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4
디톡스를 시작한 지 벌써 2주가 되어간다. 이번주는 추석 연휴가 있는 주간이다. 디톡스를 시작하면서도 안 그래도 우려를 했던 주간이기는 하다. 과연 난 이 주간을 별일 없이 잘 지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한 해 중 가장 풍요롭고 풍성하다는 한가위! 잠시 자책하기도 했다. 추석 연휴 지나고 디톡스를 시작할 걸 그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빨리 몸이 건강해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잠시 올라온 자책감을 조용히 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을 부치면서 코끝을 찌르는 이 고소하고도 달달한 전의 향기는 참으로 고통스러울 만큼 강렬했다. 가장 큰 적은 가장 친한 사람이 돌변할 때라고 하지 않던가. 평상시 나의 외로움과 배고픔과 허전함을 가장 잘 달래주던 호박전! 내 최애 음식이기도 하다. 지난번 비빔국수의 유혹을 간신히 넘어서자 이제 호박전의 공격이 다가온다. 너무 잘 알고 친하기 때문에 어디가 허점인지도 잘 아는 자의 공격은 무섭다. 호박전을 대하는 내 태도가 경계심 가득하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더더욱 고소함을 뿜어내며 그 화려한 황금빛 자태를 뽐낸다. 하필 내가 전 담당. 차라리 안 보면 참겠는데, 보고 있으려니, 그 유혹을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누가 음식을 만들다가 음식 냄새도 질린다고 했던가. 거짓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호박전은 몇 개를 부쳐도 언제 먹어도 맛난 것 같다. 오늘도 예외없이 난 호박전을 사랑하지만, 잠시 이별해야만 하는 지금의 상황을 호박전은 알아들을리 없다. 혼자서의 괴로움일 뿐이다. 마치 안 보고 이별하는 것이 만나서 이별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 만큼 이번 정화의 여정에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추석 연휴를 우려했지만, 잘 견딜 수 있다고 자만하기도 했다. 난 걱정과 자만 사이에서 기만을 택하기로 했다. 나의 의지를 기만하기로. 호박전 하나 다는 아니고, 반개만 먹으면 괜찮지 않겠느냐는 굽다가 망쳤으니 버리면 아깝지 않겠냐는 이상한 자기 합리화를 펼치면서 호박전 굽다가 부스러진 끝의 조각들을 맛본다. 언제나 큰 일의 패착은 아주 작은 틈에서 온다고 했던가. 이 부스러기를 아까워도 먹으면 안되었다. 그 작은 만남이 나를 호박전의 세계와 다시 손잡도록 이끌었다. 남여간의 헤어짐에서도 다시 보면 헤어지기 힘든 것처럼 잠깐 만나서 얘기만하고 돌아서려던 계획은 애초부터 난 널 사랑한다는 고백의 장으로 펼쳐질 것이 예견된 것처럼 난 호박전을 끌어안고 말았다. 부스러기만 먹겠다는 결심은 무너지고 이미 하나를 먹고, 두 개를 먹고 세 개를 먹고 있었다. 물론 내 스스로 경계를 너무 삼엄하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규칙에서도 일반식 한 끼는 허용이 된 것인데 더 잘 해보려고 아예 기름기가 많은 전은 손을 대지도 않을거라 결심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차라리 친구로라도 지내자 하면 되었을 것을 다시는 보지말자 무리수를 두었던 것이 애정을 더 폭발시켜 버렸다.
그래도 3개에서 멈출 수 있었다. 천천히 음미를 하면서 먹었기 때문이다. 평상시 급하게 먹던 습관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간장이 묻은 호박전의 그 고소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호박의 맛도 평상시보다 더 달달하게 느끼면서 천천히 먹고는 간신히 그 애타는 그리움과 사랑을 달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헤어짐은 이른 것 같다. 정화의 여정이지만, 전과의 만남에서 반전은 없었다. 걱정과 자만 사이에서 기만으로 살짝(?) 무너지긴 했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니, 조금 더 강력한 의지를 소환해봐야겠다. 귀한 기름으로 좋은 호박전을 만들었으니 건강에 그리 나쁠리는 없다는 합리화와 함께, 오늘 하루 특별권을 썼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오랜만에 상봉한 호박전과의 달콤한 만남에 뇌와 위와 가슴이 모두 행복한 마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