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작가'라는 타이틀이 민망한 나의 글쓰기를 되돌아보는 일종의 반성문
노무현 前 대통령은 대중을 향한 자신의 연설문 작성을 위해 오랜 시간 투자했고,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애착을 넘어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당시 연설비서관이었던 강원국 교수와 함께 초안을 쓴 뒤 전체를 고치고 다시 수정,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정도였음에도 대통령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의지와 신념을 어떻게 하면 올바르고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또다시 수정을 반복했다고 한다.
필자와 같이 이렇게 단순히 '글을 남기는 것(to write)'과 대통령처럼 연설문을 작성해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to speech)'은 서로 다른 차원이다. 자신(sender)의 생각(message)을 전달하는 '행위' 그 자체 그리고 이를 듣는 수용자(receiver)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느냐에 대한 개념은 언론학에서도 수십 번, 수백 번 등장하는 커뮤니케이션의 'SMCRE'이론이다.
이론은 말 그대로 이론이다. 이론보다 앞서는 것은 행동이고 경험이며 노련함이다. 특히 ‘스피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노 전 대통령은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고 했다. 잠자리에 누웠다가 무엇인가 생각이 나면 반드시 일어나 항상 메모를 했다고 한다. 메모를 하면서 암기에 가깝도록 머리에 새겼다고도 했다. 적어둔 메모가 없어도 기억해둔 것만으로 대응이 가능했다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이는 오랜 습관에서 기인한다.
대통령 재임 시절 있었던 수차례의 기자회견 때도 수석보좌관 회의 석상에서도, 대학 총장들과의 토론회 때도 메모지와 펜을 놓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습관'이자 좀 과하게 말하면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건 아니었을까?
메모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이른바 디지털 시대 속에서 '메모'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생소하거나 어색할 순 있지만 메모라는 것이 생각의 조각들을 완성할 수 있는 퍼즐이 될 수도 있고 그 퍼즐들을 모아서 보면 하나의 글이 될 수도 있으며 미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을 뿜어낼 수 있는 공간이자 나를 보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
일기장에 하루의 일과를 날려가듯 쓰고 수업 시간 공책 위로 수학 공식과 영어 문장을 쓰다가도 쓸데없는 생각들이 낙서로 채워질 때,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낙서와 메모는 분명 다르다. 오랜 시간 지루한 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 수첩에도 수만 가지 생각들이 비어있는 페이지를 채워간다. 낙서였는지 상사가 말하는 내용을 받아쓰는 단순한 용도였는지, 아니면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아이디어였는지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무언가 채워져 한 권을 만든다.
“그래, 바로 그거야!”
번뜩이는 생각이 날 때마다 페이지를 채울 수 있다면 이는 내 삶에 있어 좋은 아이템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메모 습관은 글쓰기에 있어 좋은 방향타이자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강원국 교수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곱씹으며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책에 나와있는 글을 보며 내가 그동안 이 곳에 남겨왔던 콘텐츠를 뜯어고칠 수 있다면 보다 완성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메모 습관이 하나의 설명서(manual)라면,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은 내 글을 다듬고 고치는데 쓰일 수 있는 도구(tool)와도 같다.
오로지 연설을 위한 글(연설문)은 정보를 전달하는 글과 유사할 수 있지만 분명 다른 차원의 글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를 것이 하나도 없지만 말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온전히 텍스트로만 전달하는 영역도 존재하기 마련. 언어는 같지만 입을 통해 나오는 구어(口語)와 문자로 쓰이는 문어(文語)에는 온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처럼 같으면서 곧 다르다. 그것은 진리다.
노 전 대통령의 글과 연설은 같은 선에 나란히 존재한다.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은 분명했을테니까.
강원국 교수가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아 글쓰기를 진행했고 하나의 연설문을 완성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대통령과 비서관이 '공동으로' 협업한 결과물인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입을 통해 오롯이 전달해야 하는 운명을 지녔기에 완벽에 가까운 사전 준비는 필수였을 것이다. 완성도를 위한, 그리고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한 ‘글쓰기’의 기본 뼈대는 아래와 같다.
"~같다"라는 표현은 자신 없는 말투가 될 수 있다.
이외 비교하면 필자는 글을 쓸 때마다 "~같다"라는 표현을 셀 수도 없이 사용했다. 내가 전공하지 않은 분야임은 물론이고 깊지 않은 지식으로 수많은 내용들을 찾아보고 핵심적인 부분들만 골라내 이를 '정보'로 전달하려니 나도 모르게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연설문에서도 "~같다"라는 표현 자체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공약이나 신념에 자신 없는 표현이라며 철저하게 걷어냈다고 한다.
비유가 너무 많아도 좋지 않다.
필자는 독자의 이해를 최대한 돕기 위해 가급적 사례를 넣으려고 했다. 이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적절한 비유라면 어려운 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니 텍스트로 전달하는 콘텐츠에 비유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연설에 있어 비유는 오히려 격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쉽고 친근하게
한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장황하고 길게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칫 중언부언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했던 말을 반복할 필요도 없다.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닌 이상 본문 자체를 길게 늘어뜨리게 되면 글쓰기도 연설도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간결한 문장을 짧게 그리고 쉽고 친근하게 표현하려면 문장력이나 필력도 좋아야 임팩트가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공감하는 편이고 또 그렇게 하고자 노력 중이지만 역시 쉽지 않다. 본래 '간결하게' 쓰고자 한다면 수많은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필력도 성장할 수 있다고 배웠다.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역시나 과도한 욕심이 있어서이고 부담을 갖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야구선수와 비교했다. 골프를 칠 때도 마찬가지다. 힘을 빼면 그만큼 비거리도 늘어난다고 했는데 과한 욕심은 스윙을 망치는 법이다.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자 그리고 글은 자연스럽게!
생각해보면 굳이 어려운 말을 빙빙 돌려가며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그만큼 어려운 단어를 알고 있는 편에 속하지도 않는 듯하다. 한자나 고사성어, 속담을 유창하게 활용해도 이를 읽는 독자에게 있어 오히려 어렵게 다가간다면 오히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사례가 어려운 단어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더구나 평소에 익히 사용하는 말이라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이라는 표현이 훨씬 친근하고 자연스럽다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가 와닿는다.
자연스러운 글이라면 더욱 친근한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다만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쓰려면 그만큼 수많은 글을 써봐야 할 것이고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기반이 되어야 문장을 쓸 때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접속사와 수식어는 최대한 줄여라!
접속사와 수식어는 글쓰기에 있어 때론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책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연설과 강연에서는 오히려 군더더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연하지만, '그래서',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접속사가 없어도 청중들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는 '짧고 간결하게'라는 취지와 같다. 오히려 글을 줄일 수 있고 보다 간결해질 수 있으니 연설에 있어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원활한 메시지 전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말로 하는 연설과 문자로 쓰인 글은 확연하게 다른 것 같다.
일관성은 유지하고 모호함을 없애라!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글을 쓰는 데 있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전체 흐름을 간결하고 자연스럽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일관성'이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강연이나 연설에도 중요하지만 에세이나 소설이 아닌 팩트와 정보 전달을 위한 글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통계 수치나 실제 사례를 들어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내용이라면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더불어 필자가 글을 쓸 때 가장 조심하는 것 중 하나는 문장과 문단을 쓴 후 보고 읽는 사람에게 있어 오해의 여지는 없는지 확인하는 편이다. 모호한 문장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오해는 논란을 만들 수 있다. 그냥 평범하고 똑같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즉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 자체를 줄이라는 것이다.
'청산유수(靑山流水)'
한자의 뜻만 보면 '푸르른 산에 흐르는 맑은 물'이라는 의미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막힘 없이 말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사용하는 단어다. 굳이 어떠한 각본, 대본, 원고 없이도 자신의 풍부한 경험과 입담만 있다면 어디에서도 '청산유수'와 같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필자가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완벽한 준비를 했어도 준비한 내용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하는 걸 보면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스피치는 (개인적으로) 너무도 어려운 것. 강연을 하면서 대중을 끌어당기는 힘, 즉 흡인력은 그 사람이 가진 재능이다.
글을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글이 나온다. 어떤 아이템을 주고 글을 쓰라고 할 때 이를 수월하게 풀어나가는 사람들도 존재하리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오래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으면서 간결하게 쓸 수 있을 것인가를 늘 고민하지만 본래 필력이 좋지 않아 열심히 쓴 뒤에도 뜯어고치고 다시 쓴다. 그러다 보면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욕심이 과하고 부담이 있어서였다. 어떻게 보면 '맹목적으로' 글을 쓴다. 그냥 구글 검색 결과에 등장하는 내용 중 가장 취지에 맞는 글을 골라서 쓰다 보면 내 의견과 생각은 사라지고 '복사해 붙여 넣기' 수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학계의 논문이나 미디어가 발행하는 기사들의 내용을 읽어본 후 스스로 그게 무엇인지 곱씹는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라면 그냥 버리는 편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재료는 버려도 욕심과 부담을 버리지 않으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큼은 명심해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나와 멀리 존재하는 영역이다. 글쓰기의 기본이자 초심을 벗어나 단계를 뛰어넘는 책이다. 강원국 교수는 목적을 갖고 '일단 쓰라'고 했는데 일단 쓰고는 있으니, 보다 확실한 목적을 부여하고 나만의 것을 만들어둬야 할 것 같다.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통해 처음 온라인에 대놓고 글을 썼다. 그리고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만나 지금까지 100건이 넘는 글을 쓰고 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책'을 출간해 '브런치 작가'이자 동시에 '출간작가'가 되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민망할 정도이지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언젠가 한 번쯤 나를 되돌아보는, 이런 글을 써보고 싶었다.
이 글은 나의 '글쓰기'를 되돌아보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 뉴스타파가 공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많은 친필 메모 중 266건이 공개되었습니다. 비공개였던 친필 메모가 일반에 공개된 것 자체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네요! 그 숨결이 여기 메모들에서 느껴집니다!
http://pages.newstapa.org/n1904/
※ 일부 내용은 <대통령의 글쓰기>를 참고했습니다.
※ 위 내용은 현재 제가 쓰고 있는 IT 분야의 글을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