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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an 26. 2021

기억과 에너지의 상관관계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지난주에 시작한 책상 정리가 끝날 것 같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이틀 정도 좀 하다가 이래저래 또 다른 일들의 우선순위에 밀려 손대지 않고 있다. 이 작은 공간 안에 무슨 물건이 이렇게나 많은지. 누가 들으면 내 책상이 태평양처럼 넓은 줄 알겠다. 


 책꽂이 사이사이에 여러 권의 노트가 숨어 있었다. 어려서부터의 습성이 끈기 부족인 걸까. 몇 장 풀다 만 문제집이 많은 것처럼 몇 장 쓰다 만 노트가 대부분이다. 어째 끝까지 쓴 노트를 찾기가 힘들다. 노트를 다 쓰지도 않고 새것을 계속 살 만큼 내가 사치스럽거나 끈기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걸까. 아마도 노트를 다 쓰기 전에 시험이 끝나버렸거나 범위에 비해 노트 종이가 너무 많아서, 그래, 그래서 그랬다고 하자. 책꽂이에 남아 있는 노트 중에는 아직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도 있고 전혀 기억에 없는 것도 있었다.




 어르신이 젊은이들에게 해주는 충고 중에 '어제 일은 기억이 안 나도, 오래전 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어르신 말씀에 벌써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모든 게 새로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시간의 간극이 아득하게 멀어져도 해상도가 떨어지지 않는데 어제 무얼 했는지, 지난 주말엔 무얼 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일에 에너지를 덜 쓰게 되는 탓일까. 어쨌든 이 어르신 말씀은 할 수 있을 때 더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게 좋다는 맥락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오늘을 살면서도 머릿속엔 한참 지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모습이 겹쳐져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수험 생활을 할 때 정리하던 노트는 작성 방법과 표지 이미지까지 아직도 명료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반면에 문제만 오려 붙인 파견 시험 준비 정리 노트, 자격증 면접시험 준비 정리 노트 같은 것들은 몇 쪽 사용하지 않은 만큼이나 기억에도 전혀 없었다. 준비가 미흡했던 만큼 결과가 안 좋은 것도, 결과에 상처 받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기억 매개체로 나타난 노트를 펼치고 그때의 기억을 애써 떠올려 봤다. 세세한 부분은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의 내가 그 부분에 에너지를 덜 쏟은 것이 확실했다. 그만큼 기억의 양도 적었고 해상도 역시 좋지 않았다.


 많은 에너지를 쏟은 부분은 신기하게 이런 부분까지 기억이 난다 싶을 정도로 떠올랐다. 노트뿐만 아니라 친구에게 받은 편지도, 선물도, 학창 시절 성적표도 그러했다. 에너지의 양과 기억의 해상도는 어느 정도의 비례 관계가 성립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새로울 것도 없고, 결국 자이가르닉 효과 같은 내용이다. 방향을 바꿔서 보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기억이 나는 경험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어쩌면 그 사람에게 혹은 그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서랍 뒤로 많은 것들이 넘어가서 맨 아래칸 서랍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긴 자와 등 긁개까지 동원해서 하나씩 끄집어냈다.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주사위부터 시작해서 눈금이 다 지워진 자, 모서리가 다 닳아버린 지우개, 그리고 수학 시험지가 나왔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수학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땐 수학교육과 사람들이랑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매주 화요일 아침 8시마다 시험을 봤었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수학도 못하는데 원서로 진행되는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험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즈음 어느 날의 시험지였다. 벡터라는 건 그래, 용어는 좀 기억이 나는데 코시 슈바르츠? 그런 사람도 내 삶을 스쳐 지나갔다니 그저 새로울 뿐이다. 


 서랍에 수학 시험지를 넣어 놓았다는 것도, 수학 시험의 내용도, 당시의 분위기도 전혀 기억에 없다. 내가 떠올린 기억과 에너지의 상관관계에 따라 나는 에너지를 덜 쏟은 것이 분명하다고, 갑자기 불쌍해진 나를 토닥여본다. 점수는 53점이었다. 물론 이보다 낮은 점수도 여러 번 맞아 봤지만.(ㅎㅎㅎ)


반타작이어도 지금 보면 그저 멋있기만 하다, 맞은 부분만 보이도록 찍은 사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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