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원동력
얼른 스무 살이 되고 싶어요!
반짝거리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지금 상황에 만족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그 시절을 한참 지나온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반짝거린다고 보이는 이 시기가 정작 본인들에게는 어두운 터널 안일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느새 훌쩍 나이 먹어버린 나는 먼 과거가 되어버린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그때가 좋을 때야'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 시절의 나도 마찬가지였던 기억이 선명하다. 또, 여전히 습관적으로 주말을, 방학을, 다음 학년도를 기다리는 내가 아이들에게 현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고 나무랄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주말에 출근한 대신 화요일에 휴가를 쓴다고 좋아하던 남편에게서 월요일 오후에 메시지가 왔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일 휴가를 못 쓰게 되었단다. 화요일 휴가를 떠올리며 주말부터 그렇게 좋아하더니만, 화요일에 못 썼으니 수요일에 꼭 써야겠단다. 그런데 화요일 오후에 또 메시지가 왔다. 급한 일이 생겨서 내일도 휴가를 쓸 수 없다고, 안타깝지만 휴가를 하루 미뤄 목요일에 써야겠단다. 수요일 오후에 또 메시지가 왔다. 일이 많아서 목요일 휴가도 어렵겠단다. 이쯤 되니 남편이 좀 불쌍해졌다. 주중에 하루 휴가를 쓴다며 주말부터 좋아했는데 휴가는 하루하루 멀어지고만 있었다.
학창 시절의 나는, 내가 현재를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욕구에 충실하자면 잠도 실컷 자고 게임도 실컷 하고 음악도 실컷 들으며 시간을 보낼 텐데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높아서 욕구를 억눌러야만 했다. 쓰다 보니 좀 안타깝지만 당시의 욕구에 충실하게 살았다면 나의 하루는 그저 '먹고 자고 음악 들으며 게임하고'의 반복뿐이었을 거다. 어른들 말대로 지금 좀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졸린 눈을 비비곤 했다.
20대 초중반 시절, 2년 동안 독서실에만 있을 때는 정말 포기해야 할 게 많았다. 그땐 학교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했기에, 가고 싶은 곳이 오로지 학교였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걸어서 혹은 어떤 수단을 이용하여 공간을 이동하면 되지만 이런 경우에는 시간을 이동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혼자 앉아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너무 힘들고 답답해서 청춘 몇 년쯤 반납하더라도 가능하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점프하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청춘이었기에 가능했던 노력의 시간이었지만, 당시엔 이런 시기가 청춘이라면 청춘 따위 없어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바람이 어쨌든 현시대에서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니 엉덩이 꾹 붙이고 차근차근 시간을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쁜 옷을 입는 것도,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것도, 푹 퍼져서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것도, 소설책을 읽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미래를 위해 꾹 참았다. 모든 건 합격한 후로, 돈을 벌게 된 후로 미루기만 했기에 엉덩이는 현재에 있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미래를 꿈꿨다. 그땐 그게 현재를 가장 충실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10년 전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현재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여전히 머릿속으로 그 어떤 내일만을 그리고 있다. 매주 다가올 주말을, 일요일 밤부터 두 손 모아 기다린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퇴근하는 모습을, 출근하면서부터 꿈꾼다. 내가 보낸 메일의 답장이 얼른 도착하기를, 발송 버튼을 누르기도 전부터 기다린다.
금요일 오후에 겨우 휴가를 낼 수 있겠다고 좋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다음 주에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인다고 기뻐하시는 엄마의 메시지를 보며, 얼른 스무 살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이 오버랩된다. 조금 맥락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이 어쩌면 내일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일을 기다린다고 해서 현재에 충실하지 않은 거라면 나는 앞으로도 평생 현재에 충실한 사람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받아도 좋다. 나의 현재는, 여전히 오늘도, 내일에 대한 어떤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그 기대감이 내게는 희망이고 인생이라는 여정의 이정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