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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Aug 21. 2019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는 엄마의 따스함이었어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만 내겐 매우 특별했던 음식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왠지 그냥 당연했습니다. 어린 시절 신나게 뛰어놀다가도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는 말에 냉큼 달려가곤 했습니다. 당시엔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것이라는 기대보다 혼나지 않으려 아이들과 헤어졌을게 분명합니다.

“얘들아, 나 이제 들어갈게. 내일 또 놀자.”

친구들과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저녁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 아쉬움도 가득했었지만 해질녘 맞춰놓은 알람시계처럼 엄마의 목소리가 좁은 골목길을 울렸습니다.

집 안에 들어가니 고추장 냄새가 나더라고요. ‘떡볶이인가?’ 그리곤 씻지도 않고 엄마에게 달려가 묻습니다.

“엄마, 오늘 저녁 떡볶이야?”

“아니, 고추장찌개”

“난, 고추장찌개 싫은데”

모든 것이 엄마의 계획대로 철저하게 정해진 저녁 밥상에서 이뤄지지 않을 투정을 부려봅니다. 지금도 붉게 노을이 지는 저녁이면 어린 시절의 그때가 추억이 되어 머리를 스칩니다. 어쩌면 제가 노을을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노을을 좋아하거든요. 오늘도 변함없이 붉게 뻗는 노을은 이미 충분히 성장해버린 제게 향수를 자아냅니다.

붉은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이면 엄마의 된장찌개가 생각이 나네요.

당뇨가 있으신 엄마는 하얀 쌀밥보다 현미나 잡곡밥을 드시곤 합니다. 사실 많이 드시지 않는 편입니다. 어렸을 땐 잡곡밥은 물론 콩이 올라간 밥을 싫어하긴 했지만 먹기 싫다며 드러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배웠습니다. 동생은 왼손으로 밥을 먹습니다. 혼이 나기도 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어요. 식습관은 바꿀 수 있었지만 버릇은 고치기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바뀌긴 했습니다. 우린 특별한 음식이 없어도 그저 맛있게 먹었습니다. 평범한 음식이지만 맛있었어요. 동생이 저보다 더 먹는 편이긴 했지만 애당초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평범한 반찬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특별한 음식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제 먹다 남은 음식이 올라오는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먹는 것에 대해선 결코 부족하지 않았네요. 엄마는 가족들을 위한 음식에 있어 그렇게 철저했습니다. 아침 일찍 외출을 하시는 경우에도 식탁 위에 반찬들과 쪽지 한 장이 함께 놓여있곤 합니다.

"가스레인지 위에 찌개 있으니 끓여먹고 빈 그릇은 그냥 설거지 통에 넣어둬라. 반찬은 냉장고에."

엄마의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들. 엄마는 늘 말씀하시죠. "그냥 간단히 먹자"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저의 엄마 역시 명절 전후로 늘 고생을 하십니다. 명절 음식을 위해 전날부터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숙모까지 세 사람이 부엌에 모이시죠. 따뜻한 차 한잔을 가볍게 마신 후 바로 음식을 시작하십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은 식재료와 구수한 냄새로 한 가득입니다. 5년 전 할머니가 작고하신 뒤로 몇 년 지나지 않아 숙모 역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늘 북적였던 부엌은 굉장히 넓어 보였고 그 안에는 엄마 홀로 요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넓게 자리한 공허함만큼 엄마의 한숨도 커져갔죠.

저와 동생이 결혼을 하게 된 이후 부엌에는 다시 세 사람이 모이게 되었답니다. 아이들까지 있으니 좁은 집이 다시금 북적이네요. 식탁에는 명절 음식뿐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양념게장도 등장합니다. 알맞게 익은 김치와 아삭한 오이소박이가 올라오니 상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네요. 오래간만에 만난 식구들과의 식사는 변함없이 오붓합니다. 

아삭한 오이소박이. 잘 먹겠습니다.

뚝배기에 담긴 엄마의 마음

사실 제가 가장 그리워하는 엄마의 음식은 다름 아닌 된장찌개였습니다. 되게 평범하죠? 보통 군대에서는 속된 말로 '똥국'이라는 것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느 사이트에서 보니 군대 음식 중 최악으로 손꼽히는 음식이더군요. 깊은 맛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지만 저는 밥을 듬뿍 말아 깨끗하게 먹어치우곤 했습니다. 군에서 처음 휴가를 나왔을 때도 고기반찬에 된장찌개가 식탁 위에 올라왔습니다.

"많이 먹어라. 밥 더 있어"

짧은 휴가를 마친 후 언제 또 돌아올지 모르는 저의 뒷모습에 엄마는 울컥하셨다고 합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이후 엄마와 통화를 한 적이 있어요. 귓가를 울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왜 그리도 슬펐고 그리웠을까요? 눈물을 왈칵 쏟아냈던 그때가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선임병은 "우냐?"라고 차갑게 말하면서 자신의 옛 생각이 났는지 그저 웃습니다. 그 날 자대에서 먹은 똥국을 보니 엄마의 푸짐한 된장찌개가 생각이 났습니다. 누군가는 '눈물 젖은 건빵'이라는데, 전 말 그대로 '눈물 젖은 된장국'을 먹은 셈이죠.

식당에서 파는 된장찌개와 달리 엄마의 된장찌개는 매우 깊었답니다. 엄마가 우리를 생각하는 그 마음과 같이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죠.

대학을 졸업한 이후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에 직장을 잡았습니다. 평범한 된장찌개는 커녕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답니다. 그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며칠이 지난 후 해외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열흘이 넘도록 오지에서 고생을 한 덕분에 피부는 검게 그을렸고 살도 무척이나 빠졌죠. 새벽 비행기로 인천에 도착해 바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피곤한 몸으로 현관문을 열자 엄마의 밥 냄새가 코 끝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고생 많았다. 아침 먹어야지?"

식탁 위에 올라온 엄마의 정성스러운 요리들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웠던 고향의 밥, 엄마의 음식. 뚝배기의 뚜껑을 열자 된장찌개의 향이 마구 솟아오릅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엄마의 된장찌개를 무작정 따라해보곤 합니다. 멀쩡한 냄비를 두고 굳이 뚝배기를 하나 사기도 했습니다. 튼실한 멸치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크게 떠서 열심히 풀어봅니다. 하얀 두부를 잘라 넣고 혀 끝을 자극하는 청양고추와 호박, 팽이버섯을 한 움큼 넣습니다. 어느새 팔팔 끓는 뚝배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구수한 향이 집 한가득을 채웁니다. 뜨거운 김이 하늘 위로 솟구치며 저 멀리 붉은 노을과 맞닿아 진정한 저녁 느낌을 선사해줍니다. 저는 여전히 된장찌개를 좋아합니다.


"근데 엄마는 왜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끓여?"

"뚝배기에 끓이면 따스함이 오래가니까"

오랜 시간 지속되는 뚝배기의 따스함은 마치 엄마의 애틋한 마음 같습니다. 지금도 자식을 위한 애정은 따스하게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된장찌개 한 입에 엄마의 정성과 손맛 그리고 진심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글 : 당신의 철없는 아들, Pen 잡은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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