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안아줄게

화해하는 글쓰기 Day 10

by Sash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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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The Love Embrace of the Universe, the Earth (Mexico), Myself, Diego, and Señor Xolotl>, 1949, Frida Kahlo


품 안에 또 품 안에 감싸고 있는 모습이 우주의 품을 연상하게 하네요. 그러고 보니 제목도 '우주의 사랑'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사랑의 다른 이라고 하는데, 디에고를 아기처럼 안고 있는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 오랜 만남으로 자비심이 모성애까지 넓어진 그런 느낌인 것 같습니다. 오래 같이 산 부부들 보면 아들 하나 키운다는 마음으로 남편과 산다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또 눈에 들어오는 건 뿌리들이예요. 손 아래서 뻗어나가는 뿌리처럼, 이미 그 남자의 존재감은 자신의 깊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요. 가슴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지만, 더 큰 자신은 그러한 자신을 끌어안고 가슴이 패여서 그 골짜기 사이로 물이 말라 가슴 끝에 마지막 물방울이 진주 같은 눈물 모양으로 매달린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뒤로 가이아처럼 우주의 낮과 밤의 여신이 한 몸이 되어서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미 우주가 되어버린 마음인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예전에 '전쟁 정도는 진정한 사랑을 알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던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그러게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의 전쟁같은 사랑이 비로소 프리다를 우주만큼 넓은 존재로 키워낸 건 아닐지요. 불교에 '고성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통이 성스럽다는 뜻이지요. 이 그림을 보니 그 단어가 떠오르네요. 존재가 우주가 되어버리는 정도의 경지라면 고통도 성스러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의 품안에서 이제 평온하길 프리다!


Day10_해석

�화해하는 글쓰기 Day 10 - 21. 7. 23.


타인과 맺는 관계 중 가장 강렬한 감정들을 주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요. 그리고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상대에게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은 어떤 관계에서보다도 충격이 크지요.

사랑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았던 대표적 화가는 아마도 프리다 칼로일 것입니다. 프리다는 19살에 당한 끔찍한 전차 사고로 인해 온 몸의 뼈가 부스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받습니다. 하지만 사실 프리다에게는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 삶에는 두 번의 심각한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였고, 두 번째는 디에고 리베라. 그리고 두번째가 훨씬 안 좋았다.”

의사의 꿈을 키웠던 프리다는 사고 이후 새롭게 예술가로써의 삶에 눈을 뜨게 됩니다. 22살의 프리다가 멕시코의 국민 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났을 때 그는 43세였습니다. 디에고는 프리다의 눈부신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았고, 프리다는 거장 리베라를 존경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이내 붙같이 사랑에 빠져 만난 뒤 1년만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운명 같은 사랑이었지만 달콤한 행복만이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디에고는 결혼 전부터 엄청난 여성편력이 있었고 결혼 후에도 수많은 외도를 저지릅니다. 외도의 절정은 프리다의 친동생과의 불륜이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달아 결국 이혼을 하지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예술가와 사상적 동반자로서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했기에 완전한 결별 또한 큰 고통이었습니다. 결국 리베라는 이혼 1년 뒤 프리다에게 재결합을 요청했고, 칼로는 생활비를 각자 해결하고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합니다.

슬픈 사실은 재결합 이후에도 디에고가 외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디에고의 곁에서 프리다는 변화합니다. 그녀는 디에고에게 종속되어 고통받기 보다는, 창작활동과 사회운동을 왕성히 해나가며 예술가이자 사회 운동가로서 스스로 우뚝 서기 시작합니다. 1949년 디에고를 위한 기념 전시회에서 프리다는 처음으로 디에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합니다.

"내 남편인 디에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우스운 일이 되겠지요. 디에고가 한 여자의 남편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중략…>만일 내가 그를 아들처럼 다루며 이야기한다면 그건 디에고에 대해 묘사한다기 보다 내 자신의 감정을 묘사하거나 그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해 묘사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런 프리다가 말년에 그린 작품에서 프리다는 디에고의 엄마가 되어 아기 같은 그를 품에 안고 도닥이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를 땅의 여신과 우주의 여신이 함께 손을 모아 여러 겹으로 품고 있지요. 여전히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가슴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리베라의 인간으로서의 장단점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머니같은, 혹은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는 여신 같은 자신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그녀가 말했듯, 이 모든 것은 디에고가 아닌 그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프리다의 사랑은 확실히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저는 말년의 작품들을 보면서 프리다가 죽는 순간까지 사랑에 고통받은 유약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의 끝에서 디에고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예술가이자 혁명가로서 삶을 개척하며 주체적으로 리베라의 곁에 있기를 선택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칼로가 남긴 말을 드려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의 고통으로 늘상 눈물짓던 사람이 아닌, 자신이 누구이며 무얼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위대한 예술가 프리다가 했던 말을 말입니다.

“나는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는 신경 안써. 나는 나쁜 년이자 화가로 태어났고, 망가진 채로 태어났어. 하지만 내 방식대로 행복했지. 당신은 내가 누군지 절대 이해못해. 나는 사랑이야. 나는 기쁨이고, 또한 본질이지. 나는 멍청이기도 하고 알코올중독자이며 집요하기도 하지… 난, 그저 나 자신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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