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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Oct 07. 2019

기억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언제나 그때 그 기억의 색깔 

 같은 수업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어떤 예시를 드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과 전달 효과는 천지 차이가 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친근하면서도 자극적이고 시기적절한 예시가 무엇이 있을지 쉬는 시간마다 머리를 굴려 본다. 소설의 기본 개념을 설명할 때마다 나오는 용어가 있다. 평면적 인물과 입체적 인물. 이 개념이 나올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같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나온 친구가 지금 교실에 있는지 물어보곤 한다. 처음 보는 용어에 지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가도 이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의 표정이 180도 바뀐다. 같은 동네에서 쭉 자라서인지 10년 지기 친구라며 여기저기로 손가락질하며 유치원 동창이라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서로 어릴 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걸까. 깔깔거리며 웃기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성격 변화에 중점을 두고 설명해야 하는데 이야기는 잠시 샛길로 빠져버린다. 


 "와, 그러면 혜영이랑 친구가 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네! 혜영이는 유치원 때 어땠어?"

 

 "쟤는 4살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진짜 그대로, 크기만 커졌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반배정을 받고 교실에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에 3년 정도 같이 다녔던 남자애가 같은 교실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서 이사를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남학생도 나처럼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니! 내성적으로 성장한 나와 다르게 유난히도 활발해진 남학생이 유치원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라도 가져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남몰래했다. 소풍 갔던 날 모자를 제대로 쓸 줄 몰라서 그냥 머리 위에 어설프게 올려놓았을 때, 합창을 하면서 누구 입이 가장 큰지 경쟁이라도 하듯 정말 큰 입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그런 순간이 담긴 유치원 시절의 사진에 그 남학생과 내 모습이 나란히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학생은 내가 자신과 같은 유치원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잠깐 소문내기는 했지만 다행히 사진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너무나 달라졌던 우리 둘 사이의 교류는 역시나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 남학생이 여전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중학교 같은 교실에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은 사이지만 같은 유치원 출신으로 3년을 가까이서 보냈다는 기억이 그저 막연하게 친근하다. 그리고 내가 다시 본 그 남학생의 모습도 중학생이라고 하지만 유치원 때 그대로였다. 그 남학생의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였을까. 




 

 지난겨울의 어느 날, 늦잠을 자고 소파에 늘어져서 휴대폰을 보며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가 갑자기 번쩍 하고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웬일인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십여 년 전에 네이버 쪽지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흔적을 찾았다. 우리 인연의 끈이 기억 속으로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잡고 싶었다. 다행히도 쪽지 보관함에 아직은 언니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쪽지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에 한 번 더 도전해보자고 생각한 건, 꽃 피는 4월이었다. 뒤늦게 들어간 재수 학원에서 우연히 나는 이른바 장수반에 배정받게 되었다. 재수생은 나까지 단 두 명뿐,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45세라고 했다. 청소년의 끝자락에서 뜻하지 않게 다시 막내가 된 나를 언니, 오빠들은 뭘 해도 귀엽게 봐주었다. 어떤 방법이었는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리를 바꿨는데 그때 짝꿍이 된 사람이 바로 정은 언니였다. 28살의 나이로 대학교를 이미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다가 어릴 적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던 약사라는 꿈을 늦게라도 이루고 싶다며 재수 학원에 다니고 있는 언니였다. 


 언니는 내가 자신의 막내 동생보다도 어리다며 늘 친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내가 졸고 있으면 시큼한 걸 마시고 잠을 깨라며 오렌지 주스를 책상 위에 놔주었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에는 깜짝 선물이라며 당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가수 쿨의 베스트 앨범 시디를 건네주기도 했다. 또, 신입생 생활을 즐겁게 하는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라면서 싸이월드 미니룸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고 간간이 연락을 이어오다가 나의 지나친 무심함에 우리는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스무 살이었던 내가 대학교 졸업반이 되고 나름대로의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언니는 먼저 연락해서 청첩장을 보내줬다. 그런데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고 봉투를 한 기억도 없는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언니를 좋아하는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는데. 


 가끔씩 언니가 떠오를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침을 삼킬 뿐이었다. 그렇게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나의 근황을 가득 담은 쪽지를 언니에게 보내 놓고 수시로 수신 확인을 해봤지만 언니는 좀처럼 확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보낸 쪽지도 기억에서 차차 흐려져가고 있던 6월, 금요일 저녁에 웬 연수냐며 툴툴거리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카톡이 왔다. 남편이 쪽지를 보고 알려줬다면서, 이제야 쪽지를 봐서 미안하다고, 언니 역시 흥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언니를 만나기로 한 날. 나는 아침 일찍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에 가서 카스텔라와 소보루 빵을 샀다. 이제 와서 그 옛날의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고작 이런 것밖에 없었다. 언니네 동네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만나면 뭘 먹을지에 관한 카톡을 계속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한 정거장 남았다는 내 말에 언니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00야, 너 나 알아볼 수 있겠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면 늘 앉아 있던 언니의 모습을 내가 잊었을 리 없었다. 무조건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언니 역시 같은 생각이었을까. 질문에 이어 언니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너 무조건 알아볼 수 있는데 ㅋㅋ"


 지하철 개찰구를 나가기도 전에 우리는 서로 저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손부터 흔들다가 문득 언니랑 나이가 8살 차이라는 걸 깨닫고는 뜬금없이 목례를 했다. 언니는 그때처럼 날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정말 그대로다! 하나도 나이 안 먹은 것 같애."

 "언니야말로. 언니는 더 젊어지신 것 같은데요? 더 예뻐지신 것 같아요!"

 "야, 이제 나 40대야. 그런데 너 말은 더 느려졌다."



언제나 이 모습일 수 있다면


 



 그대로라는 말이 싫었다.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 싫었다. 대학생이 되고 친구들 대부분 살이 빠지고 예뻐졌는데 나만 발전이 없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는 같은 내용의 말에 이토록 안도감이 들고 기분이 좋은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기억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언니의 기억 속에서 나는 감사하게도 15년 전처럼 여전히 스무 살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그 기억의 색깔로 바라본 걸까. 중학생이 된 친구를 네 살 때 모습이랑 똑같다고 이야기했던 우리 반 아이들처럼. 


오답노트를 만들던 스무 살 내 책상, 옆에 보이는 책 주인이 바로 정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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