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모성애

화해하는 글쓰기 Day 12

by Sash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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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Maman, Louise Bourgeois


엄마? 엄마라니!!!

이 기괴한 거미에게 엄마라는 제목을 붙이다니!!!

잠시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 감정의 간극이 너무 커서 더 오래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작가가 왜 이러한 제목을 붙였는지 알았을 때에 즉, 작가 아버지의 불륜을 어머니들은 알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눈 감아주었고 그런 엄마에 대해서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 분노와 연민과 수많은 감정을 이렇게 승화시켰구나 생각하면서, 거미 아래의 하얀 구슬의 반짝임이 눈물처럼 빛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불륜은 자주 일어나고 있고, 많은 드라마의 단골 주제이고 요즘은 사연을 보내서 재연해주는 상담 프로그램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삶의 한 요소처럼 (실은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놀라기는 합니다만) 다가옵니다. '그럴거면 왜 결혼을 할까 그냥 자유연애하면서 살지'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폴리 아무르도 있고, 뭐 별의별 사랑의 방식들도 있지만, 불륜은 결혼이라는 약속을 파기하는 신뢰의 깨어짐으로 더 아픈 것 같습니다. '신뢰'라는 감정은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때로 사랑보다도 더 깊은 연결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산산히 조각 났는데도, 버티는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강인한 어머니. 남여의 신뢰를 넘어서는 모성애. 상상으로는 그 마음을 감히 상상할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거미는 한 여인이 아니라 엄마라는 점이 더 중요한 것이겠지요. 지독한 모성애.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어머니들의 마음 같아요. 처음에 제목을 듣기전에는 그저 흉측하게만 보였던 조각물이 이제는 연민이 느껴집니다.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어도 '엄마'가 된다는 것은 신이 부여한 선물이라는 점을 알기에, 하늘이 허락해야만 가능한 일 같아요. 그 축복도 그 아픔도 그 시련도 모성애로 다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의 선택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엄마'라는 존재들도 태어날때부터 '엄마'가 아니기에 배워나가는 것이지만,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그렇고, 이 세상에 생명을 가져올 수 있는 대단한 존재들이기에 이 작가가 표현한 거미처럼 강인함도 '엄마'가 되면서 생겨나는 걸까요.


이 세상 모든 곳에 신이 계실 수 없어서 '엄마'를 보냈다는 말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전 '마망'이라고하니 이 노래가 생각났어요. 지독한 모성애를 가진 울 이쁜 엄마. 사랑해요.


https://youtu.be/ANj6StScGYU


Day12_해석

�화해하는 글쓰기 Day 12 - 21. 7. 27.(화)

높이가 6m에 달하는 거대한 거미 형상의 설치 작품입니다. 제목은 당연히 ‘거미’일 것 같지만, 작품의 제목은 예상밖으로 '엄마(maman)'입니다. 사람보다 몇배는 더 큰 무서운 거미에 작가는 도대체 왜 엄마라는 제목을 붙인 걸까요.

작품의 작가는 루이스 부르주아라는 프랑스계 미국인 작가입니다. 그녀는 파리에서 테피스트리 사업을 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에게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부르주아가 십대 후반이 되었을 때, 그녀가 친언니처럼 믿고 의지했던 가정교사가 자신의 아버지와 10여년 간 불륜 관계를 지속해 왔던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분노했습니다. 아버지를 증오했고 가정교사를 증오했지요. 하지만 마지막에 미움의 화살이 향한 것은 바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였습니다. 브루주아는 어머니가 이 불륜을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가정을 깨지 않으려 이를 묵인해온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브루주아는 어머니를 징그러운 거미로 표현함으로써 분노를 표현한 것일까요?

다시 ‘마망’ 작품을 자세히 보면, 거미의 배 아래에는 철망이 있고 그 안에 하얀 대리석 구슬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거미는 알을 품은 ‘어미 거미’인 것이지요. 거미는 종류에 따라 알을 부화하는 방식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모든 어미 거미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단 하나의 특징은, 그들은 일단 알을 낳고 나면 알이 부화할 때까지 먹지도 자지도 않고 탈진할 때까지 알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어미 거미는 자신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고통도 불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루이스 브루주아의 어머니처럼 말이죠.

거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면서 남편의 부정을 미련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소름 끼치는 엄마. 하지만 동시에 연약한 몸 아래 자식들을 품고 홀로 모든 치욕과 고통을 감내했던 엄마. 우둔하고 억척스러운,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을 바로 ‘나’ 때문에 견뎌내야 했던… 바보 같은, 위대한 엄마.

브루주아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알을 밴 위태로운 거미의 모습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는 죽음 같은 괴로움도 감내할 수 있었던 자신의 ‘어머니’ 그 자체였습니다. 즉, 부르주아에게 엄마란 이해하기 어려웠던 무서운 어른이자, 동시에 거미처럼 지독하게 강한 모성의 존재였던 것이지요.

이렇게 부르주아는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양가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우리가 깊이 공감하고 감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의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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