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조 Jul 10. 2020

당당한 뚜벅이로 우뚝 서다

무면허 두 다리 운전자로 살아가다 

 "내가 하는 거면 다른 사람도 다 할 수 있어!"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난이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을 가끔씩 알아차리게 되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내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이런 말을 한다고 탓할 것도 없다. 


 내가 운전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마다 사람들은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자기도 하는 일이니 내가 못할 리가 없다며 어깨까지 토닥여준다. 운전을 포기했다는 말에 포기는 배추 셀 때 쓰는 말일 뿐이라며 그 옛날 유행어까지 들먹이기도 한다. 뭐 어쨌든,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돈을 벌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다. 말은 안 해도 내심 대학 시절 면허를 따고 운전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웠나 보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남자의 모습을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자세를 내가 직접 해보고 싶었다. 그런 자세를 취할 때는 목선이 잘 드러나도록 머리를 묶어야겠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적지 않은 학원비를 지불한 후, 허름한 강의실에서 오래된 영상을 보며 두세 시간 정도 필기시험 대비 수업을 들었다. 교재를 대충 한 번 읽어보고 필기시험을 봤는데 95점을 맞았다! 커트라인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확인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가 운전에 재능이 있는 걸까? 약 10년 전, 내가 운전 학원에 다니던 시절은 면허 따기가 비교적 쉬웠다. 장내 기능 시험이 50m 전진 후 깜빡이를 켜면 끝났기 때문이다. 운전석에 처음 앉아 매뉴얼대로 몇 번 연습을 해보니 머릿속에 착착 정리가 됐다. 장내 기능 시험도 한 번에 합격했다. 역시 내가 운전에 재능이 있는 걸까. 어려서부터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범퍼카를 꼭 타는 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운전이라고는 50m 전진 후 깜빡이 켜는 것밖에 해보지 못했는데 바로 도로로 나가보란다. 첫 시간에는 처음이라 못하는 줄 알았지만 두 번째 연수 때도, 세 번째 연수 때도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생님은 매 시간 달라졌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질 만큼 긴장해서 겨우 도로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면 주차를 해보라는데 매시간 내 머리는 다시 시작이었다. 선생님은 이전 선생님이 주차도 안 가르쳐줬냐면서 어이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 번은 도로 위에서 옆에 앉은 선생님으로부터 평생 잊지 못할 말을 듣고 말았다. 선생님은 내가 운전하기에 최악이라고 했다. 보통 20대 초반에 면허를 따러 오는데 나는 20대 중반에 갔으니 비교적 나이가 많은 데다가(뭐가 그렇게 나이가 많다고!) 겁도 지나치게 많고(속도가 조금만 빨라지거나 옆 차가 가까이만 와도 벌벌 떨었으니) 운동 신경이 제로라(어떻게 알았지?) 나 같은 사람은 운전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뒤늦게 곱씹어봐도 정말 기분이 나쁠 만한 말인데 그 당시의 나는 이보다 객관적인 평가가 어디에 있을까 싶은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선생님의 돌직구 때문에 운전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잔뜩 주눅 든 채로 학원 셔틀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셔틀 봉고차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는데, 복정에서 잠실로 가는 동부간선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차가 멈췄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며 기사 아저씨도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하셨다. 이십 분 넘게 기다리다가 다른 봉고차가 와서 옮겨 타는데 왠지 차가 고장 난 게 운전하기에 최악이라는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사건 겨우 하나로 포기라는 단어를 쉽게 꺼내는 내가 아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대전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나는 정확히 문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빠르게 바뀌어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있던 그때,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기사 아저씨는 난감해하시며 갓길에 버스를 세우셨다. 삼십 분 정도 고속도로에서 대기하다가 다른 버스로 갈아타는데 문득 이것은 하늘의 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로 주행 연수를 시작하고 두 번이나 연달아 내가 찬 타가 고장 나고 있었다.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운전을 그만두라는 하늘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버스 사고까지 겪고 나서 도로 주행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내가 면허 따는 일을 포기한 후에는 차가 고장 나는 일도 없었다. 내가 원래 이렇게 포기가 빠른 사람이었던 건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목선이 잘 드러나는 그런 자세를 취하지 못하는 건 여전히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런데 내가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차가 쾅하고 내 차를 박아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부터 차가 없었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에 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야 하니 몸은 편한 것도 사실이다. 감사함이 메말라가는 일상에서 운전자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또 운전을 못한다는 이유로 직장 가까이에 집을 구하고는 한다. 걸어서 출퇴근하며 캐시도 쌓는다. 장담하건대 내가 운전을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뚱뚱했을 거다. 급한 일이 있을 땐 호출부터 결제까지 가능한 앱을 안전하게 이용하면 된다. 운 좋게도 정규 속도를 준수하며 운전을 어려워하지 않는 남편을 만나 나는 편하게 조수석을 지키면 된다. 휴, 다행이다. 이렇게 나의 실패를 합리화해본다. 


나도 이렇게 핸들을 잡고 싶었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만난 곱창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