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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22. 2018

구속이 만드는 매너리즘과 디지털 노마드의 자유로움

[생각 단편] 모바일 오피스가 주는 자유로움은 생각보다 생산적이다 

직장인의 애환, 매너리즘

1. 취준생

추운 겨울이었다. 벌써 몇 번째 면접인지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은 100번 이상은 떨어져 봐야 그중에 겨우 한번 붙을까 말까 한단다. 취준생의 끝없는 도전과 목적을 향한 노력이 점차 정체성을 잃고 맹목적인 지원(apply)으로 이어질 때면 이대로 나를 미지의 백수 세계로 잡아끄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영어로 자기소개 한번 해보실래요?"

"(흠흠) 네.. 아니 My name is..."

나이 좀 있으신 면접관 2명이 6명의 젊은 지원자들을 충분히 압도한다. 

지금 나는 그간 연습했던 그리고 기억했던 것들을 모두 날려버리고 면접관 얼굴을 향해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 그간 웃을 일이 없었으니 잠자고 있던 근육을 억지로 움직이느라 쥐가 날 것 같다. 본래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드러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면을 쓰고 다른 영혼을 끄집어내기에 이르렀다. 그게 마치 진정한 나인 양. 그래서 그들은 속고 있다. 그들 역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내 옆에 있는 나의 경쟁자도,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면접관들도. 이 곳은 가면을 쓰고 싸우는 소리 없는 전쟁터다.   

무한도전 '면접의신' 중에서.  출처 : mbc

쓰다 버린 A4지에 남아있는 잉크의 잔향과 구겨진 종이컵에 먹다 버린 믹스커피의 한 모금이 담배냄새와 뒤섞여 사무실의 분위기를 흐린다. 벽 쪽으로는 연세가 있는듯한 분들이 신문을 보거나 눈을 감으면서(또는 잠을 청하면서) '부장'이나 '팀장'으로 앉아있고 휘하(麾下)에 나이 순서대로 부원들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차례대로 앉아있다. 출입문 앞은 거대한 복사기와 종이를 뿜어내는 프린터가 있고 이 기계들을 잘 다룰듯한 젊은 막내 사원들이 끄트머리를 차지한다. 

'내가 이 곳에 오게 된다면 나는 저 복사기와 프린터 사이에서 함께 대화를 하게 되겠지. 그래, 아프면 내가 고쳐주마!'


2. 직장인

부장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사는 알고 있다. 그들의 눈은 마치 매의 눈이자 천장에 달린 감시 카메라처럼 우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마치 군대 조직 같다. 소대장이 소대를 이끌고 부대장이 하나의 부대를 통솔하듯 부장이나 실장, 본부장들은 자신이 거느리는 사원들을 지휘한다. 지휘와 통솔에는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법. 막내 사원이 결재를 올리면 이 결재는 바로 위 선배들을 거쳐 차장, 부장 등으로 이어진다. 부장이 결재하고 나면 다시 이 결재는 실장, 본부장, 국장으로 넘어가고 또다시 상무나 전무 등 임원의 손에 닿게 된다. 검은색 결재판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거쳐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한다. 가끔 '결재를 바랍니다'라고 쓰여있는 결재판에 '책임져주세요'나 '허락해주세요'라는 말이 어울릴 때가 있다. 결재와 승인에는 반드시 책임의 의무가 뒤따를 테니까.

tvN 드라마 <미생>  출처 : program.tiving.com

드라마 <미생>에서도 볼 수 있듯, 보통의 회사(어쩌면 일부 회사)들이 위와 같은 구조가 조직과 서열을 형성하고 회사의 체계를 만든다. 아니 역으로 보면 회사의 조직을 체계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딱딱한 배열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과거 어느 시점부터 존재했을 법한 고루함이 아날로그를 벗어나지 못한 채 디지털 시대에서 뒹굴고 있다. 입으로는 '디지털'과 '모바일'을 외치지만 실체도 모른채 맹목적으로 덤벼드는 모양새는 '구시대적'이다. 물론 이러한 조직들이 반드시 고루하다고 볼 순 없다. 조직 안에서 '행복한 직장'을 만들고 웃으며 일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니. 해피하게 돈을 번다는 일, 얼마나 좋을 일인가. 

'고루함'이니 '아날로그'니 죄다 나 자신이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 편견일 수도 있고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내가 경험해본 회사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결과는 선입견도 아니었고 억단도 아니었다. 온전히 팩트였다. 


3. 매너리즘

구속과 압제는 늘 있었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할 때면 젊은 사원들로 시선이 쏠린다. 부담감이 어느새 피로를 만들고 긴장감을 더해준다. 관객이 꽉 찬 어느 무대 위에 나 홀로 서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조명은 나를 비추고 관객들은 '나'라는 존재에 집중하고 있다. 바짝 마른 입술, 얼어붙은 냉기를 깨고 시원하고 당당하게 한마디를 내뱉고 나면 간택이 될 수도, 야유가 돌아올 수도 있었다. 

'자유롭게' 이야기하라는데 자유롭지 못한 느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압박과 구속은 직장인들의 비애다. 매너리즘은 스트레스가 되고 도심 속에 갇힌 난 또 다른 벽 안에 고립된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이 자리에 왔는데 직장 생활이란 이런 것인가? 직장인 누구나 가슴속에 사직서를 들고 다닌다던데 그 말은 진실인가? 창업에 뛰어든 지인들은 늘 말한다. 

"직장 생활할 때가 좋은 거야!"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나의 정체성과 잘 짜 맞춘 '틀'에 박힌 이 생활은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동경을 한층 더해만 간다. 

뭉크의 <절규>  출처 : 다음 백과사전(100.daum.net)

모바일 오피스를 보며 느낀 디지털 노마드의 자유로움

1. 디지털 노마드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란, '일을 하는 데 있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 '스타벅스와 같이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곳에 노트북을 들고 일을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한다거나 조깅을 하면서 휴대폰을 보기도 하는 디지털형 인간'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일과 주거(住居)에 있어서 노마드(nomad)라는 말 그대로 유목민의 생활을 디지털 세계에서 경험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자유로움과 동시에 창조적인 사고를 더해주기에 충분하다.  


2. 모바일 오피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테헤란로에서 광화문 오피스로 이전을 했다. 사무실 이전과 동시에 초대를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유리문을 거쳐 들어가는 순간, 마치 카페에 온 느낌이 들었다. 바깥으로는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왔다. 편해 보이는 의자와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엑스박스)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언제 어느 때나 마실 수 있는 커피머신이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그래서 뭐가 다른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노트북만 들고 출근한 뒤 어느 자리든 인터넷만 연결할 수 있다면 정해진 자리 없이 아무 곳에서나 업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정해진 자리가 없다는 것.' 이른바 모바일 오피스를 의미한다. 모바일 오피스는 모바일 비즈니스 인텔리전스(Mobile Business Intelligence)라는 키워드와도 일맥상통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장소에 전혀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출장이나 외근이 잦은 업무일수록 언제 어디서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결재를 받으려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 비서실로 가지 않아도 된다. A4 지를 낭비하며 보고서를 뽑아 하나씩 묶어내지 않아도 모바일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출처 : pixabay


3. 코워킹(Co-working)과 자유로운 직장생활

최근에는 'WeWork(위 워크)'라는 곳에 찾아갔다. 역시 외부 미팅이 있어 방문하게 된 곳. 이 곳은 소호 사무실을 제공하며 코워킹(Co-working)과 상호 소통 그리고 업체들과 미팅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로 마련되었다. 커피, 음료 등도 제공한다. 

소규모 스타트업이 사무실을 구하려고 부동산을 돌고 마침내 계약을 하면 가구와 컴퓨터 등 업무에 필요한 것들을 배치해야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속전속결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이러한 절차들은 꽤 복잡하고 어려운 편이다. '위 워크'는 이러한 점을 단숨에 해결해준다. 부동산 임대로 시작되는 복잡한 과정, 사업이 번창하면서 사무실 확대가 필요한 경우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함께 일하고 커뮤니티 형성으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 

위 워크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며 국내에는 서울역, 광화문, 여의도, 강남, 삼성역 등에 존재한다. 일반적인 부동산 임대보다 조금 높은 단가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카페나 클럽에 온 느낌이었다. 잘못 내린 줄 알았다. 편해 보이는 소파 위에 누군가 세상 편하게 누워있기도 했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부지기수, 노트북을 펼쳐놓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 등 각양각색이었다. 

모두가 사용하는 '코워킹' 공간으로서 이만하면 훌륭하다는 느낌이었다. 자유로운 직장인의 모습은 딱딱한 서열로 배치된 구조의 사무실과 매우 상반되었다. 


업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누군가에 의한, 누군가에 대한 구속은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아무렇지 않은듯 무뎌지다 결국 매너리즘을 만든다. 끝이 없는 서열에서 길고 고된 시간을 보내야 보직이나 중책을 맡을 수도 있고 '운'과 '능력'이 따른다면 더욱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얘기다. 

모바일 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실제로 어떤지 겪어보지 못해 알 수 없지만 겉보기엔) 자유로워 보였다. 기본적으로 서로 소통하는 코워킹 공간 속에서 웃음이 가득했다. 더구나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듯했다. 


결론적으로...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해서 반드시 퍼포먼스(성과)로 이어질 순 없다. 자유분방하게 각자의 스타일대로 일하는 모습들 속에서 '체계'가 보이지 않고 '서열'이 파괴되었다고 해도 반드시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보면 모바일 오피스는 (적어도 내게) 오히려 생산적이지 않을까? 


※ 개인적으로 느낀 모습들을 제가 속해 있는 공간과 비교하며 작성한 (어쩌면 지나친) '사견'입니다. 

※ 필자는 '위 워크(Wework)'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세계적으로 잘 나간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모바일 오피스 형태로 근무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겉으로 보이는 자유분방함 속에 보이지 않는 체계가 반드시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역으로 봤을 때, 유명무실한 '체계'와 그 속에서 진짜 힘을 발휘하는 '압박'은 매너리즘으로 이어지고 제대로 된 퍼포먼스마저 없을 뿐더러 행복한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그 안에서 행복을 찾기란 어려운 법, 오히려 무뎌질 뿐이죠. 

결국엔 사람이 중요한 법인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경험하며 '내가 저 위치에 가면 난 어떻게 변해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고 마네요. 

그래도 지금. 저는 저만의 행복을 찾습니다. '혁신'을 꿈꾸며 조금씩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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