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n 잡은 루이스 May 19. 2017

화약 냄새 물씬 풍기는 두 남자의 브로맨스

#44 상투적이지 않은 스타일리시 누아르 <불한당>

누아르(noir)란 '검은(Black)'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영화에서는 '범죄와 폭력을 다룬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들을 일컫는 단어'로 쓰인다. 이 작품은 누아르와 언더커버(Undercover, 잠입)라는 전형적인 공식에 세련미와 스타일리시를 첨가했다.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두 배우, 설경구와 임시완. '과연 잘 어울릴까?'라는 의심을 뒤집은 두 남자의 브로맨스 또한 눈여겨볼만하다.

"또 조폭 얘기야?"

자칫 상투적이고 투박할 수 있는 요소들이 존재하고 알게 모르게 튀어나오는 어색한 기운마저도 느껴지지만 <제국의 아이들(ZE:A)>이라는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거듭난 임시완의 명연기와 돋보이는 카메라 워킹이 크게 한몫한다.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나쁜 놈들이 뒹구는 세상

범죄조직에서 호시탐탐 우두머리 자리를 노리는 조직의 2인자 한재호(설경구)는 교도소에서 겁 없고 패기 넘치는 조현수(임시완)와 마주한다. 남들이 '형님, 형님' 하며 굽신거릴 때 현수는 재호에게 늘 형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고 넉살 좋게 다가간다.

어느 날 어머니가 죽게 되면서 현수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오열하고 재호가 이를 다독인다.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는 두 남자의 우정과 의리를 더욱 끈끈하게 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너 여기서 나가면 나랑 같이 일해볼래?!"

그들 사이에서 피어난 브로맨스는 출소 후에도 쭉 이어진다.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어라"

재호는 현수에게 사람이 아닌 상황을 믿으라고 말한다. 결국엔 자신도 믿을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며 언제 있을지 모를 '배신'과 '반격'을 예고한다. 밀어주고 당겨주고, 친형제처럼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듯 보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진짜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이 영화의 부제는 포스터에 나와있는 것처럼 '나쁜 놈들의 세상'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재호를 포함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가 결국엔 죄다 '나쁜 놈들'뿐이다.

조직의 회장인 고병철(이경영)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야망을 꿈꾼다. 회장으로서 가진 권력을 더욱 탄탄하게 키우고 누구 하나 넘볼 수 없도록 먼저 손을 쓰려고 한다. 얼굴을 마주한 마약수사대 천인숙 팀장(전혜진)에게도 값비싼 캐비어를 건네며 성희롱도 서슴지 않는다.

고병철의 조카인 고병갑(김희원)은 회장이자 보스인 삼촌을 따라다니며 권력 밑에 굴복하는 캐릭터다. 마치 현재 위치에 만족하고 안주하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내면에는 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데 굳이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천하태평한 그의 모습이 언제나 높은 자리를 꿈꾸는 재호 캐릭터와 사뭇 비교가 된다.  

마약수사대 천인숙 팀장은 고병철 회장과 조직 소탕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피아식별에 큰 관심 없는 그녀는 오로지 검거에만 메달릴뿐이다. 승진을 위해서일까? 정말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걸까? 남의 약점을 파헤쳐 자신의 무기로 활용하는 그녀 역시 결국엔 '불한당'이라는 범주 안에 속한다.


두 남자의 브로맨스 그리고 언더커버

교도소 앞.

깔끔한 수트 차림의 재호가 빨간 스포츠카 위에 누워 현수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이어 긴 싸움을 끝낸 후 핏빛으로 물든 현수가 재호와 같은 모습으로 차 안에 누워있다. 이는 이 영화의 엔딩이다. 같은 차 안에서 재호로 시작해 현수로 끝나는 그 프레임은 두 남자의 동상이몽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부와 명예, 성공을 상징하는 빨간 스포츠카와 수트는 재호의 창창한 미래를, 하지만 교도소 앞에 펼쳐진 황량함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재호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권력 쟁취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본능적인 포식자의 형태를 갖춘다. 어린 시절 부모의 폭력과 죽음은 재호를 변화케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이는 현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현수는 재호 즉 '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 엄마밖에 모르는 '효자'로서의 현수는 엄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엄마의 죽음은 마치 현수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 느낀 두려움 같다.

같은 편이면서도 야비한 꼼수를 쓰는 경찰들도 그가 철저히 혼자가 되도록 내버려둔 것을 감안하면 재호는 그를 지키는 친구이자 형이었고 벼랑 끝에서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었다.   


현수의 정체를 알게 된 재호는 현수를 챙기면서도 의심과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실상 이 긴장감은 이 영화의 포인트기도 하다.

'언더커버'라는 소재와 설정은 영화 <무간도>, <디파티드>, <신세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들키면 어쩌지?', '정체를 알고 있는건가?'

관객들은 스파이가 된 캐릭터에 집중하고 그 캐릭터가 긴장할 때마다 호흡을 같이 하게 된다.

영화 <신세계>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이자성은 골드문 조직에 몸 담고 있지만 정체가 드러날까 늘 괴로워한다. 사실 잠입 경찰이라는 신분으로서 충분히 느낄 수 있을법한 딜레마(Dilemma)이기도 하고 그 덕분에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되었다. 결과적으로 경찰이라는 정체는 뜯겨나갔고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또 다른 야망을 꿈꾸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신세계>의 이자성과 <불한당>의 현수는 동일선 상에 있다. 현수에게 엄마의 부재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고 현수 마저도 '불한당'이라는 범주 안으로 끌어당기는 요소다. 다만 경찰이라는 신분과 조직의 일원 사이에서 느껴지는 혼란과 딜레마에는 깊게 느낄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하다.

현수를 연기한 임시완에게서 아이돌 가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역할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저렇게 착해 보이는 얼굴로 가능할까?'라는 의심도 품었다. <원라인>에서 그 의심은 깨졌고 <미생>에서는 배우로서의 신뢰감을 얻었으며 <변호인>에서 배우라는 옷이 잘 맞는다고 느껴졌다.  

명배우 설경구와 호흡을 맞추면서 임시완은 크게 돋보였다. 설경구라는 배우가 이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으니 그만큼 빛을 낼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변성현 감독이 가진 스타일리시한 카메라 연출은 어지럽지도 않고 투박하지도 않지만 다소 과한 면이 없진 않다. 플롯에 있어서 전체적인 틀이 기존 작품들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면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요소들을 첨가해줬으면 했다. 예상 가능한,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늘어지는 이야기들이 조금은 아쉽다.


※ 작성된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 대선 때문에 영화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대선을 미루라는 변성현 감독의 발언은 네티즌들의 비난을 넘어 영화 보이콧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제 박스오피스에 올라간 영화인데 '다 된 죽에 코 빠뜨리는 격'은 매우 실망스럽다. 영화 촬영과 제작에 힘쓴 배우들과 제작진에게도 '감독이자 연출자 그리고 인간으로서'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기원하는 에일리언의 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