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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Feb 20. 2017

여기, 신념 하나로 살아온 영웅이 있습니다

#36 멜 깁슨 감독의 <핵소 고지>

전쟁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참혹하다. 아니 참혹할 것이다.

내 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총을 쏘고 적군을 죽이지만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끼는 공포감과 두려움은 필자를 비롯해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느낌이라 추측할 것이다. 하지만 총 한발 쏘지 않고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신념이라는 것을 총알도 피하는 용맹함으로 또 그와 함께한 누군가에게 자극이 된다는 것,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핵소 고지(Hacksaw Ridge)는 2차 대전 당시 일본 오키나와 전투의 주요 장소였다.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면 '핵소'라고 불리는 고지가 나오는데 여기를 누가 먼저 점령하느냐가 오키나와 전투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핵소(Hacksaw)는 '쇠톱'을 의미한다. 톱으로 잘라놓은 듯한 절벽의 모습을 두고 '핵소'라 표현했는데 실제 오키나와 지명은 '마에다 고지'라 불린다. 1945년 4월 1일부터 6월 23일까지 꼬박 83일간 치러진 오키나와 전투는 양쪽 모두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혔다.


데스몬드 토마스 도스(앤드류 가필드)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절실한 신도였고 당시 '양심적 병역 거부권자'였다. 아니 '집총거부권자'라고 칭하는게 가장 올바른 표현일듯 하다.

집총을 거부하고 응급 치료에 필요한 약품을 들고 다니며 전우의 생명을 구하고자 입대했고, 총알이 빗발쳐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무기 하나 없이 무려 75명의 생명을 구했다. 이것은 실화다.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의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죽이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살렸다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 톰 도스(휴고 위빙)는 과거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늘 폭력적인 편이었다. 전쟁터라는 현장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서우며 처절한지 아버지 톰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딱 둘 뿐인 아들의 입대를 반대했다.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기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도스는 모든 훈련을 잘 소화해냈다. 체력도 월등했다. 하지만 결코 총을 들지 않았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총도 들지 않고 전쟁터에 나간다고 하니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미군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동료 병사들과 지휘관들은 도스가 자진해서 나가주길 바랐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도스는 총기 하나 없이 의무병으로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다. 그때까진 아무도 몰랐다.

도스는 결혼을 약속한 도로시(테레사 팔머)와 가족들을 남겨두고 입대를 하게 된다. 훈련을 받긴 했지만 집총 거부로 군사재판까지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 군 상부에서는 최종적으로 참전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오키나와로 상륙한 글로벌 대위(샘 워싱턴)의 77사단 307 보병대. 핵소고지에 오르기 전까지 긴장감이 감돈다. 하나 둘 고지를 향해 오르지만 해군의 선제공격으로 인한 자욱한 연기가 이 곳을 뒤덮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들의 앞날처럼 짙은 연기 속이다.

입이 바싹 마를 정도로 모두가 긴장해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본격적인 전투 시퀀스가 스크린을 압도한다. 드디어. 여기저기 총소리와 포탄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다 죽어가는 전우와 일본군의 울부짖는 소리가 포탄 소리와 함께 스피커를 울려대니 내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 공포감마저 스며든다. 화약냄새가 피비린내와 뒤섞여 아비규환이다.

다리가 잘리고 팔이 떨어져 나가는 참혹함은 CG 하나 없이 더할 나위 없는 현장감을 선보였다. 이는 배우가 아닌 감독 멜 깁슨의 변함없는 연출 스타일로 과거 <브레이브 하트, 1995>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04>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영화라는 장르는 묘한 쾌감과 함께 스릴감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은근 선호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멜 깁슨이 직접 주연을 맡았던 <위 워 솔저스, 2002>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통해 전례 없는 감동과 긴장감 넘치는 스릴감을 느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쟁터에 가본 적도, 실제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전투 게임을 벌이듯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감과 전우들 사이에서 느낄 법한 감동을 느꼈다면 거짓말일까. 허나 그 현장에 있었던 과거 세대들에게는 뼈 아픈 역사였거나 처절했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겨준 악몽 같을 것이다.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말이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사상적으로 대립해 둘 이상의 국가가 맞붙어 상대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수행하는 행위. 누군가는 평화를 외치지만 그 평화를 위해 생명을 무참하게 앗아가야만 하는 '부조화'는 양쪽 모두에게 상당한 아픔이다.

전쟁영화라 해서 재미만 추구하진 않는다. 더구나 픽션보다 논픽션을 있는 그대로 영화화했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은 더욱 스릴감 넘친다.

과연 데스몬드 도스에게 이 영화는 어떠한 의미가 될런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게 하소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오키나와 전투 속에서도 도스는 홀로 75명이나 구해냈다.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는 전우들을 찾아 귀한 생명을 구해냈다.

그가 집총을 하고 적군을 향해 총을 쏴 승리를 앞당겼다면 또 어땠을까? 어쩌면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도스의 '신념'이 비폭력과 맞닿아있기 때문에 그가 실현한 '아군을 위한 전쟁'에서 생명을 앗아가는 총알 자체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핵소고지에서 내려와 안도감과 함께 눈물을 흘렸던 신을 잊지 못한다. 그를 향한 불신과 비난이 피로 물든 그의 몸을 씻겨내듯 말끔하게 사라진 뒤 믿음과 신뢰가 한꺼번에 그를 감싸 안았다. 그의 올곧은 신념이 용기를 만들었고 그 결과 총 한번 쏘지 않은 군인 최초로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이 내려졌다.

http://www.hacksawridgeresources.com/
신념 하나로 살아왔던 데스몬드 도스

앞서 말했듯, 데스몬드 도스는 신념 하나로 인생을 살아왔다. 때로는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신념은 생명을 구해낸 용기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되었다. 도스 역시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하늘에서는 전우들의 목소리로 응답을 했다. 팔이 부러지고 수류탄 파편에 맞아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용맹함을 잃지 않았던 군인이다.

어떤 측면에서 이 영화는 전쟁영화라기보다 개신교의 종교적 신념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사실 장로교나 감리교 등 일반적인 개신교 사이에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예수재림교에 대한 시선은 올곧지 않았다.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7th day Adventist Church)는 성경 연구가였던 밀러에 의해 1863년 설립되었다. 예수의 재림이 1843년 3월 21일부터 1844년 3월 21일 사이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밀러의 예언이 있었고 시간이 흘러 예수 재림에 대한 견해가 여러 차례 바뀌긴 했으나 토요일을 안식일로 준수하는 것이 이 교단의 상징처럼 되었다.

물론 영화 속에서도 수많은 전우를 구했던 도스에게도 안식일은 그가 지켜야 할 교리였다. 그로 인한 내면의 갈등 또한 주목할만하다.

http://www.hacksawridgeresources.com/

2006년 3월 23일 세상을 떠난 데스먼드 도스는 전투에서 총을 들고 싸운 전우들을 치켜세우며 묘지에 묻힌 그들이 진정한 전쟁 영웅이라 말하며 여러 차례 날아든 영화화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2차 대전이 있었던 1945년 이후 72년이 흘렀다. 결국 데스먼드 도스는 이 영화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후세는 이 영화로 인해 역사에 길이 남을 그의 존재와 영화화를 거절하고 앞서 간 전우를 치켜세우는 겸손 그리고 그의 올곧은 신념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될 것이다.


영화 <핵소고지>는 오는 2월 26일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짧게 언급했습니다. 실제 믿고 계신 신도도 있을 것이고 이를 '이단'으로 바라보시는 분들도 계신 것을 감안하여 일반적인 정보만 간략히 공유합니다.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의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일부 내용과 이미지는 아래 링크를 참고했습니다.

http://www.hacksawridgeresourc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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