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는 글쓰기 Day 11
작품 : The Meeting ("Bonjour, Monsieur Courbet"), 1854, Gustave Courbet
이 그림 속에서 전 쿠르베가 멘 배낭이 보입니다. 저도 삶 속에서도 늘 큰 가방을 가지고 다녔던 것 같아요. 잔뜩 책을 넣고 다니던 고등학교 이후면 배낭을 떠나 이쁜 핸드백만 들고 다닐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아마도 뭔가 내려놓지 못한 것이 많았나봐요.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도 조그만 핸드백 대신 언제나 배낭 아니면 큰 가방을 메고 다니고 있습니다. 한 때는 그런 모습이 자유인의 자세라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자유인의 모습이자, 늘 무언가에 매여있는 모습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언제나 짊어지는 것 만큼 내려 놓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이 그림을 보면서 다시금 느낍니다.
자유인! 영원한 자유를 갈구한다고 했을 때 어떤 스님이 지나가시며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 때 순간적으로 쿵 마음이 내려앉으면서 누가 나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순간이었어요.자유를 갈구하는 순간 속에는 자유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자유를 막지 않는데 스스로의 감옥 속에 갇혀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괜히 옷으로 자유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던 예전의 제 모습도 떠오르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울 만큼의 패션이었던 것 같아요. 왠 흰색 프릴 치마를 입고 갔었던 것 같아요. 캉캉댄서도 아니고, 많은 분들이 쳐다보셨는데, 오히려 지금 그림 속 쿠르베처럼 '봐라 난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자유인이다.' 뭔가 이런 메세지를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뿜어져 나온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굳이 뭐 그렇게까지 온 몸으로 나는 자유다라고 부르짖지 않아도 이미 자유 속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패션으로 난리를 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암튼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보면 쿠르베야 자신의 자유를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지만, 무언가 턱을 치켜든 모습 속에서는 자부심이라고 해야할까요 무언가 에고가 잔뜩 담겨져 있는 모습이기는 합니다. 예술가들에게 있는 그 뭐랄까 자신만의 길이랄까. 그런 지점들이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왼편에 있는 고개를 숙인 사나이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 재밌게 다가오네요. 고개를 숙이거나 고개를 치켜들거나 그것은 자존감과는 자기 자신의 본래 자유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은 그리스인조르바가 앞에 있다면 신나게 춤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유의 화신 조르바를 소환해 내고 싶은 한 여름 밤이네요!
Day11_해석
�화해하는 글쓰기 Day 11 - 21. 7. 26.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품은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저뿐 아니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죠.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를 만난 자신의 경험을 자전적으로 이 소설에 풀어냈지요.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옵니다.
조르바 : 처음부터 분명히 말하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만약 내게 강요하면, 그때는 끝장입니다. 이건 분명히 아쇼. 내가 인간이라는 걸.
주인공 : 인간으로고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조르바 : 뭐긴, 자유라는 거지!
카잔차키스는 터키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에서 태어나 자유와 이념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자랐습니다. 자유를 향한 갈망, 이를 위한 투쟁을 보며 자랐던 그는 이후 평생을 인간 자유의 근본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조르바를 읽으며 떠올랐던 예술가가 있었는데요, 바로 구스타브 쿠르베라는 19세기 프랑스의 화가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 <안녕하세요, 쿠르베씨>입니다. 인디 밴드의 노래 제목 같지 않나요?ㅎㅎㅎ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우연히 마주친 쿠르베에게 그의 실제 후원자였던 귀족 알프레드 브라야스와 하인이 '안녕하세요, 쿠르베씨'하며 아주 공손히 인사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쿠르베는 짝다리를 짚고 턱을 치켜든 채 거만하게 인사를 받고 있죠.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화가에게 후원자란 존재는 막강한 힘을 가진 ‘갑’의 존재이죠. 하지만 쿠르베는 이런 광경을 그린 것도 모자라, ‘천재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라는,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뻔뻔한 부제를 붙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최소한 후원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예술가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
쿠르베는 실제로도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1855년 파리 박람회에 출품을 거부당했을 때, 그는 박람회장 옆 임시 건물에 자신의 작품 40점으로만 이루어진 전시를 열었습니다. 1870년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종 도뇌르 훈장의 수훈자로 지목되었을 때는, ‘나는 어떤 정부의 형태로부터도 독립되고 자유롭다.’며 이를 거부했지요.
쿠르베는 살아 생전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혹여 내가 죽거든,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해주시오. 쿠르베는 어떤 학교에도, 어떤 교파에도, 어떤 제도에도, 어떤 아카데미에도, 특히 어떤 정권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오직 자유의 진영에만 속해 있었다고."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