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분 있는 선생님 한 분이 만날 때마다 부동산에 관한 조언을 하신다.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됐고 정말 나를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하시는 조언이라는 걸 알기에 기꺼이 듣는다. 또 어느 순간부턴가 나도 부동산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결론은 언제나 '지금이라도 얼른 집을 사라'로 끝났고 자연스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헤어졌지만 몇 달째 실행에 옮기지 않으니 꽤나 답답하신가 보다.
"그러다가 진짜 후회한다. 지금도 그래. 결혼할 때 내 말대로 집을 샀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이었다. 자금이 부족한 건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말씀대로 결혼할 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면 지금쯤 대출금은 거의 갚았을 것이고 집값은 껑충 올라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았던 오래된 아파트 값도 최근 재건축 말이 나오면서 저 멀리 올라가 버렸다. 당연한 사실이었고 이제 와서 말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이야기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대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저는 후회 안 해요."
정신을 차려 보니, 맞는 말이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땐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 그런 선택을 한 거였으니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말을 내가 내뱉고 있었다. 주위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들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성격이 아주 좋다는 이상한 말들을 하셨다. 웃는 얼굴로 뒤돌아 나오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되짚어봤다. 이렇게 때로는 말을 먼저 하고 생각이 따라오는 경우가 있다.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다 그때마다의 이유가 있었고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다시 이 자리로 올 것 같아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직업을 가지는 과정에서도 참 많은 방황을 했다. 어린 시절의 얕았던 꿈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영어와 사회 과목을 좋아하며 수포자로 살았던 중학교 시기가 있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 수학선생님을 장래희망으로 삼았다. 막상 대학에 갈 시기가 되자 수학교육과에 점수가 안 되면 수학과, 아니면 무슨 과라도 상관없으니 공대라도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걸 보면 내 꿈은 수학선생님이 아니라 대학 입학이 아니었나 싶다. 우여곡절 끝에 국어교육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동기들이 임용 준비를 할 때는 또 다른 원대한 꿈을 품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참 많이도 크게 돌고 돌았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남들보다 출발선이 뒤에 있는 걸 확인할 때마다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동기들처럼 착실하게 시험 준비를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시간만 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같은 과정이 반복될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잘 저장해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오히려 더 많이 방황하며 돌고 돌게 될지도 모르겠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볶음밥을 먹을지, 물냉면을 먹을지 비빔냉면을 먹을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도 어려움을 겪는 내가 수 억 원 하는 집을 철썩 계약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주위 집값이 많이 올라서 걱정되는 마음은 크지만 그건 애초에 내 돈이 아니었다. 그러니 집을 사지 않았다고 후회할 일도 없지 않을까. 그런데, 시간을 되돌린다면 집을 사긴 샀을 것 같다(!) 아휴, 남들이 보기엔 참 갑갑할 만하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내용을 재잘재잘 늘어놓자 남편이 나를 '조 피아프'란다. 피아프 노래를 부르라는 말에 또 깔깔 웃어버렸다. 종업식 때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 늘어놓다가 신규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4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전달했다. 처음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대단하다고 말하다가 아끼던 스티커 생각이 났다. 최애 캐릭터의 나름 한정판 스티커였는데 아이들에게 주는 편지에, 여기저기에 인심 좋게도 붙여줬다. 나는 가장 아끼는 스티커를 붙여준 거였지만 아이들은 그 캐릭터가 누군지도 몰랐다. 아, 그 스티커를 괜히 붙여줬던 거야. 그때 남편이 질문을 던졌다.
"지금 후회하는 거예요?"
괜히 붙여줬다는 생각을 한다면 후회한다고 대답해야 하는 걸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말과 일치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몇 억 단위의 집값에는 무심하면서도 몇 천 원하는 스티커 생각에 이런 마음이 드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작고 미약한 존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