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카와이로 가득하다
도쿄로 이주를 한 해에 코로나가 터졌다
불행하게도 내가 도쿄로 이주를 한 해에는 세계적인 대재앙, 코로나가 터졌다. 2019년 말 일본은 소 닭 보듯 이웃 국가의 코로나 상황을 보도했고, 주변에는 이미 미각과 후각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결핍이라는 원인불명의 병을 진단받았으며 일본 정부는 스스로를 코로나 청정국이라고 했다. 어학원에 친구들이 하나, 둘, 고열을 동반한 독감인지 코로나인지 모를 병에 걸리고 일본어 선생님들도 걸렸다. 싱가포르 출장을 다녀온 곤잘레스 씨(남편의 별명)의 동료들이 하나, 둘 심한 독감인지 코로나인지 모를 병에 걸리더니 곤잘레스 씨가 걸리고 또 며칠 후 내가 걸렸다. 나는 남들보다 심하게 앓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호흡기에 이상이 왔다.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싶다고 해도 담당 의사는 일본에는 코로나가 없다는 말 뿐이었다. 일본어 어학원도 그만두고, 운동도 그만두고, 대학병원을 다니며 집에서 편히 쉬었다. 이곳이 서울인지, 도쿄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생활이었다. 곤잘레스 씨와 한국어로 대화하고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 보고 한국 음식 만들어 먹는 일상. 일본어를 단 한 마디도 듣지 않고 보지도 않고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새로운 것에 목이 말랐다.
쇼핑을 하러 가자! 쇼핑을 가서 코로나 블루를 날려 줄 무언가를 찾아보자! 쓸모없고, 대수롭지 않고, 비싸지도 않은 쇼핑을 해 보자! 쇼핑의 조건 하나, 일본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줄 것! 둘, 웃게 할 것. 그러다 보니 자꾸 귀여운 물건이나 음식을 사 나르게 되었다.
처음부터 귀여운 물건들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일상을 조금 사랑스럽게 연출하고, 소소하게나마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그저 이것이었던 것이다.
이 도시는 나에게 외친다
'카와이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귀여운 것들이 나의 일상으로 훅- 들어왔다. 헬로키티, 도라에몽, 리락쿠마, 미키마우스 모양의 드라이 어묵은 소바나 우동 위에 동동 띄워 먹는다. 후식으로는 귀여운 캐릭터 치보가 그려진 치치야스チチヤス의 밀크커피나 밀크티 또는 요거트가 좋다. 조금 출출하면 분메이도의 카스텔라를 먹는다. 운동 후에는 카가와현의 특산물 올리브 사이다로 시원하게 목을 축인다. 밤이 되면 일본 최초의 마이크로브루어리에서 만든 IPA 맥주 한 잔으로 행복감에 취해 본다. 해먹에 누워서 맥주를 기다리는 곰돌이가 그려져 있다.
배가 부르면 잠깐의 산책도 좋다. 귀여운 간판, 전철역의 귀여운 포스터, 할머니의 귀여운 복장과 목소리까지. 이 도시가 나에게 외친다. ‘카와이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도쿄에 살아보니 어떠냐고 물으면 나는 늘 이곳은 모든 것이 ‘카와이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치는 도시라고 말한다.
귀여운 건 원래 내 취향은 아니었다
사실 귀여운 것은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내 취향은 군더더기가 없이 심플하고 세련된 쪽에 가깝다. 귀여운 것은 곧 ‘불완전한 것’ 또는 ‘유치한 것’이라고 여기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 여름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웠던 어떤 날, 마스크를 하고 세븐일레븐에서 판매한다는 2020년 페코짱 70주년 기념 인형을 사기 위해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나를 발견했다. 나도 이런 내가 낯설었다. 귀여운 것들은 있는 듯 없는 듯 늘 내 주위를 맴돌다가 내가 외롭고 지루함을 느끼는 사이에 내 인생에 훅 들어왔다. 그리고 사랑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카와이’를 외치게 만든다.
어머, 이건 꼭 가져야겠어!
시바견 마시멜로
SNS에서 우연히 본 시바견 얼굴 모양을 한 마시멜로우는 ‘카와이’를 향한 나의 열정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그날 밤 나는 그 계정의 주인에게 DM을 보낼까 고민했다. 일단 나는 다음날 아침 백화점 식품관을 돌아다녔다. 동쪽으로는 긴자의 미츠코시 백화점을, 서쪽으로는 신주쿠의 이세탄 백화점을, 그야말로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홍길동이 그랬듯이 돌아다니며 진돗개는 진돗개라고 부르고 시바견은 시바견이라고 부르며 시바견 마시멜로를 찾아다녔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웬만한 정보는 검색으로 알 수 있는 시대에 검색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돌아다닌 건 마음이 급해서였다. 일본어로 '시바이누 마시멜로柴犬マシュマロ'를 검색하자 여러 사이트 중 하나에 내가 찾던 상품이 있었다. 마시멜로를 주문하기 위해서 회원가입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석하기 어려웠지만 직감을 따라서 내용을 입력했다. 이상한 점은, 주문이 완료되었다고 하나 나는 그 어떤 결제 정보도 입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시 결제를 하지 못해서일까? 수 주가 지나도 마시멜로는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웹사이트에서는 배송준비 중이라는 안내가 표시되었다. 온라인 송금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이대로 결제를 하지 못해 취소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어 울렁증으로 전화를 걸어서 물어볼 자신은 없었다.) 한 달이 조금 더 지났을 때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다. 열어 보니 시바견 마시멜로가 들어 있었다. 결제를 하지 않았지만 배송이 된 마시멜로! 상자 안에는 지로 영수증이 하나 있었는데, 우체국에 가서 결제를 하면 된다고 했다. 결제보다 상품을 먼저 보내 준 이 시스템이 신기했다. 아무튼 그 시바견 마시멜로를 받고 한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시바견의 모찌모찌한 볼을 꼬집어 보고, 말차 위에 띄워 보고, 핫초코 위에 띄워 보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별 의미 없는 행동으로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며 ‘카와이’를 연신 외쳐댄 한 주였다.
카와이에는 힘이 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는 ‘카와이’에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예쁜 것, 귀여운 것,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잠시 그것을 즐기는 습관. 아무리 ‘개인주의적이며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다.’는 일본인들도 귀엽고 예쁜 것을 보았을 때마다 얼마나 자주 ‘카와이’라는 말을 표현하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어느 곳이든 여자들이 많은 장소에 있노라면 이곳저곳에서 ‘카와이’가 들려온다. 남편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카와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 백번 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서 대화 중 ‘카와이’라고 말을 꺼낼 틈을 노리는 사람들 같다고 했다.
나에게 ‘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 걸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나는 지금 일본에 살고 있으니까! 집 혹은 친척집에 걸려 있던 ‘달마도’의 달마를 기억하는가? 수묵화로 그린 무섭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달마 대사도 일본으로 오면 동글동글한 몸을 하고 굴러 다니는 나라, 아이들이 '달마상이 넘어졌다. だるまさんが転んだ(다루마상가코론다)。'를 외치며 노는 나라, 나는 지금 그런 일본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