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호에서 극호가 되다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 후 3년 전쟁 당시 하치만타로요시이에八幡太郎義家의 군대가 말의 등에 얹은 가마니를 열어보니 삶은 콩에 실이 생겨 있었다. 전쟁 중에 군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를 버릴 수 없어 조심히 먹어봤는데, 의외로 맛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를 알렸고, 이것이 낫또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낫또는 나의 일본 생활의 숙제 같은 존재였다. 장수식품으로 워낙 명성이 자자하여 나 또한 불로장생을 꿈꾸며 한국에서도 몇 번이나 국내 제품을 먹어 본 바 있으나 끈적하고 미끄러운 식감이 매우 낯설고 맛 또한 입에 맞지 않아서 매번 유통기한을 넘기고 된장찌개나 청국장 토핑이 되기 일쑤였다. 청국장의 토핑으로서의 낫또는 꽤 괜찮은 재료였다.
우리나라의 청국장과 일본의 낫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음식이다. 청국장은 삶은 콩을 볏짚에 넣어서 자연발효를 시키고, 낫또는 삶은 콩에 균을 주입하여 발효시킨다. 청국장은 끓여 먹고 낫또는 생으로 먹는다는 점도 다르다.
여전히 불로장생을 꿈꾸는 나는 미련이 많아서 일본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낫또 코너에 시선이 갔다. 우리나라 마트의 김치 코너만큼 다양한 상품이 있었다. 우선 본능적으로 다양한 패키지 디자인에 눈길이 갔다. 가격도 세 팩 번들이 100-200엔 대로 저렴하고, 한국 가격과 비교했을 때도 매우 저렴해서, 낫또를 먹을 수만 있다면 먹으면 먹을수록 돈을 버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낫또가 불호에서 호가 되다
본고장의 낫또는 뭔가 다를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낫또를 사서 먹는데, 안타깝게도 그 또한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때 '낫또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레시피 하나를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 발효음식 김치와 낫또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김치 낫또 레시피
- 낫또: 1팩
- 익은 배추김치: 낫또와 동량
- 청양고추: 다져서 반 개
- 낫또에 동봉된 간장
- 깨소금, 쪽파, 참기름 약간
이 레시피를 알게 된 이후 김치 낫또를 얹은 덮밥이 한동안 나의 점심 메뉴가 되었다. 딱히 냉장고에 먹을 게 없을 때에도 김치 낫또 덮밥을 먹었다. 자다가도 김치 낫또가 먹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는데, 신기한 사실은 머지않아 아무런 양념 없이 먹는 낫또 또한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낫또에 대해서 취향이라고 할 바가 없어서 단순하게 할인 행사 상품을 샀다. 사진 속의 홋카이도 낫또는 행사 때는 90엔대까지 할인을 하기도 했다. 포장을 뜯으면 낫또 안에 간장 소스와 겨자 소스가 들어있다.
낫또에도 종류가 있다.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낫또의 패키지에 쓰여 있는 내용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바라키현, 홋카이도현, 미에현, 아키타현 등등 원산지도 다양했다. 글이 눈에 들어온 후에야 할인 행사 상품 외의 낫또에도 손이 갔다. 그리고 김치만큼이나 다양한 낫또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낫또는 콩의 크기에 따라서 대립大粒, 중립中粒, 소립小粒, 히키와리로 나눈다. 대립과 중립의 경우 회사마다 그 기준이 달라서 어떤 대립은 다른 회사의 중립보다 입자가 작기도 하다. 히키와리는 맷돌과 비슷한 도구로 간 콩을 원료로 하는데 이가 없어도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
또한 콩의 색에 따라서 일반적인 황토색콩, 검은콩, 초록콩(완두콩)으로도 나눌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낫또 팩 안에는 간장 소스와 겨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맛과 농도는 제품에 따라서 다르다. 그 외에도 간장 소스에 달걀맛이 첨가된 제품, 우메보시, 시소, 파 등의 건더기가 추가된 제품도 찾아볼 수 있다.
낫또에 관한 오해
낫또를 저으면 저을수록 점액질의 실이 생긴다. 이 실에는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조절하고 혈전을 예방하는 나토키나제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소문에 의하면 이 실이 많이 생길수록 나토키나제가 증가한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젓는 횟수에 따라서 소스가 고루 분포되며 맛의 차이가, 또 점액질의 양에 의해 식감의 차이가 생길 수 있는데 너무 과하게 저을 경우 점액질이 점점 고체화되어 딱딱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다양한 낫또의 세계
수많은 디저트로 유명한 일본의 편의점에서 나의 최애 음식은 낫또 마끼이다. 가격도 180엔, 두 줄을 사면 한 끼를 해결하기에 딱 좋은 양이다. 초밥에 낫또를 넣어서 김으로 돌돌 말은 낫또 마끼는 하얀 쌀밥과 함께 먹는 낫또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한때 나는 낫또 마끼에 심취해서 모든 슈퍼와 편의점에서 파는 낫또 마끼를 먹고 다녔는데 개인적으로는 로손의 낫또 마끼를 가장 맛있게 먹었다. 그 이유는 쌀밥의 양념이 가장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븐일레븐의 카리카리우메낫또カリカリ梅納豆 마끼에는 아삭아삭 새콤한 매실 과육이 낫또와 함께 들어있는데 서로 다른 느낌의 두 재료의 조화가 식욕을 마구마구 자극한다.
낫또 마끼 외에도 낫또에 참치회, 문어숙회, 간장, 김가루, 달걀노른자를 넣어서 비벼 먹는 바쿠단낫또爆弾納豆(폭탄낫또), 낫또에 명란젓, 버터, 달걀노른자를 곁들인 우동도 평소 내가 좋아하는 낫또 요리이다.
음식은 습관이라고 한다. 지금 나는 시드니에서 수십 분을 운전해서 일부러 낫또를 사러 갈 정도로 낫또를 사랑하지만 이렇게 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요즘 저속노화 식단이 주목받는다고 하니 미워하던 낫또도 다시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낫또에 익숙하지 않다면 일단 김치 낫또 레시피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