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켓에서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춥다.
한동안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다고 느꼈었는데 잠시 방심한 사이 매서운 추위가 찾아와 온 몸을 감싼다. 두꺼운 패딩 사이를 뚫고 차가운 바람이 조금씩 스며든다. 난 다시 움츠린다.
2016년 12월.
잔인했던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이 되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남아있는 휴가를 몽땅 내고야 말았다.
"이래도 되는거겠지?"
연말이 되면 때마다 하루 이틀 쉬었던 게 전부였는데 올해는 이 핑계 저 핑계를 가져다 붙여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휴가를 내놓고 보니 뭔가 죄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휴가 하루 전날, 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캐리어를 꺼내 짐을 쌌다.
다행이다.
그렇게 휘몰아쳤던 차가운 바람이 떠나는 날이 되니 다소 누그러진 느낌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지금 이 온도도 차갑게 느껴지겠지'
푸켓의 시간은 밤 11시. 온도는 30도 내외.
그러고 보니 여름에 느낄법한 에어컨의 눅눅한 향이 느껴진다. 그래. 이 곳의 날씨는 여름 한가운데.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이 공항 밖으로 나가면 숨이 막힐듯한 더위가 우리를 제일 먼저 반길 것이다.
미리 예약해둔 픽업 버스 안에서는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이 불었다. 오전만 해도 분명 얼어붙을 만큼의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어느새 에어컨의 바람이 반가울 만큼 푸켓의 더위에 금방 익숙해졌다.
본래 인간이란 이렇게 반응하는 것인가.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빠통비치(Patong Beach)
빠통 비치. 3년 만에 다시 이 곳에 왔다. 여전했다.
빠통 부근의 상점, 레스토랑, 바(Bar)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들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시계를 보니 현지 시간은 자정. '쿵쿵쿵' 음악 소리마저도 이른바 '불타는 토요일' 즉 주말임을 알렸다.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은 빠통 시내에는 사람들로 그리고 따가운 햇살로 가득했다. 내리쬐는 태양으로 인해 30도를 훌쩍 뛰어넘는 이 곳 푸켓은 말 그대로 찜통이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빠통 주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곳곳에 즐비한 마사지샵이나 타투(tatoo) 샵 모두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며 호객을 하고 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레스토랑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여유를 부린다. 빠통 비치와 인접해있기 때문인지 수영복을 일상복처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띈다.
햇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외선은 여전히 강렬했고 각종 해산물과 열대과일을 파는 상점들도 여전했다. 당시 공사 중이었던 건물은 어느새 호텔이 되어 관광객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아! 물론 빠통비치를 향해 부서지는 파도와 흐릿한(?) 물 색깔도 예전 그대로다.
빠통비치에는 3년 전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백사장 길이만 약 4km에 달한다고 했는데 그 해변가 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지난 8월 어느 무장단체의 테러로 인해 폭발사고가 있었다고는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자신들만의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다.
빠통 비치는 푸켓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푸켓에서는 최대의 해변이라 할 만큼 주변 상권이나 리조트가 즐비하다.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충분하다.
을씨년스러운 느낌, 카말라비치(Kamala Beach)
빠통을 벗어나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카말라비치에 다다른다. 창문을 열면 드넓은 바다가 보인다. 아니 바다만 보인다.
북적대던 빠통과는 사뭇 다르다. 조용하고 고요하며 한적하다. 차가운 물의 온도와 싸늘하게 부는듯한 바람이 왠지 을씨년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따가웠던 햇살은 온데간데 없었다. 갑자기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니 마치 가을에 느낄법한 온도가 온몸을 차갑게 만든다.
절벽에 위치한 케이프시에나 리조트에서 약 10분을 아래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카말리비치 해변가와 나이트 라이프(Night Life)를 만끽할 수 거리에 닿을 수 있다.
북적거리는 빠통의 시내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마치 시골 읍내의 밤거리를 거니는듯한 느낌이랄까?
이 곳 역시 금발의 외국인이 현지인들보다 더 많이 눈에 띈다. 우리 역시 그들에게 외국인이겠지만.
카말라비치는 푸켓 공항과 빠통비치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빠통 비치와 비교하면 카말라비치의 해변은 그리 크지 않다. 낮에는 가끔 페러세일링(parasailing)하는 보트가 눈에 들어온다.
라구나비치(Laguna Beach) 그리고 환상적인 반얀트리 푸켓
우린 다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방타오 비치(Bang Tao Beach)와 라구나비치, 라얀 비치(Layan Beach)로 길게 이어지는 푸켓의 서해안에 인접한 라구나 단지는 그야말로 거대했다.
우리나라 동해 바다가 길게 이어지듯 이 곳 역시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쭉 뻗었다.
반얀트리 푸켓은 푸켓 내 리조트 중에서 손에 꼽을만한 숙소였다. 라구나비치 바로 앞에 위치한 반얀트리는 라구나 단지 내 존재한다. 라구나 단지는 복합 리조트 단지로 반얀트리를 비롯해 앙사나, 아웃리거, 두짓타니 등이 모여있는 리조트 단지다.
빠통이나 카말라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주변 환경도 그렇고 리조트 자체가 뿜어내는 강렬한 인상과 고급스러움이 아무래도 크게 작용한 듯하다.
이 곳에서 밤 문화를 즐기려면 도보는 불가, 셔틀이나 픽업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사실 사람들이 편히 다닐 수 있는 인도와 수많은 차들이 오가는 도로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서 걸어 다녀야 했다.
거리에는 많은 상점들이 즐비했다.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역시 많았다.
빠통이나 카말라 부근에 위치한 레스토랑이 그러하듯 주변 환경이 다르고 분위기 역시 다르지만 100개가 넘는 메뉴는 대부분 동일한 편이다. 메뉴'판'이라기보다 메뉴'책'이라고 해야 할까?
똠양꿍, 얌운센, 모닝글로리 등 태국 음식은 당연히 기본. 유러피안, 프렌치 등 다양한 음식을 싸게 맛볼 수 있는 건 푸켓이 가진 장점이다.
푸켓의 야시장은 관광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한쪽에서는 먹음직스러운 생선과 고기를 굽고 있고 또 저 쪽에서는 다양한 상품을 진열해두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광장 안쪽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기타 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시끌벅적한 이 공간 위로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거린다.
라구나의 복합 리조트 단지는 위에서 언급했듯 라구나 비치, 방타오 비치와 인접해 조금만 걸어가면 해변에 닿을 수 있다. 길게 뻗은 해변의 모습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낸다. 이 곳에서 즐긴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태국의 국왕은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첫 날.
숙소 로비에서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얼마 전 서거했다는 태국의 국왕이었다. 귀국할 때까지 푸켓의 여러 곳을 지나쳤는데 굉장히 쉽게 볼 수 있었던 사진이었다.
현지 리조트는 물론이고 길거리 곳곳에서 국왕을 애도하는듯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그의 사진과 국화가 놓여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을 만큼 이 곳의 국민들은 태국의 국왕을 그렇게나 존경했던 모양이다.
2016년 10월 13일.
태국의 국왕이었던 푸미폰 아둔야뎃(Phumiphon Adunyadet)이 서거했다. 그의 나이 89세.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재위하여 '세계 최장기 재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
라마(Rama) 1세로부터 이어져 온 태국의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은 라마 9세로 알려져 있다.
1927년 미국 메사추세츠의 케임브리지 태생으로 그의 나이 20세였던 그 해, 푸미폰의 친형 라마 8세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이후 국왕으로 즉위했다. 때는 1946년 6월.
태국의 국왕 라마 9세가 70년의 재위 기간을 마치고 서거하면서 태국은 전국적으로 국왕을 애도했다. 심지어 한 달간 음주 및 오락성 행사들은 모두 금지하기도 했다.
'그냥 평범한 왕이나 통치자겠지. 아니면 지폐에 그려진 위인?'
국왕의 모습이 그려진 지폐를 떨어뜨렸는데 이를 발로 받았다면? 지폐가 아닌 국왕의 얼굴을 밟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그만큼 이들에게 있어 국왕은 추앙받는 지도자이자 정치가이자 국왕이었기 때문일터. 그건 태국 국민들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같은 제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태국의 문화이고 법이며 그들에겐 범접할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일테니 조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국왕은 군부정권과 쿠데타가 지속되는 정치적 상황과 나라의 혼란에 앞장서 중재 역할을 했고 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다. 더구나 지방경제 활성화와 농촌개발로 모든 이들의 안정을 꾀해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주입식으로 교육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이토록 사랑받은 통치자가 있을까? 이 곳의 국왕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은 정말 남달라 보였다.
2016년 나의 겨울은 모처럼 따뜻했다.
3년만에 찾아온 푸켓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공항부터 주변 리조트까지 뭔가 더욱 현대적이고 도시화된 모습이 살짝 어색하기도 했다.
때로는 시끄러울만큼 북적거리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고즈넉함을 자아냈으며 뜨거운 햇살과 더위로 인해 땀이 흘러내릴만큼 덥다가도 몸서리 칠만큼 싸늘한 바람의 느낌도, 그리고 12월의 따뜻한 크리스마스도 몇 년이 지나면 기분 좋게 곱씹을 수 있는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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