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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Dec 12. 2016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정, 한 끗의 차이

개연성 있는 재난영화 <판도라>

옆 나라 일본은 흔들림이 잦은 환태평양 경계 위에 존재해 지진에 그대로 노출되어 수십 번도 피해를 겪은 섬나라다. 과거에는 '지진'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와는 크게 관계없는 재해인 줄로만 알았으나 이젠 그렇지 않다.   

2016년 9월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규모만 5.8이다. 이는 1978년 지진 관측 이래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현지에 있었던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럴 만도 했다. 나 역시 현지에 살고 있는 가족, 친지들에게 연락해 '괜찮다'는 한마디를 바로 확인하고자 했으니...

영화 <판도라>는 자연재해와 인간이 만들어낸 양날의 검 '원전'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컨트롤타워 즉 정부의 무능함과 숨겨진 악의(惡意)를 이야기한다.  

영화 <판도라>에 내재된 것

바다와 인접하고 있는 작은 마을 월촌리에는 거대한 원자력발전소가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 자리한 월촌식당은 아침부터 북적인다.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재혁(김남길)은 조카와 함께 방바닥에 누워 일어날 생각이 없다. 엄마 석여사(김영애)의 잔소리가 이어지고 형수 정혜(문정희)는 옆에서 웃고만 있다.

발전소로 출근하려고 버스에 오르지만 마을 주민들은 발전소 앞에서 시위 중이다.

"아 이 사람들 또 이러고 있네"

아마도 몇 번이나 발전소를 찾아와 시위를 했던 모양이다. 발전소는 수십 년이 지나 꽤 노후된 상태로 수많은 위험요소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리스크(Risk)에 대해서는 다들 인지하고 있었던 눈치다. 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원자력발전소장 평섭(정진영)이 리포트를 만들어 은밀하게 올린다. 이 자료는 대통령(김명민)에게 어렵사리 전달되고 이와 관련해 국무총리(이경영)와 독대한다. 국무총리는 국정운영의 실세로 연약한 대통령을 움켜쥐고 뒤흔든다.


"국정운영은 경험과 연륜으로 하는 겁니다"

대통령을 무시하는 발언이지만 대통령은 국무총리의 말에 대응하지 못한다.

마침 월촌리에 규모 6 수준의 지진이 일어난다. 노후된 원전 하나에서 틈이 생기고 갈라져 냉각수가 새어 나온다. 급기야 유출되는 방사능. 발전소 직원들은 지진 피해보다 원전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으려 고군분투한다. 자연재해와 이로 인한 원전 사고에 대해 관련 부처와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실 발전소나 송전탑은 병원이나 마트와는 달리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이지만 '굳이 내 집 앞'에는 불필요한 '님비(Not In My Back Yard)'현상의 주체다.  원전의 경우 사고가 나면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1983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그랬고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가 그랬다.  

님비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그와 반대인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 역시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 두 가지 현상 모두 지역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월촌리 마을 사람들 역시 '필요악'임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반대하고 누군가는 그저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좋은 모습만 표현하면서.  

원전을 두고 필자가 '양날의 검'이라 표현한 것은, 영화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영화 도입부에 재혁의 여자 친구인 연주(김주현)가 원전에 대해 설명한다.

"화석연료와는 달리 유해물질이 방출되지 않아 생태계와 지구 환경 보존에 이바지하는 최고의 에너지"

당연히 '안전'을 보장한다면 지구 상에서 가장 좋은 에너지일 것이다. 단,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방사능은 인체에 너무도 위험한 독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충분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판도라>에서는 양날의 검이 월촌리를 예리하게 베었다. 재난은 일어났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국민들의 안전보다 값 비싼 연료봉을 걱정하는 사람이 생겼으며 대규모 피난으로 인한 주변 도시의 2차, 3차 피해를 우려하는 국무총리는 언론통제와 국가의 안정, 월촌리 마을 사람들의 희생을 앞세워 더욱 위기로 몰아갔다.   

월촌리는 자연재해 위에 또 다른 재해가 덮친 셈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는 위기 속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눈 앞에서 국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죽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앞가림이 먼저다. 월촌리 마을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컨트롤타워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국무총리는 그렇게 대통령과 마을 사람들을 압박했다. 


지진이나 원전사고로 인한 재앙보다 컨트롤타워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무능력함과 이기적인 발상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초대형 재난이다. 아니 어쩌면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가장 현실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다.  

영화는 원전사고로 인한 아수라장을 어마어마한 CG컷으로 뒤덮어 더욱 극적으로 표현했다. 여기에 가족애를 '신파'로 엮었다.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의도는 크게 나쁘지 않다. 어쨌든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고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는 재난 영화의 공식이니 말이다. 

소재에 비해 플롯이나 연출 자체가 전체적인 짜임새에 '틈'을 보이고 있어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명배우들이 소리만 질러대거나 어설프게 표현된 것 역시 허점이라면 허점이겠다.   

다만 컨트롤타워가 무너져 내린 영화 속 모습과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한 '구국 히어로'에 관한 설정은 작금의 시국과 아주 묘하게 어울리는듯한 느낌을 준다. 

관객들은 월촌리 마을 사람들에 이입되어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적인 캐릭터들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피해를 입고 사지에 몰리는 월촌리 마을 사람들 즉 피해자는 다름 아닌 '우리'이고 위기가 닥쳤을 때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컨트롤타워의 모습 또한 스크린 바깥세상 즉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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