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없는 거만 빼면 KFC 할아버지를 닮은 나이 지긋한 의사는 낯선 병명 앞에 당황해하는 우리 부부를 향해 개의치 않고 얘기를 이어나갔다.
"나도 예전에 학회에서 1번 사례를 본 적이 있을 정도로 희귀하고, 경련약으로도 조절이 어려워 6개월 이내 거의 조기 사망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소아 뇌전증 중에서도 제일 안 좋은 케이스이고 사례가 없기 때문에 예후도 매우 안 좋을거에요."
태어난 지 1주일도 안 된 아이가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의사는 마네킹 인형처럼 아무렇지 않게 우리 앞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그 순간 눈앞이 흐려지면서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의사가 얼마나 밉고 차갑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처음 본 사람한테 그렇게 미운 감정이 든다는 사실에 놀랐고 아무런 감정없이 냉동인간처럼 말하는 의사의 태도에 더 마음이 무너졌던 거 같다.
아이가 바로 대학병원에 구급차를 타고 갔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큰 이벤트 없이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이었기에 '설마,별일 아니겠지~'라는 작은 희망이 있었다.
자연분만이라 짧은 입원을 마치고 산부인과를 퇴원하여 미리 예약해 뒀던 조리원에 일단 입소를 했었는데 의사 면회 후 더는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차를 타고 짐을 빼러 조리원으로 향하는 동안 남편과 나는 누구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차 안은 적막함으로 가득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호수같은 이 분위기 속에서 창 밖만 바라보던 내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의사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어 봐도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우리 부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생아중환자실에있는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부지런히 면회를 다녔는데 면회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아주 짧은 시간이어서 나는 실제로 아이의 경련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그저 의사로부터 경련을 했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을 뿐 면회 때마다 마주하게 된 아이는 왜 이곳에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겉모습은 아픈 곳이 하나도 없었다. 옆자리의 아기는 몸에 줄이 여러 개 달려 있는 데 우리 아기는 안 아픈 아이처럼 자고 있거나 깨 있더라도 꼬물거리는 여느 신생아 아기와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아픈 게 맞나?, 진단받은 증상이 혹시 잘못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태어날 때 3kg 가 넘었던 아이는 경련을 계속하며 잘 먹지도 못해 2kg대로 몸무게가 빠져 있어 면회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은 안아서 분유를 먹이는 거였다. 먹는 것도 본능인데 그조차도 어려워하는 아이의 팔다리는 너무 가느다랬다. 조금씩 분유 양을 늘리며 먹이는 연습을 시켰고 아이가 어느 정도 혼자 적당량의 분유를 잘 삼킬 수 있게 되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기자는 얘기가 나왔다.
주치의 선생님은 경련에는 뚜렷한 치료법이라는게 없고 맞는 약을 찾아야 하는건데 특히 우리아이는 경련약으로도 조절이 힘든상황이니 일단 지금 약으로 당분간 지켜보자 라고 하셨다.
입원실로 오고나서 아이의 경련을 마주하며 그때서야 천천히 아이의 진단명에 대해 체감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당연히 장기입원이라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둘째 말고도 아직 엄마, 아빠의 보살핌이 필요한 천방지축 4살 큰 딸이 있었다. 남편은 몇 일간의 입원에도 큰 아이가 엄마 언제 오냐며 찾는 상황인데 끝이 어딘지 모르는 입원생활을 시작하는 게 우리 가족에게 과연 맞는 결정인지 모르겠다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고 얘기했다. 내가 둘째에만 몰두해 있을 때 남편은 슬퍼하시는 양가 어르신과 엄마를 기다리는 딸래미를 챙기며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어느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엄마를 찾고 있을 큰 아이를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나왔지만 퇴원을 하게 되면 둘째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 같다는 죄책감이 들어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나를 계속 설득했고 결국 우리 부부는 주치의 선생님에게 우리의 상황을 얘기하며 일단 퇴원을 하고 외래로 다니면 안되겠냐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부모의견을 잘 들어주시는 분이어서 퇴원을 허락해 주셨고 단, 경련을 심하게 하거나 위급할 때 바로 병원으로 와야한다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퇴원하고 집에 와서 당시 아이의 병에 관해 인터넷으로 많이 검색해 보고 알게 된 사실들은
-경련증상은 제 각기 다르며 경련을 멈추게 하는 약을 찾는 건 케바케라서 빨리 찾을 수도, 아예 못 찾을 수도 있다는 것.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약을 넣고 빼고를 반복하는 일이 전부라는 것.)
-형제가 있는 경우 아픈 아이에게 올인 하는 가정이 많은데 그럴 경우 안 아픈 형제까지 미술치료나 심리치료를 받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소아뇌전증의 명의가 세브란스에 있다는 것. 예약하고도 진료보려면 3~4개월이 걸린다는 세브란스는 아이의 진단명을 듣더니 바로 예약 날짜를 잡아줬다. 아이의 의무기록들을 들고 그 유명하다는 명의에게 진료를 보았는데 그 때까지도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재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의사는 진단명이 맞고 오늘 당장 입원하라고 강하게 얘기했다. 명의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면 입원해야되는거 아니냐며 눈물바람을 하는 나와 다르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남편이한없이 매정해보였지만 결국 우리는 큰 아이와 함께 돌볼 수 있는 방향으로 얘기를 하며 일단 입원을 피해 도망치듯 집으로 왔었다.
집에 오고 하루 이틀동안 아이는 잠을 많이 잤고 경련증상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많게는 하루에도 70번 넘게 경련을 했다. 내가 적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횟수였고이 작은 아이의 몸이 이 경련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 안쓰럽고 내가 대신 해줄 수 없음에 서글펐다. 의사는 아이가 경련을 할 때 절대 몸을 붙잡거나 경련을 멈추게 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옆에서 경련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얼마의 시간 동안 몇 번이나 경련을 하는지 체크하고 경련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최대한 빨리 응급실로 데리고 가야 할준비를 하는 게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아이가 경련을 하면서 강직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숨을 안 쉬는 청색증 증세를 시작되어 발그라한 몸이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내 머릿속은 하얘질 뿐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엄마가 되어 있었다.당장 눈 앞에서 어떻게 될까봐 무섭기도 하고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져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거 같다.
첫째를 낳고 워킹맘이라 못해줬던 것들을 둘째에게는 마음껏 해주리라 계획하며 베테랑 엄마를 꿈꾸었던 내 바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아이의 경련이 시작되면 그저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멈춰주기를 기다리면서시간과 횟수를 체크하는무력한 모습의 내가 서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