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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ug 12. 2020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집착하는가

어느 날 옷 보따리를 싸면서

 작은방 하나를 옷방으로 쓰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빈틈이 없다. 매주 빨래한 옷을 들고 어디에 걸어야 하나 헤매다가 자리가 없어서 옷장에 걸려 있는 옷들을 양쪽으로 밀었다. 인정사정없이 그냥 계속 밀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나 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옷이 많은 것도 아니다.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어딘가 나가려고 하면 또 마땅한 옷이 없다. 옷이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는 게 사실이었다.


 일요일에 빨래를 정리하다가 남편이 웬일로 옷을 좀 정리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내 옷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면서. 안 입는 옷을 한두 벌 꺼내 의류보관함에 넣을 생각으로 옷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누레진 하얀 옷을 보면서 이제 진짜 흰색은 사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한다. 몇 번째 하는 생각인지. 20대 때 입던 옷 중에 왠지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못 입는 것들도 있다. 옷이 너무 어려 보인다고 할까. 그런 스타일도 과감히 꺼냈다. 작아져서 못 입는 옷도 그동안 하나도 버리지 않았었다. 살 빼서 다시 입을 생각이었는데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몇 년 살아보니 살 빼는 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아진 옷도 과감히 꺼냈다. 방이 순식간에 버리는 옷으로 가득해졌다.


 이렇게 대대적인 정리를 한 게 내 일생에 처음인가 보다. 스무 살 때 입던 옷부터 기어 나왔다. 그때도 나는 내가 그렇게 날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 사이즈의 옷을 입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스무 살에 한창 유행하던 벨벳 운동복을 동대문에서 산 적이 있었다. 검정 벨벳에 어깨랑 다리 옆선에 노란 두 줄이 쳐져 있는 디자인이었다. 바지는 당연히 나팔 스타일.(ㅎㅎ) 상점 아주머니께서 페라가모 상표를 몇 개 주시면서 이걸 붙이면 사람들이 정말 이 옷이 페라가모 것인 줄 알 거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반짇고리를 꺼내시더니 목덜미에 진짜로 이 상표를 붙여주셨다. 그 이후로 이 운동복은 페라가모 옷이 되었는데, 이게 아직도 옷장에 남아 있었다.


 옷마다, 가방마다, 신발마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사연들이 같이 나타나는 바람에 정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때 내 곁에 있었던 물건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기억 매개체였다. 이 기억 매개체들을 정말 버리는 게 맞을까. 고민하다가 옷장에 생기는 여백에 시원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하나씩 바닥으로 던졌다.


 그런가 하면 정말 돈이 아까운 것도 많았다. 사서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도 은근히 꽤 있었다. 작년의 어느 날 새로 알게 된 쇼핑몰에서 원피스를 세 개나 주문했는데 입어 보니 다 어울리지 않았다. 모델이 입은 걸 봤을 땐 괜찮았는데 싶은 생각에 나도 살을 빼면 잘 어울리겠지 하는 괜한 기대감으로 옷장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옷들, 빨래가 번거로워서 안 입는 두꺼운 니트, 한번 입고 나니 다림질하기 귀찮아서 옷걸이에만 걸어놓은 블라우스 등, 멋쟁이가 되기에 나는 너무나 게으르다.


 초대형 김장 비닐을 두 봉지 사서 채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이 두 봉지가 가득해졌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업체에서 헌옷을 수거해 가면서 킬로당 약간의 돈까지 준단다. 처음에 본 포스팅에서 킬로당 400원이라는 말을 보고는 그래도 내 헌옷이 만 원 남짓의 돈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에 마음이 기뻐졌다. 무게를 더 늘리고 싶어 고민하던 옷들도 비닐봉지로 직행할 수 있었다. 약 30킬로까지 채웠다. 어느 업체를 부르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을 수 있을까 메모하며 여기저기 단가를 알아봤다. 결과적으로 올해는 어느 업체든 다 킬로당 100원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수출이 어려워서 그렇단다. 헌옷 값으로 사 먹을 치킨을 떠올리다가 햄버거도 하나 못 사 먹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묵은 옷들을 비워내다, 드디어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려고 한다. 예금 금리를 찾아보다가 제2금융권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지점마다 금리가 다른데 우리 집 앞에 있는 지점은 1.5프로. 그런데 조금 멀리 있는 지점은 금리가 1.95프로! 가야만 했다. 비도 그쳤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고 무작정 걸었다. 거의 1시간을 걸었나 보다. 두리번거리며 처음 가보는 동네를 지나 금리가 높은 지점에 도착했다. 은행에서 나오는데 다시 걸어서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조금 막막한 심정이다. 경로를 약간 바꿔서 잠깐 서점 구경을 하고(책 표지 구경을 좋아함ㅎㅎ)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샌드위치를 샀다. 1시에 나갔다가 5시 반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걸으니 다리가 시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오니 쩌릿쩌릿하다.


 뿌듯한 마음에 자랑을 했더니 남편은 잘했다고 하면서도 뭐하러 그렇게 고생을 하냐는 투다. 주위 사람들은 그러지 말고 일단 얼른 집을 사란다. 내 집이 아니라 은행 집이라고 말하면서도 최근 더 가파르게 치솟는 집값을 검색해 보며 꽤나 뿌듯한가 보다. 셈에 둔한 내가 보기에도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은다는 건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집을 갖기 더 어려워지고만 있는 상황에서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냥 조금 걱정이 된다. 그래도 뭐 어떻게 살아가겠지.



 

  몇 만 원씩 주고 산 옷을 100원이라도 더 받고 팔겠다고 옷 보따리를 싸면서, 예금 이자 몇 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은행을 검색하면서 왜 나는 이렇게 조그마한 일에만 집착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보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요즘 말에 더욱 공감이 되는 지금, 왜 나는 이렇게 조그마한 일에만 집착하는 걸까. 그러면서도 이 순간의 최대 고민은, 오늘 뭐 먹지?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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