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는 글쓰기 리추얼 Day6
작품 1 : Child with Doll (1892), Henri Rousseau
작품 2 : The Dream (1910), Henri Rousseau
당신은 누구인가요? 무얼하며 살아가나요?
저는 라이프아티스트입니다. 삶의 예술가이지요.
삶의 지독한 고통 이후에 그 어떤 예술보다도 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이 그려낼 수 있는 삶의 예술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삶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스스로의 모든 여정을 스스로가 책임지고 자신을 펼쳐나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예요. 직업이 내가 아니고, 나이가 내가 아니고, 성별이 내가 아니고, 국적이 내가 아니고, 이름이 내가 아니라 그 너머의 나 그래서 모두에게 존재하는 그 하얀 캔버스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이 사회 속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것들도 나의 부분들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보다 더 본질적인 자기 자신에 가 닿을 수 있으니까요.
고등학교 때에 정말 치열하게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답도 없는 그 질문은 잠시 내려놓고 '어떻게 이 삶을 살아가야 하나'로 질문을 바꾸었죠. 대학교 4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정말 인생 최고로 살이 빠지면서 대상포진이라는 무서운 병까지 걸리면서 인생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앙리루소는 주말마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 안의 재능을 펼치고 결국 이 세상에 어설프지만 그림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주었고 피카소가 그 재능을 알아봐 주었죠. 사실 재능이라는 것 혹은 내 안에서 펼쳐지고 싶은 그 무언가는 누군가의 인정을 기다리지 않고 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좋은 회사를 다니던 시절 많은 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직장에서 풍족한 월급을 받고 좋은 동료들과 재미있겠다고 부러움을 산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전 퇴근 후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안의 열망들을 풀어내느라 낮에는 회사의 구성원으로 밤에는 라이프아티스트 사샤로 정말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빨간 원피스를 입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 소녀의 모습은 아마도 저의 회사를 다닐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진정으로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왜 모두가 부러워 하는 곳에서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자책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오른손에는 인형을 왼손에는 하얀 데이지꽃 같은 것을 쥐고 있는 그림의 소녀처럼 저 역시도 고등학교 때의 묵혀두었던 그 질문 '난 누구인가'를 다시 꺼내들고 깊어지는 팔자주름 만큼이나 고뇌하고 고뇌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루소가 그림을 통해 밀림으로 떠났듯, 저는 회사를 그만 두기로하는 큰 결정을 하고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알고 죽겠다는 아주 큰 결심을 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긴 여정 끝에 전 '라이프아티스트'라는 한 단어가 불현듯 가슴에 스쳤고, 앞으로의 인생은 내 삶에 진실되고 나에게 솔직한 삶을 그래서 그 삶 자체가 예술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게 되었던 것 같아요.
두번째 작품의 제목을 보니 '꿈'이네요. 저 역시도 언젠가는 이 세상에 그러한 내면의 꿈들을 꿈같은 세상에 펼쳐내고 많은 이들과 연결되는 시간이 올 수 있겠죠. 고유성이 창조성을 만나 펼쳐질 때 그리고 다시 보편성으로 가 닿아서 연결이 될 때 큰 바다에 가 닿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조금은 어설픈듯한 앙리루소의 그림이 왜 웃음을 짓게 만들고 마음에 들었는지 오늘에서야 이해가 되네요. 전문적으로 예술을 배운 사람만이 예술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예술가로 오는 것 같아요. 루소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잘 보여준 화가라 생각하구요. 결국 예술가들이 마지막에는 아이들의 그림으로 심플하고 심플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작품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오늘도 그림을 통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나의 삶을 채색하며 하루를 마무리해봅니다.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영혼의 연결고리 예술! 전 오늘도 라이프 아티스트 사샤로 살아갑니다.
Day6_해설
�화해하는 글쓰기 Day 6 - 21. 7. 19.
작품의 주인공은 인형과 꽃을 들고 풀밭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에요. 그런데 얼굴을 자세히 보면 팔자주름이 지나치게 명확하게 그려져 소녀라고 하기엔 좀 늙어(?) 보이지요. 인중과 턱 밑의 명암이 과도해서 잘 못 보면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잔디밭에 앉은 모습도 흡사 투명 의자 벌을 받는 듯 어색해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은 서툴어 보이는 이 작품을 그린 화가에게, 피카소가 공식적으로 경외심을 표했다면 믿으실 수 있을까요. 작품의 제목은 <아이의 초상>, 작품을 그린 화가는 19세기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입니다.
사실 루소는 단 한번도 정규적인 회화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루소는 27살에 파리 세관사무소에 취직한 뒤 22년간 그곳에서 일하며, 오랜 시간 생업을 가진 '주말 화가'로만 작업했어요. 그는 순수한 독학을 통해 오로지 자신의 눈에 보이는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만 그림을 그렸습니다.
정교한 기법이 없는 루소의 작품은 오랜 시간 동료 화가들과 사람들의 조롱 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루소 자신은 이러한 평가에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50세가 다 되어 전업 화가가 되기 전까지 20년이 넘도록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구성과 상상력은 점점 향상되어 갑니다. 지식이나 기법에 매몰되지 않은 순수함과 직감, 그리고 부던히 노력했던 성실한 시간은 왠지 사람의 마음을 끄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완성되게 되었죠.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회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루소는 60대가 되자 당대 유명 화가들로부터 근대 서양화의 새로운 물길을 트여줄 거장으로 받들여지게 됩니다. 일찍부터 루소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고 수집했던 피카소는 그의 그림에서 때 묻지 않은 싱싱한 원시성을 보았습니다. 1908년 11월, 화가와 지식인들이 모인 연회에서 피카소는 루소에게 공식적으로 경의를 표했습니다.
앙리 루소는 처음부터 신이 내린 재능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기 확신에 있어서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듯합니다. 사실 그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훨씬 전부터 일관되게 자신이 최고의 화가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루소는 자신 스스로에게 누구보다 확신에 찬 후원자가 되어준 것이지요.
타인의 시선과 결과에 대한 두려움, 자기 검열로 괴로워한 경험이 있으시다면, 앙리 루소가 사기 사건에 휘말렸을 때 자신을 변호하며 한 말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