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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19. 2017

영화 '플립(Flipped)'이 가진 의미

#48. 로브 라이너의 풋풋하고 상큼한 틴에이지 로맨스, <플립>

"누구나 한 번은 무지개처럼 찬란한 사람을 만나게 된단다"


줄리(모겐 릴리)는 어느 날 길 건너편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브라이스(라이언 케츠너)를 만나게 된다.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무한 애정 공세를 펼치는 당돌한 소녀 줄리는 브라이스의 손을 잡고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소년에게 푹 빠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된 줄리(매들린 캐롤)는 여전히 브라이스(캘런 맥오리피)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브라이스의 눈빛은 소녀를 향해 빛이 나고 올망졸망한 눈, 코, 입과 같은 부분이 모여 완벽한 하나가 되었다고 믿는다. 브라이스 뒤에서 킁킁거리며 소년에게서 뿜여져나오는 달콤한 내음을 느끼기도 하고, 집에서 키우는 닭이 달걀을 낳을 때마다 브라이스 집으로 한 바구니씩 열심히 가져다줄 정도로 열성적이다.

반면, 브라이스는 어렸을 때부터 적극적이었던 줄리가 부담스러웠다. 소녀의 손길이 민망할 정도로 내팽개친 후 엄마 뒤에 숨어 인상을 쓴다. 중학생 시절에도 줄리를 피해 다니기 위해 고민하지만 쉽지 않다. 뒤에서 냄새를 맡을 때도 이상한 아이라고 느낀다. 줄리의 닭장이 닭똥으로 가득 찬 지저분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선물한 달걀을 모두 휴지통에 갖다 버린다. 결정적으로 브라이스의 이런 행각이 줄리의 눈에 띄게 되고 이후 줄리는 브라이스를 멀리하게 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했는데,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지개처럼 찬란한 사람이 되어줄까?

드디어 개봉한 영화 <플립>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풋내와 같이 싱그러운 첫사랑의 느낌

어린 시절 만난 브라이스와 줄리의 얼굴 표정은 사뭇 다르다. 해맑게 웃으며 마냥 반가워하는 줄리와 인상을 잔뜩 찌푸린 브라이스의 모습은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브라이스는 나무 위로 올라가 저 멀리 보이는 스쿨버스의 위치를 굳이 이야기하는 줄리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날 노을을 바라보며 소녀 감성을 한가득 드러내지만 브라이스는 그런 모습마저 피하고 싶다.

어린 시절 처음 만나게 된 줄리(모겐 릴리)와 브라이스(라이언 케츠너)

영화는 같은 장면을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시점으로 반복하며 관객들을 향한 되새김질을 한다. 이는 브라이스와 줄리의 속마음을 관객들에게만 보여주는 방식이었기에 흥미를 유발함과 동시에 둘의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절묘하게 연출되었다.

영화는 줄리와 브라이스의 풋풋한 느낌과 함께 그들과 함께하는 가족들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언급한다. 브라이스의 가정은 줄리의 집과 달리 가부장적이면서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을 보인다. 브라이스의 아빠 스티븐(안소니 에드워즈)은 말 그대로 괴팍하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도 투덜거리는듯한 말투와 표정을 보이며 팍팍하게 살아온 삶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빗대어 볼 때 장애인 삼촌을 사설기관에 맡기느라 형편이 어려운 줄리의 집은 또 다르다. 어느 날, 줄리는 매일 같이 올랐던 나무가 전기톱에 의해 베어지고 사라져 버리자 크게 낙담하며 눈물을 쏟는다.

딸 줄리(매들린 캐롤)에게 나무 그림을 선사해준 아빠 리차드(에이단 퀸)

그런 딸을 보고 아빠 리처드(에이단 퀸)는 그림 하나를 그려준다. 마치 살아숨쉬는듯한 그 자리의 나무가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지고 나니 줄리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그림 속에 그려진 피사체를 두고 아빠는 말한다.

"소는 그냥 소야. 여기 초원 위에 풀과 꽃. 나무 사이로 빛나는 햇살은 그저 서로 다른 하나야. 그러나 이게 다 합쳐지면 마치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 부분들이 모여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비로소 아름다워져"

줄리가 의아해하는 만큼 나 역시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했다.

브라이스의 눈빛에 빠진 줄리에게 브라이스의 마음과 감정이 모여 이뤄낸 하나의 사람 그 자체를 바라보라는 단순하면서 무거운 의미에서 소녀가 나무 위에 올라 초원과 마을 그리고 자연이 이루는 전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관점이 오묘하게 동일시된다.  

나무에 올라 마을과 노을을 바라보는 줄리

줄리에게 아빠가 변화를 주는 사람이었다면, 브라이스에게는 아빠가 아닌 할아버지 쳇(존 마호니)이 바로 그 존재다. 줄리에게 있어서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어주는 사람이었고 브라이스에게 있어서도 사람의 내면을 보라고 늘 이야기하는 존재다. 결국 할아버지가 말한 이야기들은 브라이스에게 있어 줄리를 다시금 바라보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영화는 7살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중학생이 된 그들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잘려나간 나무가 다시 뿌리를 박아 서서히 자라나는 만큼 줄리와 브라이스도 함께 자란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담아낸 이 영화는 1960년대의 클래식함이 그림 같은 세피아톤의 화면들로 가득 차 더욱 풋풋하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어른들의 깊은 조언들이 크게 한몫하기에 성인이 된 우리에게도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서로 나무를 심는 줄리와 브라이스(캘런 맥오리피)
플립(Flipped)이 가진 의미

"플립 봤어요?"

"풀잎? 플립? 그런 영화가 있었어?"

7년 전에 만들어진 <플립>이 국내 개봉한다기에 영화 제목 'Flipped'가 가진 의미부터 찾아봤다.  

또한 영화 제목이 가지고 있는 '플립'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이 단어가 가진 몇 가지 뜻을 보니 '끼워 맞추기'식이라도 의미 부여가 되는 듯했다. 가장 먼저 노출되는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확 뒤집힌다'는 뜻. 브라이스를 향한 줄리의 일방적인 애정공세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뒤집힌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반부로 갈수록 뒤바뀌는 브라이스와 줄리의 마음

또 하나는 '화가 나서 확 돌아버린다'는 의미. 줄리가 애써 가져다준 달걀을 브라이스가 다른 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씬(scene)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걸 왜 버려? 깨지지도 않았는데?"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줄리의 입장이 되었다면 브라이스에 대한 미움과 그간 쌓였던 신뢰와 사랑이 달걀 깨지듯 다 부서지지 않았을까?

줄리의 브라이스를 향한 마음의 선물, 달걀

그 밖에도 '사람'을 향해 쓰이는 단어의 의미에서 '이성을 잃게 한다', '극도로 흥분하게 한다', '열중시킨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90분간 브라이스와 줄리가 펼치는 수많은 행동들을 떠올려보면 잘 이해가 갈 것이다.  


※ 위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 영화 플립은 우리나라에서 올해 7월 12일 개봉했다. 미국에서는 2010년에 개봉했으니 벌써 7년 전 작품이다. 7년이 흐른 작품이 우리나라 박스오피스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관객들의 힘이다. 이른바 '강제 개봉'은 상업적으로 성공할 여지가 없거나 국내 시장과는 맞지 않을거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입소문과 지속적인 요청에 의해 들어오게 된 것으로, 이젠 더 이상 '이례적인 케이스'가 아닌 셈이 되었다.

영화 <겟 아웃>은 인종문제에 대한 플롯이 굉장히 직접적인데다가 딱히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도 않았기에 한국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지랄발광 17세>도 전형적인 미국 틴에이지 무비로 한국 시장과는 성격이 맞지 않을거라는 판단에 의해 DVD행이 분명했다.

결국 <겟아웃>과 <지랄발광 17세> 그리고 <플립> 모두 관객들의 힘으로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겟아웃>은 개봉 전과 후 모두 엄청난 화제몰이를 했고 영화가 가진 반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영진위의 7월 18일자 기준으로 무려 213만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지랄발광 17세>는 100개도 되지 않는 스크린을 확보했으나 역시나 입소문을 타고 스크린 수를 늘려갔다. 영진위의 같은 날 기준으로 8만2천명이 스크린을 찾았다.     

영화 <플립>은 7월 12일 개봉해 17만명이 극장을 찾으며 '7년 전' 작품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미국 개봉 이후 7년이 지난 지금 이 정도의 숫자는 '지각 개봉'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꽤 의미가 있는 듯하다.

더구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메가폰을 잡은 로브 라이너 감독이 연출한 영화였기에 지나칠 수 없었다. 아이들의 이야기와 어른들의 슬기로운 조언들이 이처럼 로브 라이너의 로맨스로 만들어지니 '로맨스 가뭄'과 '블록버스터 홍수' 속에서 더욱 귓가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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