를 찾게 될 날이 있을 거라고.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지만 그 돌고 도는 주기 속에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70년대, 80년대 유행이 돌아왔지만 그 시대에 대한 추억은 없었으므로. 그런데 지나온 삶이 길어지니, 돌고 도는 유행과 함께 그 시절의 추억이 다가온다. 


 옷장 아래 서랍에는 신입생 시절에 입었던 청 나팔바지가 아직 고이 잠들어 있다. 유행이 돌고 돌아 다시 그때처럼 아래가 아주 넓은 나팔바지가 유행하게 된다면 그 서랍 속 나팔바지를 깨워봐야지. 하지만 장담하건대 나는 그것을 입지도, 입어보지도 못할 것이다. 시간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처럼 체중계 바늘 또한 마찬가지라. 추억이란 그런 것일까. 유행이 돌고 돌며 건드려주지만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그 시절을 더 아련하게만 느끼게 해주는, 그런 것일까. 


스무 살 내 바지는 나팔바지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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