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는 글쓰기 리추얼 Day5
작품 : The Angelus (1857–1859), Jean-Francoi Millet
이 작품의 제목을 한국에서는 '만종' 저녁의 종소리라고 알고 있었는데, 작품 원제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삼종기도(The Angelus)'라고 써 있습니다. 삼종기도가 무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예전에 유럽에서는 하루에 세 번 기도 시간 마다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그 때마다 기도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 모습 또한 해질 무렵 마지막 저녁 시간의 종소리에 따라 일을 마친 농부 부부가 기도를 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노동의 성스러움 땀흘린 댓가에 대한 수확과 감사 그리고 앞으로의 풍요도 기원하며 기도를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랑스 화가 밀레의 이 작품을 보니 예전 프랑스 떼제 공동체에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통해 기도하며 자급 자족의 생활을 하는 모습을 경험하는데, 참 평화롭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떼제 공동체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유지가 되고 있었는데, 잠시 머물다가 가는 여행객이나 수행자들도 그곳에서는 설거지를 하거나 기부를 하거나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기여하는 방식으로 유지를 해나가고 있었어요. 땅을 밟고 땀흘려 노동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기도하는 삶, 참 평화가 여기에 있구나 느끼던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멈춰서서 따스한 햇볕 아래 기도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감사함이 자연적으로 느껴졌어요. 삶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곳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제 그만 방황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마음 먹었던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떼제에서 만났던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틱낫한 스님이 만든 플럼 빌리지에서는 하루에 세번 종소리가 들리면 무엇을 하던 멈추고 잠시 삶에 쉼표를 찍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러한 순간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요즘 글쓰기 리추얼 덕분에 하루에 한 번은 멈춰서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어서 감사한 요즘입니다. 만종이 훨씬 넘은 늦은 밤이지만, 그래도 멈춰서서 오랜만에 잊혀졌던 떼제 공동체에서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떠올리며 오늘은 평온하게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노동의 끝 달콤한 휴식으로 갈게요. 그럼 내일 또 만나요!

Day5 이튿날 아침, 이번에도 놀라운 동시성이 펼쳐지네요. '만종'이라는 그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눈 앞에 농촌의 아침 풍경이 펼쳐집니다. 오랜만에 흙냄새 아침 공기의 신선함 멀리 펼쳐지는 산과 구름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는데, 눈앞에 새벽부터 나오셔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의 모습이 보이는거예요. 프랑스에서의 아침 종 대신 이곳에서는 시골 사찰의 새벽 기도를 위한 목탁소리가 울렬퍼지며 시골의 아침을 깨웁니다. '정말 부지런하시다'라는 생각과 함께, 이러한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본래 인간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었다는 자각이 듭니다. 많은 병들의 원인이 삶의 습관에서 온다고 하지요. 오늘 아침 새벽 산책을 하며 그간 나태해져 있던 자신의 습관들을 반성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고,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하던 요즘인데, 삼종기도 그림 덕분에 이러한 동시성의 풍경의 소중함도 알아차리고 감사함이 모락모락 올라옵니다. 지금부터라도 아주 작은 습관부터 바꾸어야겠다라는 다짐과 함께 그것이 목탁소리이던 종소리이던 내면의 경각심이건 하루 중 자신을 깨우는 순간 순간은 우리 삶을 정화시켜주고 맑게 해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부터 텃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분들의 모습과 만종의 겸허함과 감사함이 뒷산 자락의 구름들처럼 제 기억속에 뭉게 뭉게 퍼져나가네요. 이 참에 꼭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삼종기도를 시작해봅니다.
예전에 이 그림 속에서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부부라는 주장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유투브를 찾아보니, 이 작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둔 영상이 있어서 함께 공유해봅니다.
감사의 기도? 아이의 죽음? 만종 속에 담긴 소름 돋는 비밀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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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5_해석
�화해하는 글쓰기 Day 5 - 21. 7. 16.
오늘 소개해 드릴 화가는 장 프랑수아 밀레입니다. 밀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땅을 성실히 대하지 않으면 먹을 것을 얻을 수 없는 농부의 숙명을 지켜보며 성장했지요. 그래서인지 그는 이전까지 고매한 예술의 주제로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것을 캔버스로 가져왔습니다. 바로 '노동'이었습니다.
1848년 밀레는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작품의 주제로 삼으며 농민화가로서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외로 이사해 스스로도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대지와 굳게 맺어진 농민의 삶을 중점적으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살던 시기는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농사는 점점 구시대에 속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지요. 그런 변화속에서도 그는 앞으로 점점 쇠락해 갈 것이 뻔히 보이는 노동자의 삶을 그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땀 흘린만큼만 기대할 수 있는,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심술로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때조차 묵묵히 매일을 살아내는 농부들의 삶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인 <만종>입니다. 젊은 농민 부부가 땅거미가 내려앉는 들판에 서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교회에서 저녁 기도 종이 울렸을 것입니다. 두 부부는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을 거친 손을 급히 옷에 닦아냅니다. 아내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남편은 조용히 모자를 벗어 손에 쥡니다. 두 사람은 오늘 하루 새벽부터 저녁까지 땀 흘리며 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내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재방송처럼 똑같았을 수많은 하루의 끝에서 이렇듯 내일의 희망을 담은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 둘 중 누군가 아프지 않기를, 그래서 내일도 오늘처럼 배를 채울 양식을 일굴 수 있기를. 핏덩이 같은 어린 자식들이 천진한 미소를 잃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두 사람의 소박한 소망이 진실되게 흐르는 이 시간은 수도 없이 반복되었을 지겨운 삶의 굴레에 경건한 한줄기 빛을 내리웁니다. 어쩌면 그의 작품들에서 풍기는 종교적이기까지 한 성스러운 느낌은 그가 농부의 인생에 대해 가졌던 경외감의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작품이 당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저 농민들의 모습에서 어쩐지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리고 저는 밀레의 작품 속 농민들과, 그리고 현대의 우리가 매일 빚어내는 정직한 노동이 이 세상의 바탕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