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2017년 재개봉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04년 4월. 그때도 지금처럼 아름다운 벚꽃 잎들이 하나 둘 머리 위를 스치며 완연한 봄의 향기를 뿜어냈다. 곳곳에 피어난 하얗고 노란 형형색색의 꽃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주일 예배를 최대한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13년 전 그때.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차를 타고 예배당 뒷문으로 눈치 보며 들어가기 일쑤. 예배가 끝날 때마다 목사님은 내게 일찍 일찍 다니라며 꾸중하신다. 몇백 명이나 앉아있는 예배당인데 한눈에 알아보신다. 사실 그 꾸지람마저도 반갑게만 들렸는데 아쉽게도 몇 년 전 은퇴하셨다. 한 자리에서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교회는 세월이 지나 외형마저도 크게 변했다.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나도 한때 교회를 다니던 기독교 신자였다.
13년 전 박스오피스에서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승승장구 중이었다. 2004년 4월 2일 김래원과 문근영 주연의 <어린 신부>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맞붙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어린 신부>는 누적 310만 명을 모았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약 250만 명을 불러 모았다.
혹자들은 '교회를 다니는 신도들이 단체 관람을 왔을 정도'라며 주변에서 '할렐루야', '주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도 했다.
배우 멜 깁슨이 감독의 위치에서 직접 메가폰을 잡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개봉 전부터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이미 이 영화를 관람한 지인들 사이에서는 '가히 충격적'이라는 말들이 오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12시간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12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간 후 나 역시 이전에 없던 충격에 휩싸였다.
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아니 쓰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을 다룬 종교적 이야기를 리뷰로 담아내기가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 봐야 블로그에 일기처럼 내 생각을 쓸 뿐이었지만 '종교'나 '정치'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 나만의 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13년이 지나 재개봉되었고 난 이 작품에 대해 처음 리뷰를 쓰게 되었다.
※ 아래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문제적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이 영화는 개봉하기 전부터 시끄러웠다. 물론 개봉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상영 철회 요구까지 받았다고 했다.
예수가 로마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고통받는 잔혹한 시퀀스들이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꽤 자극적이라 여겼다. 역시나 멜 깁슨만의 극사실주의 연출은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고문을 받는 시퀀스는 극사실주의를 넘어 공포감마저 안겨준다. 공포나 스릴러, 고어물도 아닌 영화가 이렇게 잔혹하게 만들어질줄이야.
영화는 열두 제자와 가진 최후의 만찬 직후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인해 체포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가 로마 병사로부터 고문과 재판을 받는 장면, 더불어 유대인들의 광기 어린 모습들로 인해 예수의 죽음이 마치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고 해서 '반유대주의(antisemitism)' 논란이 있었다.
멜 깁슨 감독이 성경에 대해 고증(考證) 한 것을 토대로 제작했다고 한 것에 대항하듯, 일부이긴 하지만 개신교 신자들로부터 '성경 왜곡'이라며 상영 금지 또는 상영 철회를 요구받기도 했다. 또 어떤 무신론자들은 예수 미화라며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문제적 작품'이라 할만하다.
예수의 마지막 12시간
유대교 지지자들은 예수(제임스 카비젤)를 위험인물로 낙인찍기 시작했고 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 예수가 하나님의 메시아로 추앙받고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모습을 보자 이를 골칫거리처럼 여기기도 했다. 가롯 유다(루카 라이오넬로)는 유대 사제들에게 예수를 체포하게 해주겠다며 은화 30냥를 받고 팔아넘겼다. 결국 예수는 체포되었고 나머지 제자들도 흩어졌다. 결국 신의 아들을 자처한 예수는 사제들에게 심문을 받게 되었고 신성모독이라는 죄로 고발되었다.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흐리스트 쇼포브)는 예수가 결백하다 느꼈다. 표정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사제들은 완강했고 그 요구에 이기지 못해 처형을 명한다.
사람들의 탄식과 야유가 뒤섞인 혼란 속에 예수는 거대한 십자가를 들고 골고다(Golgotha) 언덕에 오른다. 예수는 이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롱기누스의 창에 찔려 죽는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한다.
멜 깁슨 감독의 극사실주의는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했다는 로마인들의 폭력, 그 시퀀스가 전부는 아니다.
멜 깁슨이 연출한 작품 중 2006년 작품 <아포칼립토, Apocalypto>를 보다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정말 그곳에서 생활하는 실제 원시인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던 것은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언어'였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캐릭터 간 소통하는 언어 즉 모든 대사들은 다름 아닌 '아람어(Aramaic)'다. 예수와 제자들이 서로 소통하는데 쓰였다고 하는 언어가 아람어였다는 역사를 바탕으로 공부하고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그나마 이 언어를 알고 있던 전문가들을 모셔다 놓고 배우들에게 각인시켰다. 그 노력은 이 영화를 더욱 실감 나게 만들어주는 최적의 장치가 되었다.
* 아람어(Aramaic) : 예수와 제자들이 사용했다는 언어가 바로 아람어다.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언어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 쓰인 언어에는 히브리어와 일부 아람어가 섞여있었는데 예루살렘이 있는 유다 지역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사용했고 예수와 제자들간 소통했던 아람어를 쓰는 갈릴리 유대인은 다소 무시했다고 한다.
감독과 제작진 그리고 배우들의 이러한 노력은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결국 종교영화임에도 불구 당시 상업영화였던 <어린신부>만큼이나 관객수를 확보했다는 것 자체를 주목해볼 만하다.
사실 꽃잎이 휘날리는 4월이면 부활절이 맞물려있어 관객수 확보에 어느 정도 작용을 하긴 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고통받는 장면이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마이아 모건스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두운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은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리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형 그리고 부활까지 두꺼운 성경책에 비하면 매우 단편적일 수 있다. 성경책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대략 2천 페이지나 되는 내용 중에서 적당한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들에겐 그저 가학적이고 잔혹한 모습만 주입될 여지가 있다. 무신론자이거나 기독교가 아닌 관객들에겐 단순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미화일 수도, 또 다른 측면으론 폭력성으로 인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멜 깁슨은 이 영화에 대한 애착을 가졌다. 그리고 영화로 제작하는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메시지를 던졌다.
"삶의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을 때 예수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믿음과 사랑, 용서와 희망에 관한 영화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소리치던 과거 유대인들을 비난하고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죄인된 우리 모두를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예수를 바라보고 다시금 깨닫게 만드는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가 바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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