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 <아무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저 평범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야기들이 워낙 잔잔하고 아름다웠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스가모(すがも) 어린이 방치 사건'이 있었던 1988년 이후, 16년이 지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국내에는 2005년 4월 개봉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2월 다시 스크린에 올라왔다.
이 영화로 장남 아키라를 연기했던 야기라 유야는 2004년 제57회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그날이다.
올해 27살이 된 야기라는 이 영화가 제작되었을 당시 14살이었다.
※ 아래 작성된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실화와 영화의 데칼코마니
놀랍게도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바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
엄마도 있고 형제도 자매도 있었던 이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들만의' 공간에서 살았다.
하지만 세상도, 엄마도 이들을 잊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다.
아키라(야기라 유야)는 장남이다. 아키라의 엄마(유)는 결혼과 재혼을 반복했지만 법적으로는 미혼이었다. 낡은 맨션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도 엄마와 아키라만 눈에 띈다.
이웃주민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삿짐을 나르던 직원이 사라지자 거대한 캐리어 안에서 하나둘씩 아이들이 나온다.
"쉿, 조용히 해"
밖에 나가 함께 뛰어놀며 장난도 치고 어리광도 부릴 어린아이들이지만 출생신고 조차 되지 않아 주변인들에겐 들키지 말아야 할 유령 같은 신세다.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때도 천진난만하다. 간간히 엄마와 장난도 치고 게임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절대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다.
아키라와 둘째 교코(키타우라 아유)는 엄마가 없는 이런 일상이 꽤 익숙한 듯 보인다.
"엄마, 오늘 반찬 뭐야?"
한참 엄마에게 맛있는 걸 만들어달라고 떼쓰는 나이임에도 아키라는 아이들을 먹여 살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능숙하게 카레를 만들어 먹이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도 알아서 한다.
어느 날,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가니 한참 돌아오지 못한다는 편지와 함께 돈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다시 반복되는 일상. 학교에도 가지 않으니 친구 조차 없다. 베란다에도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방 한구석에서 논다. 아키라는 전기세, 수도세 등 공과금을 이체하고 남은 돈으로 편의점에서 먹을 음식을 사 온다. 많이 해본 일인 듯 전혀 어색하지 않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주 오래간만에 엄마가 돌아왔다. 양손 가득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서.
셋째 시게루(키무라 히에이)와 막내 유키(시미즈 모모코)는 엄마를 반기기보다 선물을 풀어보며 아무렇지 않게 즐거워하는 반면, 아키라는 오랜만에 돌아온 엄마만 쳐다본다. 그리고 다시 짐을 싸는 엄마.
"어디가?"
"일하러 가야 돼.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할 거야"
그렇게 엄마는 다시 먼길을 떠났다. 언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엄마로부터 태어난 아이는 모두 5명. 하지만 차남은 병사하고 말았다. 그 시신은 어디에도 묻히지 못한 채 벽장 속에 갇혔다고 한다. 당시 장남은 14살이었는데 밑으로 여동생만 셋. 고작 7살, 3살, 2살에 불과했다.
엄마는 집을 나가 가끔 돈을 부치고 장남에게 아이들의 안부만 물었다.
영화 속에서도 아키라의 모습은 되풀이되는 일상과 가난에 지치고 힘겨워보였다. 당연히 또래 친구를 찾게 되었고 없는 형편에 그들에게 먹을 음식을 사주며 친구로 만들었다.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지 못해 연체가 되자 전기도 급수도 모두 끊겼다. 무더운 여름, 씻지도 못하고 시원한 물도 마시지 못해 근처 공원에서 물을 받아 사용하고 급한 대로 화장실도 쓴다.
"쟤네 집에서 냄새나"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아키라의 곁을 떠났다. 아키라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엄마는 여전히 연락이 없다. 엄마가 보내주던 돈도 바닥이 났다.
아키라는 엄마가 있을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직감한다.
점차 야위어가는 아이들. 좁아터진 집은 쓰레기와 빨래, 먹다 남은 음식으로 넘쳐난다.
영화를 보다 막내 유키의 모습을 보고는 참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저 어린것이 무엇에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갈까? 돌봐줄 엄마도 없이, 먹을 것도 없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오빠를 쳐다보는 모습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웃고 있지만 슬퍼 보였다.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보고 싶다던 막내. 한정된 공간을 떠나 멀리 가고 싶었던 것일까?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노레일도 신기한지 한참 동안 쳐다본다.
모노레일은 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을 알리는 오브제처럼 활용되었다. 유키가 살아숨쉬는 동안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으로.
엔딩 시퀀스에서 막내 유키(시미즈 모모코)는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않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갔다.
짐가방에 숨어 몰래 들어왔던 유키는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갔고 비행기가 잘 보이는 공항 근처에 묻혔다. 오빠 아키라는 결코 울지 않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막내였지만 이들은 다시 물을 뜨러 공원에 가고 편의점에서 음식을 얻어온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리고 세상은 아직도 이들을 모른다.
절제된 연출로 인해 더욱 먹먹해지는 가슴
결국 이 영화는 평범하지 않았다.
더구나 실화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관객을 펑펑 울리진 않는다. 140분을 꽉꽉 눌러서 채운 묵직하고 절제된 연출의 힘이 아이들의 특별한 연기와 돋보이는 조화를 이룬다.
분명히 비극적인 현실이고 극한의 상황이 녹아든 플롯이지만 영화는 '아이들의 내적 그리고 외적 성장'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오빠, 어디 아파? 감기 걸렸어? 목소리가 이상해"
극 중 교코가 아키라에게 말한다. 변성기가 찾아온 아키라는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질풍노도의 시기를 엄마 없이 겪었다. 아이들을 위해 알뜰했던 아키라도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마음에 점점 느슨해지고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게임에 빠져든 모습 역시 현실 도피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순간부터 아키라의 집안은 격변했다. 치우지 않은 잡동사니들과 빨래가 쌓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의 낙서는 벽 한가득 채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베란다에서 키우는 꽃과 잎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듯 이들도 함께 자라난다.
앞서 '실화와 영화의 데칼코마니'라 표현은 했지만 실제 사건은 보다 더 잔혹하다. 막내딸의 죽음 역시 폭행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것, 장남이 가담을 했다고 알려진 점을 감안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감독은 날 것을 최대한 배제했다.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힘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대로 들고 오진 않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플롯을 짜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아이들을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하고 실제 계절이 바뀌는 모습들을 아이들의 성장에 맞춰 카메라에 담아냈다.
눈이 내려 소복이 쌓이거나 벚꽃이 휘날려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거나 무더운 여름에 지쳐 땀을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배경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론 처절하게 때론 따스하게 그려진 그의 작품을 보면 투박할 법한 카메라 워킹도 탄탄한 플롯에 가려져 감독의 마음이 고스란히 비칠 때가 있다. 평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140분간 아이들의 일상이 그려진다.
엔딩 신은 있지만 이들의 엔딩은 나타나지 않아 돌고 돈다. 막내를 잃은 이들은 그저 담담하다. 그래서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는지, 또 다른 슬픔이 있는 건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짧았던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랐고 키도 조금씩 컸다. 아이들은 그렇게 현실에 적응하며 성장해갔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싸늘하게 죽어간 막내 유키의 모습이나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키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