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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Sep 26. 2020

브런치와 함께한 일 년

가늘지만 길게 

 2019년 10월 1일 브런치 탄생 


 브런치 첫 돌이 며칠 남지 않았다. 어쩌다가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는지 안타깝게도 작년 9월 말의 기억은 빈칸으로 남아 있다. 뭐에 홀린 듯이 '글을 쓰고 싶은 이유'와 '그리고 그 시대의 열정'이라는 글 두 편을 순식간에 써 내려갔고 작가 신청을 했다. 여기서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되겠지' 하는 생각은 검색이 이어질수록 자신감을 잃어갔다. 스스로는 글을 그리 못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칭찬을 듣거나 인정을 받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신규 때 교지를 만들면서 당시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국어적 표현을 못한다'는 뒷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국어 교사에게 '국어적 표현을 못한다'는 말은 꽤나 큰 상처를 남겼다. 진짜 잘하든 못하든 그건 두 번째 문제였다. 


 그 어떤 일도 한 번에 이뤄낸 게 없는 내가 감사하게도 브런치에는 단번에 합격했다. 그동안 글을 남길 공간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던 것처럼 퇴근하고 남편이 오기 전까지 일주일에 두세 편씩 숨 가쁘게 글을 토해냈다. 대학교 때 하던 블로그를 임용 공부를 하며 닫은 이후로 이렇게 내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실은 마음속에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는지 쓰고 또 써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다. 이렇게 빨리 다 써버리면 금방 할 말이 없어질 것 같은데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역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SNS를 하다 보니 처음엔 '구독'이니 '라이킷'이니 하는 개념도 조금 생소했다.(원시인이었단 말이냐!) 고백하건대 작년에 브런치 앱을 깔고 손가락을 위로 움직이면 화면이 바뀌는 것도 한 달 가까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손가락을 옆으로만 움직여보다가 화면이 바뀌지 않으니 이건 뭐하는 앱이냐고 혼자 투덜거릴 정도였다.(원시인이었던 게 맞나 봄)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의미만으로도 글을 쓰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글쓰기를 지속할 만한 동기가 부족했다. 글을 남기기 시작하고 감사하게도 구독자가 한 명, 두 명씩 늘어났지만 라이킷을 눌러주신다거나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은 한동안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브런치 나우에서 구세주와 같은 분을 만나고 말았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이름이 제목에 있어서 눌러보았던 게 시작이었다. 늘 밝고 유쾌한 글로 긍정 바이러스를 전해주시는 @꽃뜰 대선배님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시기에 학교 행사가 있었던 것도, 선배님께서 그 시간에 글을 남기신 것도, 내가 그 시간에 브런치 나우를 확인하게 된 것도 그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선배님께서 남겨주시는 유쾌한 댓글 덕분에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게 더 재미있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브런치 여행을 하다가 @강신옥 선생님 브런치에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글을 10편 정도 올렸지만 댓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는 내 브런치와는 다르게 수십 개의 댓글이 이어지는 모습이 부럽고도 신기해 나도 댓글창을 열어봤더랬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칭찬에 글 쓰기를 좋아하게 됐다는 글의 내용에 다른 작가님들의 비슷한 경험이 댓글로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 '문제아'라고는 불려봤어도 칭찬을 받은 기억은 별로 없었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일기장 속 내 글의 표현이 대담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칭찬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글 쓰기로 칭찬을 받으셨던 작가님들의 브런치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댓글을 남겨주는 것과 그런 경험이 하나도 없는 내 브런치에 댓글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처럼 느껴졌다. 인생은 이어지는 거니까? 때때로 생각은 여전히 지나치게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랬던 날들이 쌓이고 쌓이며 브런치 메인 노출과 다음 메인 노출을 몇 번 거치고 나니 구독자도 라이킷도 댓글도 서서히 늘어났다. 처음엔 구독자가 10명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지 50명만, 100명만 됐으면 좋겠다고 점점 더 큰 바람을 가지게 됐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인 구독자가 벌써 560명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보신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어깨가 무겁게도 느껴지지만 그저 내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 더 욕심을 부려 이런 소소한 글로 하여금 잠시나마 보다 많은 분들이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임용 시험이 끝나고 한동안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다. 뭐 그리 공부를 많이 했다고 글자를 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몇 년이나 이어졌다. 실제로 몇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또 글 쓰기란 문자나 카톡에서만 하니 호흡이 점점 짧아져 두 문단 이상 글이 써지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다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니 사실은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엄청 많은 수다쟁이가 살고 있나 보다. 또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게 실감 나기도 한다. 역시나 글을 쓰는 일은 즐겁다. 오늘의 내 생각과 모습이 글자로 남아있을 거라니 꽤나 확실한 기억 매개체를 만들어 가는 느낌이라 마음이 든든해진다. 


 사실 1주년 글을 남길 때쯤 글이 100편쯤 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드러눕기가 먼저, 컴퓨터 앞에 앉으면 대학원 숙제가 먼저가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 앞으로 굵직하게 많은 글을 쏟아내지는 못하더라도 가늘고 길게 기록이 쌓여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일이니까 케이크



* 그동안 방문해주신 분들, 구독자 분들, 하트를 눌러주신 분들, 하트를 눌러주려고 하셨던(!)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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