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는 글쓰기 리추얼 Day4
작품 1 : The first cloud (1887)
작품 2 : The Marriage Of Convenience (1883)
작품 3 : Mariage à la Mode - After! (1886)
by Sir William Quiller Orchardson
바램(want)과 필요(need)가 언제나 꼭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는 결혼이 그러한 접점이기에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이겠지요. 결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늘 하고 싶다고 한 번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대답했어요. 하지만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때는 또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또 결혼이라는 제도가 과연 필요할까 라는 생각에 봉착하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 모든 수수께끼같은 결혼의 미로가 '진정성'이라는 생각의 감옥에서 탄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윌리엄 퀼러 오차드슨이 보여준 결혼의 시리즈 작품을 보고있자니, 예전의 중매결혼, 그 이전에는 왕실의 결혼, 최근 현실에서는 재벌가들의 결혼 혹은 이주 여성들과 한국 남성들의 결혼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욕구와 바램이 1차적 목적인 연애와는 다르게 결혼은 필요(need)가 서로 확실하게 연결이 되어야만 가능한 고리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이야 나이차이나 국적의 차이 성적 취향도 다양하게 논의가 되고 다양성으로 이야기하는 시대이기에 작가의 그림 속 나이차이가 이상하게 여겨진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본질적으로 '결혼'이라는 약속 혹은 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 같아요. 앞서의 욕구와 필요가 서로 이상적으로 잘 맞는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불행은 예고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없는 만남과 관계는 오래가기가 힘들 것 같아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나이가 되어서,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나으니까, 결혼을 해서 사는 것이 이 사회에서 살기에 혜택이 많으니까, 아이는 죽기전에 낳아보고 싶어서 등등 존재와 존재의 만남보다는 필요에 의한 목적으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N극과 S극처럼 서로의 결핍과 필요가 만나서 맺어진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서로의 필요와 결핍이 만나서 합을 이루고 있을 때 어쩌면 더 단단한 결속력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는 호르몬이나 삼일마다 한 번씩 다시 의지를 내야 하는 자유의지에 의탁한 사랑보다 헤어짐에 있어서는 덜 불안할지도 모르겠네요. 불안함도 두번째 그림에서처럼 지루함도 피하고 싶은 저의 욕심은 여전히 모호한 바램과 필요 사이에서 수수께끼를 마주하고 있네요. 언젠가는 풀 날이 있겠지요. 내 자신의 욕구와 필요에 명확해지거나 제도의 자유가 찾아오는 그 때!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연습>
따뜻한 색채에서 어두운 색채로, 희망의 분홍빛에서 지루한 녹색으로 절망의 검은색으로 .... 결혼의 변주곡! 오늘은 세 장의 그림에서 전체적인 색채의 변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위치와 포즈, 여성의 뒷모습 남성의 못 마땅한 포즈, 테이블에서 서로 관심없는 심지어 지루해서 눈까지 감고 있는 여성의 모습, 마지막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 여성 그리고 홀로 남겨진 남성. 온기가 사그라들어 가는 변화를 보여주기라도 하는듯. 첫번째 그림은 구름이라는 제목 만큼이나 아직 서로에 대해서 미지수인 상황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여성의 모습은 앞의 거울을 통해 반사되는 모습으로 간접적으로만 드러나고 있다. 두번째 그림에서는 서로 마주 보고 있고, 아주 호화로운 식사를 앞에 두고 있지만, 세상 불편하고 지루한 표정의 여인! 세번째 그림에서는 정중앙에 위치한 남성의 외로운 모습. 덩그러니 혼자만 빈 방에 남아서 외로움. 둘이서의 행복을 꿈꾸었지만 결국 혼자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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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4_해석
�화해하는 글쓰기 Day 4 - 21. 7. 15.
첫 번째 작품에서 한 부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빅토리안 풍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방은 부부의 경제력이 상당함을 짐작케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모습이 심상치 않습니다. 방을 막 벗어나려고 하는 젊은 아내의 뒷 모습을 그녀와 나이 차이가 꽤 있는 남편이 눈으로 쫓고 있습니다. 불만스런 표정과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모습에서 언짢음의 숨겨지지 않습니다.
아내는 참을 수 없는 말다툼의 끝에 방을 박차고 나가는 중은 아니었을까요. 불행의 시작을 감지하면서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좁힐 수 없는 마음의 거리는 두 사람 사이의 휑한 마룻 바닥의 거리만큼이나 멉니다. 방 안을 휘감고 있는 냉랭한 공기가 몸을 감싸듯 느껴집니다.
제목은 <첫 구름>, 그들의 결혼 생활에 밀어닥칠 폭풍을 예견한 듯한 제목입니다. 이 작품은 불행한 결혼에 대해 묘사한 윌리엄 퀼러 오차드슨의 삼연작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당시 귀족 사회에서는 부를 가진 나이든 남성과 미모의 젊은 여성의 결혼이 만연했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미모를, 여성은 남성의 부를 취했고 사랑이 없는 결혼에 단단한 기반은 없었습니다.
두번째 작품 <정략 결혼>입니다. 식사 테이블에 앉은 부부의 모습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긴 테이블이 또 다시 그들의 심리적 거리를 강조합니다. 아내는 식사에는 관심조차 없고, 멀찍이 의자에 기대 앉아 이 불편한 식사가 빨리 끝나길 기다립니다. 남편은 몸을 기울여 대화를 시도하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이미 체념이 비칩니다. 노란빛이 은은하게 맴돌던 방의 분위기는 연한 녹빛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삼연작의 마지막 작품, <결혼 풍속, 그 후>입니다. 이제 남편은 홀로 불꺼진 벽난로 앞에 힘없이 앉아 있습니다. 뒤로 보이는 테이블의 한쪽 끝에는 애초에 한 명을 위해 준비된 듯한 식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애정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방은 이제 불꺼진 벽난로처럼 검초록 빛으로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윌리엄 퀼러 오차드슨이 상류층의 결혼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그린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없는 결혼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지만, 확실히 그 곳에 존재하고 있는 불행의 공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결혼. 이 결정은 얼마나 많은 관계를 만들며 또 행복과 불행의 시작이 되는지요. 내가 곁에서 바라보거나 혹은 직접 경험한 ‘결혼’에 대해 드는 생각, 혹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드는 생각으로 자유롭게 글을 써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