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오래된 구전문학 중에는 '서사무가'라는 장르가 있다. 이는 어떤 인물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지, 그 근본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바리데기'가 있는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부모님을 살리는 신물을 구해오는 과정을 통해 '무조신'이 되는 내용이다. '바리데기'가 부조신이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여정을 거쳐 '무조신 바리데기'라는 이름값을 하게 된 것이다.
이름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우리 각자도 태어날 때 부모님이나 누군가가 좋은 뜻을 담아 이름을 지어주지만, 그 이름의 진정한 의미는 각자의 삶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듯하다.
영화 <써머스비>는 이러한 이름의 가치를 잘 담아내고 있다. 1993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조디 포스터와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았으며, 1982년 프랑스 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남북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써머스비'는 전쟁에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과 아내는 그를 맞이하지만, 그는 전쟁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원래는 차갑고 이기적이었던 사람이 마을에 헌신하고 아내에게 다정한 남편으로 변한 것이다.
그의 달라진 모습에 점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의 정체를 의심하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인물이 등장했고, 써머스비는 그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전쟁이 끝나고 감옥에 나온 이후 그가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다.
재판에 넘겨진 그는 당시 형법에 따라 사형 위기에 처했다. 감옥에서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를 마치 제3자의 이야기처럼 고백한다. 아내는 그가 진짜 '써머스비'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형을 면하라고 간곡히 설득한다. '써머스비'라는 이름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헌신하고, 마을을 발전시키며, 아내와 깊은 사랑을 나누고 가정을 꾸린 것은 모두 '써머스비'라는 이름으로 이룬 것이었다. 그 이름을 버리는 순간, 그는 자신이 이루어낸 모든 행복한 것들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써머스비'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이름은 그의 가장 소중한 삶의 모든 것이 담긴 것이었다. 이러한 이름의 가치는 성경에서 더 근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특히 이름을 핵심 주제로 삼은 책이 있다.
바로 요한복음이다. 요한복음은 신약 성경에서 드물게 기록 목적이 한 문장으로 명시되어 있다. 여러 표적 중에서 선별하여 그 표적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핵심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표적이 등장한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신 가나 혼인잔치를 시작으로 총 7개의 표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 표적들은 예수라는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라는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름에는 분명 '생명'과 '생명을 줄 수 있는 능력'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대화에서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요한복음 8장에서 유대인들이 예수께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이미 존재하셨던 하나님의 아들, 즉 성자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대로,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스스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바로 그런 이름이기에 그를 통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요한복음은 말하고 있다.
이름은 단순히 우리를 부르는 호칭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 여정,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바리데기'가 고난을 통해 신이 되었듯이, 영화 속 '써머스비'가 그 이름에 담긴 사랑과 헌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듯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생명을 주는 능력을 가졌듯이, 이름은 단순한 기호가 아닌 깊은 의미의 결정체다.
우리 각자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이름에 어떤 의미를 채워넣고 있는가? 그것은 단순히 타인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자 우리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증표다. 우리의 삶이 끝날 때, 우리의 이름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