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산천019 2호차

화해하는 글쓰기 리추얼 Day2

by SashaPark

작품 : Compartment C, Car 293 (1938), Edward Hopper (오늘의 그림은 저작권 문제로 작품을 올릴 수 없어, 링크로 공유합니다!)

작품 보러가기: https://url.kr/cmwul9


오늘은 부산에서 진행되는 스트레스관리 워크숍 진행을 하러가기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서둘러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코로나로 계속해서 방콕만 하다가 작년부터 이야기된 스케쥴이라서 큰 마음 먹고 또 한 편 설레이는 마음으로 또 한 편으로는 4단계인 시기에 불안과 걱정과 함께 먼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기차에 앉아서 오늘의 리추얼 그림이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에 열어보았는데, 아니 한 여인이 기차에 앉아 있는 그림이 아닌가! 낯이 익은 그림을 다시 본 반가움과 지금 달리는 기차 안에서 기차 그림을 마주한 묘한 동시성에 잠시 짜릿하며, 그림을 자세히 살펴본다. 한 눈에 내가 관심있게 보았던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작가의 첫번째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첫 작품은 바로 <Rooms by the sea(1951)>이었는데, 누구나 알고 있는 '방'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 하지만 방과 바다가 이렇게 밀접하게 만나 있다는 '낯선 풍경의 방'에 한 참을 바라보고 있던 기억이 난다. 바다 한 가운데 둥둥 떠 있는 방인가, 눈을 떠서 그런 풍경이면 무섭기도 놀랍기도 할 것 같은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해주었던 그림이었다. 그 그림 이후 에드워드 호퍼라는 작가의 다른 그림들이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에 오늘의 그림인 Compartment C, Car 293이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오늘처럼 꼼꼼하게 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한 여인이 기차 안에서 차분하게 무언가를 읽고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오늘 보니, 그린 벨벳의 천으로 만든 의자와 짙푸른 청색의 정장을 잘 차려입은 여인의 멋진 패션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풍경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나도 여인처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기차 여행 중이지만, 그녀처럼 잘 갖춰 입지도, 해가 지는 저녁이 아닌 동이 터오는 아침이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오롯하게 혼자만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다는 건 공통된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난 원래도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 영원한 평행선의 철로 위로 달리는 기차는 마치 죽음과 삶 사이의 평행선 사이로 들숨 날숨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삶과 닮아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다른 여행도 좋지만 기차 여행은 더더욱 설레임을 동반한다. 홀로여도 함께여도 좋다.


기차는 내게는 움직이는 방이자 특별한 공간이다. 직접 운전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여행을 떠올리면 언제나 기차가 연상되기도 한다. 문득 내 옆 자리에 언젠가는 비포선라이즈 영화에서의 에단호크처럼 멋진 남성이 한 번은 찾아오겠지 하는 막연한 소녀같은 바램을 아직도 품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수학여행 갈 때처럼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가는 그런 기차여행도 좋지만 때로는 그림 속 여인처럼 혼자서 하는 여행도 좋아한다.(혼자하는 여행이 아닐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이니) 혼자서하는 기차 여행의 매력은 그 공간이 오롯하게 나만을 위한 명상의 공간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창 밖의 풍경이 바뀌고 검은 터널도 지나고 맛있는 김밥도 먹고 잠도 자고 평소에 못 읽던 책도 읽고 하다보면 가끔 몇 생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때도 있다. 삶의 속도를 느끼기에 기차여행 만한 것도 없다. 잠시 현실을 벗어나서 다른 현실로 이어지는 마음쉼표의 공간으로서의 기차, 그래서 때로 고독해도 좋은 움직이는 방.


이제는 부산까지 KTX로 2시간이면 가는 시대라서, 때로 조금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새마을호를 타고 싶어지기도 한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참 많은 기차들을 만나보았다. 창문도 닫히지 않아서 비바람을 고스란히 뒤집어 썼던 인도의 침대칸 기차부터 움직이고 있는지 서 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고 빨라서 하마터면 내리는 곳을 놓칠뻔한 독일의 ICE, 프랑스 니스의 해안가를 향해 달리던 TGV, 프랑스에서 영국을 해저 터널을 지나서 기차가 간다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유로스타 등 호퍼의 그림 한 장 덕분에 그간 여행하면서 탔던 수많은 기차들을 떠올려 본다. 그 움직이는 방 안에서 나도 항상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래도 핸드폰도 발달해있고, 컴퓨터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지금처럼) 예전에는 항상 책을 들고 다녔다. 그건 기차를 타기 위한 나만의 리추얼이기도 했고, 이번 기차 여행에서는 어떤 책을 동반자로 선택해야 할지 여행 짐을 쌀때 가장 숙고하고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때로 그렇게 심혈을 귀울여서 고른 책은 펴보지도 못한 채 너무나 멋진 풍경에 마음을 뺏기거나 멍 때리며 지나갈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늘 작은 책이라도 손에 꼭 쥐고 함께 한다. 오늘도 내 곁에는 책 한권이 있다. 타자로서 자기자신이라는 이번엔 좀 어려운 책을 들고 탔는데, 그래서인지 잘 읽히지 않아서 에드워드 호퍼 그림을 감상하며 리추얼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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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달라진 풍경이라면 기차내에서 맛있는 김밥도 먹을 수 없고, 답답하게 마스크를 계속 쓰고 이 긴긴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타인과의 선을 긋는 장치가 하나 늘었다. 예전 기차 여행하면 옆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면서 특히 유럽 배낭 여행 할 때에는 지도를 펴서 여기는 꼭 가보라며 여행객들에게 친절한 우연한 만남들에도 열려 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자신만의 작은 공간 그리고 말도 자제해야 하는 공간 속에 있는 느낌이다. 어느새 울산 통도사를 지나고 있다. 호퍼의 그림을 통해 추억 여행까지 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내 옆 자리 사람들도 기차가 종점에 다가와 가니 점점 하나둘 비어간다. 새로운 역에서 새로운 사람이 타기도 하고 또 종점이 다가올수록 비어가는 자리들이 마치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인생으로도 새로운 인연들이 이어지기도 하고 어느 사이 인생에서 내려 저만치 사라져간 인연들도 있다. 인생의 종점에서 난 누구와 함께하고 있을까 내 손에는 어떤 책이 들려있을까. 내가 쓴 책 한 권 정도는 손에 들어볼 수 있을까. 오늘 부산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도 과거부터 미래까지 몇 생이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벌써 마지막 역인 부산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제 새로운 현실과 이어질 시간이다.


오늘의 그림 덕분에 KTX-산천 019 2호차에서의 고독한 명상의 시간을 얻었다. 멈추지 못하고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왔던 삶과 다시 이어질 삶 사이에서 나만의 리듬을 다시 회복한다. 그림 한 장 덕분에 이런 소중한 시간과 만났다. 잠시 삶과 삶 사이의 휴식과 평온한 0점 조준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차에 올라보자. 칙칙폭폭 삶은 계속되니까. 고독한 기차 여행자의 마음 그리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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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그림 에드워드 호퍼의 Compartment C, Car 293을 오마주한 오늘의 사진_묘한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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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_해석

�화해하는 글쓰기 Day 2 - 21. 7. 13.

고독에 대해 평생에 걸쳐 탐구했던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에드워드 호퍼입니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호퍼는 맨하튼의 한 아파트에서 50년이 넘게 살며 뉴욕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일 바라보는 면밀한 관찰자가 됩니다.

호퍼가 살았던 시대의 미국은 산업화로 인한 경제 급성장과 대공황, 그리고 두번의 세계대전 등을 급격하게 겪어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적응하기 어려운 빠른 속도의 변화를 마주했습니다. 호퍼는 이렇듯 바쁜 도시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의 감성을 예민하게 파악해 작품에 표현했습니다.

호퍼 작품의 주된 주제는 도시의 한 편에서 포착된 혼자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의 작품은 현대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해 그 고독의 정서를 그대로 우리의 마음에 관통시킵니다.

하지만 일생동안 '고독'을 파고들었던 호퍼 자신은 정작 평생 최고의 파트너와 늘 함께였습니다. 호퍼는 뉴욕미술학교 동급생인 조세핀 니비슨과 결혼해 86세로 죽는 순간까지 함께했어요. 조세핀은 스스로도 화가였으며 호퍼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발견해 그를 데뷔시킨 기획자이자, 호퍼의 유일한 여성 모델이며 그의 예술 세계의 가장 큰 조력자였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화가로서 성공하고 싶던 조세핀과 그녀를 질투하고 제지하던 호퍼의 관계가 늘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억눌린 감정들이 폭발해 거친 몸싸움으로 이어질 때도 있었지요. 그들은 서로 사랑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였지만, 일상과 꿈과 커리어라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깊게 얽매이면서 지긋지긋한 감정의 마찰은 피할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되었기 때문일까요. 제게는 호퍼의 작품들이 모두 서글픈 고독을 담고 있는 것처럼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293호 열차 C칸>이라는 제목의 작품에서는 기차 안에서 잡지를 읽으며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모자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녀의 얼굴에는 다른 호퍼의 작품들에서처럼 특정한 감정을 유추할만한 표정이 보이지 않아요. 이 작품의 모델 또한 조세핀이었을 것입니다.

담담한 얼굴의 그녀이지만 저는 왜인지 그녀가 이 순간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을이 아름답게 물든 바깥 풍경을 빠르게 지나치면서 홀로 조용히 잡지를 뒤적이는 평온한 시간처럼 느껴져요.

저 또한 때때로 이런 순간을 가집니다. 누군가의 아내나 자식, 부모라는 중압감, 사회적인 역할을 모두 벗어던지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이지요. 조세핀도 호퍼와의 끊임없는 부대낌에서 거리를 두고, 나다움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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