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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Oct 17. 2019

누군가의 죽음도 그저 돈벌이인 미디어의 행태

망자에 대한 예의, 팩트체크, 국민의 알 권리도 집어던진 장사치들

"마녀들은 악마와 성교를 하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빗자루를 매개체로서 활용한다"

중세 중기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마녀나 마법 행위에 대한 추궁과 고문, 재판과 처형 등 형벌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를 두고 '마녀사냥'이라고 한다. 물은 그 자체로 깨끗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 “(호수나 연못 등) 물에 마녀를 빠뜨리면 물 밖으로 내쳐진다”라고 하는데, 실제 깊은 물 속에 빠뜨리고 익사를 하면 혐의를 벗고 물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경우는 마녀로 간주해 화형에 처한다고 했다. 그게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순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프랑스 구국 소녀 잔다르크(Jeanne d'Arc)도 백년전쟁 당시 종교 재판에서 우상숭배의 죄를 받고 마녀로 몰려 19살 꽃다운 나이에 화형을 당한 바 있다. 이후엔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하기도 했지만 이미 그녀는 세상에 없었다.


출처 : pixabay

마녀사냥과 악플이 주는 공포

현대사회에서도 마녀 프레임은 지속되고 있다. 개개인이 집단을 이루어 또 다른 개인이나 단체를 상대로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곤 한다. 악성 댓글은 기본이고 신상 털기로 정보를 공개하기도 하고, 사실과 다른 판타지가 '찌라시'가 되어 세상을 떠돌기도 한다. 그렇게 '인격살인'이 이루어진다.

2018년 10월 있었던 '김포 맘카페' 이슈가 마녀사냥의 전형적인 케이스이기도 했다.


짧게 언급하면,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자신의 조카를 방치했다'면서 글을 올렸다. 이후 교사의 신상이 공개되었고 폭언과 항의가 빗발쳤다. 어린이집 교사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녀사냥을 당했고 결국 유서와 함께 저 세상으로 떠났다. 비난과 원망으로 가득 찼던 맘카페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추모물결로 도배가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마녀사냥의 대상은 최초 글을 올렸던 어느 아이의 이모 자신에게 돌아갔다. 마녀사냥은 대상만 바뀐 것이지 그렇게 이어졌다.


이처럼 '인격살인'이라는 것 자체가 실제 죽음으로 닿는 경우들을 누구나 한 번쯤 목격했을 것이다. 뭘 그렇게 잘못을 한 것일까? (경우에 따라 대상에 따라 분명히 다르지만) 가만 보면 잘못한 건 거의 없다. 심지어 무단횡단, 노상방뇨를 했다고 하더라도 죽음을 맞이할 만큼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다.

오해는 불신으로 이어진다. 불신에 대한 논리는 온데간데없고 '맹목적이면서 날이 선 공격'만 남는다. 흔히 말해 '무데뽀(むてっぽう)'라고 하는데(이는 일본어이니 '막무가내' 정도로 해두자) 이런 막무가내의 네티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 미친 듯이 악플을 단다. 수도 없이 몰리는 악플러는 무시하는 게 답이라지만 나라면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쓴 이후, 필자 역시 '악플'을 받아봤다. 물론 이 글이나 앞으로 쓰게 될 글에도 악플이 달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다. 글을 지속해서 쓴다면 악플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이 악플이지, '뼈 때리는' 조언일 수도 있다. 조언이라면 받아들이고 고쳐야 한다. 그럼 조금 달라질까?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입으로 전하는 말과 억양, 반면 글로 쓰인 댓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조언이자 팩트 체크를 위한 댓글 즉 텍스트이지만 악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 감정 전달이 되지 않으니까.

(매우 다반사이긴 하지만) 만약 어떤 사람을 악플로 공격했다고 가정해보자. 악플은 마치 돌멩이 같다. 누군가에게 집어던지는 돌멩이 하나도 사실은 아프다. 그런데 그것이 수도 없이 날아오면 그걸 맞는 사람은 죽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죽이자고 우르르 몰려가 죽어라고 팼는데 진짜 죽고 난 후 죽이자고 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두 손 모아 애도하는 모양새라면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우스운 일이 아니라 그저 무섭다. 소름 끼칠 정도로.

Actual Witch Hunt.   출처 : vox.com

펜은 칼보다 강하다!

"깔리무스 글라디오 포르띠오르(Calamus Gladio Fortior)"

이 말은 라틴어다. 영어로 번역하면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뜻으로 아마 분명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펜이 어찌 칼보다 강하겠느냐. 물리적으론 그럴 수 있지만 펜으로 쓰인 글 즉 대중들을 향한 언론의 영향력을 이렇게 표현한 문구다. 언론사가 쓰는 기사들이 (아주) 때론 유익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화살촉이 되어 날아오거나 칼날이 되어 베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리하고 날카롭다.

신속하고 정확한 팩트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전달해야 하는 저널리스트의 사명감.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옐로 저널리즘과 속보나 단독만 지향하는 그릇된 미디어 속에서 자라나는 암세포가 덩어리가 되어 '기레기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펜이 칼보다 강한 것은 변함이 없다.

'정론직필(正論直筆)'

펜의 정체성을 무시한 채 무작정 휘두르면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되고 무기가 된다.

출처 : pixabay

위에서 '마녀사냥'에 대해 언급했지만 마녀사냥으로 이어지는 오해와 불신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경우들이 제법 흔하다. 카페나 블로그도 하나의 미디어로 간주하면 더욱 그러하다.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고 해서 카페나 단톡방에서 이뤄지는 사람들의 의견이 차곡차곡 모아져 매우 우수하고 훌륭한 해답을 제시하는 경우들이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개개인의 의견이 하나의 여론을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집단 여론이 가진 힘 역시 매우 어마어마하다.

언론이 집단 여론을 따르는 경우도 있다. 아니 '쫓는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집단 여론이 언론을 타고 퍼지면 더욱 막강한 힘을 갖는다. 그런데 언론은 또 다른 여론과 논란을 형성할 수도 있다. 그러니 철저한 펜 관리와 데스킹(데스킹이란 현장에서 취재해 작성한 기사를 다시 한번 다듬는 행위를 말합니다. 보통 부서장 즉 데스크가 이를 처리하곤 합니다)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최소한의 관리와 교육, 인성과 상식만 갖췄다면 ‘근조한국언론’이라는 말은 듣지 않았을텐데.. 이는 언론사, 데스크, 현장에 있던 그들 모두 포함한다. 질문은 그리 해놓고 당당한 듯 쓰인 조간신문이 아직도 기억난다.

근조한국언론과 기자질문수준이 실급검에 올라왔던 그 날.  출처 ; 뉴시스

10월 14일 오전 조국 법무부장관의 검찰 개혁 방안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이 날 오후 조국 장관의 '사퇴'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페이크 뉴스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팩트였다.

조국 장관을 지지하던 사람들이나 사퇴를 외치던 사람들 모두에게 이는 매우 충격이었다. 언론의 안테나는 모두 '조국 사퇴'로 향했다. 순식간에 말이다. 조국을 반대하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충격'이라면서 매우 진지한 표정 속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살짝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비겁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 내용들은 언론을 통해 전파된다. 가려져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린 너무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어 보고 싶지 않은 뉴스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출처 : pixabay

악플러가 던지는 돌멩이와 유사언론의 폐해

조국 사퇴에 대한 기사들이 마구 쏟아지는 가운데 또 다른 이슈가 터져 나왔다.

"OO이 자살했다며?"

이제 동네에서 도는 소문은 5G 통신 속도와 함께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카카오톡, 라인 등의 메신저는 물론이고 카페, 블로그 등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통로를 통해 여기저기 수습하기도 어려울 만큼 뻗어나가는 시대다.

연예인, 셀럽을 포함한 공인의 죽음은 그 형태가 무엇이든 언론사에게 마치 먹잇감 같다. 연예인의 사망 소식은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한다. 매번 '속보'와 '단독'을 표기해 가면서 수도 없는 기사를 토해낸다. 14일에도 조국 앞에 있던 수많은 취재진들과 그를 향한 시선 모두 한 명의 연예인으로 향했다.

역시 이번에도 망자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본문에는 '경위를 파악 중'이라면서 헤드라인에는 '숨진 채 발견'을 그대로 넣었다. 이는 일종의 '낚시성' 제목이라 어뷰징에 해당한다. 유가족은 빈소를 비공개로 하기를 원했지만 모 언론사가 이를 그대로 기사화했다. '유가족이 (빈소에 대해) 비공개를 원한다'는 기사와 '빈소는 OO에 마련된다' 기사 모두 같은 곳에서 송고되어 논란이 있기도 했다. 수많은 언론들이 '자살'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실시간 생중계하듯 기사를 만들어냈다. 일정 시간 동안 꽤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실시간 검색어 또한 특정 연예인의 키워드로 도배가 된 수준이었다.

사실 '자살'을 했어도 타이틀에는 '자살'이라고 쓰지 않는 것이 지금의 가이드라인이다. "고인의 인격과 비밀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호해줘야 한다." 이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고인의 인격을 보호한다? 지금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인격 보호라는 말은 고인과 함께 저 세상으로 떠났고 고인을 또다시 마녀사냥하거나 그 화살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자살을 방조하는 행위도 문제지만 또 다른 죽음을 조장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 한국기자협회 정관에도 '자살보도 윤리강령'과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이 그대로 실려있습니다.

http://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12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것 중 대부분은 그들의 SNS를 쫓는 경우들이다. 이제 '공항패션'은 기본이 되었고 SNS를 통한 가십거리, 심지어 그들의 가족도 미디어를 통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마케팅을 위해 일부러 언론에 노출하는 경우는 예외로 하자. SNS 상에서는 연예인과 같은 셀럽들의 영향력이 매우 큰 편이다. 인플루언서라고 해서 그들이 작성한 문구나 사진, 동영상 모두 트렌드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옐로 저널리즘의 기삿거리가 되기도 한다. 선플보다 악플을 먼저 찾아 '논란거리'로 만들기도 한다. 진짜 별것도 아닌  노멀(Normal)의 극치임에도 말이다. 평범함도 관종으로 만들긴 쉽다. 소위 '악플러들은 얼굴 없는 살인자'라고도 하는데, 언론은 악플의 내용과 악플러의 아이디를 반쯤 가려 기사화한다. 선플은 일부에 불과하다. 사실상 기사의 가치도 없는 SNS 댓글 짜깁기다.

흔히 유사언론이라고 해서 언론의 공정성이나 진실성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낚시성 제목으로 트래픽을 유도하고 광고를 통해 수익만 추구하는 일부 인터넷 미디어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유사언론은 물론이고 이름 좀 있는 매체들도 이런 종류의 기사를 쓴다. 기자의 바이라인 대신 ‘온라인뉴스팀’, ‘디지털뉴스팀’ 등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진짜 존재하긴 하는 건지.

해외 언론에서는 “우리나라의 안티팬 문화와 더불어 도를 넘은 악플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악플은 참 무섭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누군가에게 날리는 '악플'은 가시가 돋아있는 돌멩이라 아무리 멘탈이 강해도 상처가 나기 마련이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동안 돋아나는 우울증과 내면의 괴로움은 또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그녀 역시 때론 당차고 강해보이기도 했지만 매우 힘든 나날을 겪었을 것 같다. ‘심정을 이해한다’, ‘공감할 수 있다’라고 말들을 하지만 죽음도 두렵지 않을 만큼인가? 악플러들의 마음 그리고 논란을 만든 미디어의 입장은 과연 어떨까? 미디어는 계속해서 악플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이는 완전한 '책임전가'가 아닌가.

악플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미디어 역시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꾸준하게 논란을 만드는 장사치가 될 것이다.


출처 : 중앙일보 만평 10월 16일자.

언론사들은 악플을 주워 담아 하나의 기사로 만든다. 이 기사들이 포털이나 SNS를 타고 널리 퍼지면 여론이 형성되고 쉽게 이슈를 만들기도 한다. 아! 물론 ‘기레기’ 소리를 듣기도 한다. 노이즈 마케팅도 상황을 봐서 해야 하는 법이다! 어쨌든 이슈가 생기면 또다시 무차별 공격이 시작된다. 키보드가 부서질 만큼 생성되는 악성 댓글이 죄 없는 꽃을 꺾는다. 이슈가 곪아 터진 이후 점차 심각해지고 급기야 희생자가 생기면 언론은 오히려 악플러들을 문제 삼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언론은 사실만 전달했을 뿐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악플러들에게 프레임을 씌운다. 당연히 악플러도 문제겠지만 이를 이슈로 만들어내는 언론사에게도 죄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뉴스를 독점한 포털과 하이에나가 되어버린 언론사

'논란거리'를 만들어 진열해두고 이를 이슈화 하는 것, 연예인들의 SNS를 마치 하이에나처럼 쫓아다니며 그중에 이슈가 될만한 콘텐츠를 찾아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국 미디어다.  

지금 언론사의 기사들은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에서 소비되는 경우가 더 많다. 굳이 언론사의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을 찾지 않아도 포털 앱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뉴스를 볼 수 있다. SNS 역시 마찬가지. 뉴스를 보는 독자들은 굳이 언론사가 어디인지 보지 않는다. 헤드라인을 기준으로 배열되는 기사만 (제목을 보고) 클릭할 뿐이다. 포털이 뉴스를 독점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 뉴스를 소비하는 습관조차도 고착화되었다. 수많은 어뷰징을 제재하는 것은 포털의 몫이기도 하지만 언론의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실 그마저도 쉽지 않다. 포털 역시 언론사의 자정적 노력을 기대한다고 한다. 말을 해도 듣지 않으니까 말이다. 국내 뉴스 독점 시장에서 부를 누린 포털을 굳이 감쌀 마음은 없지만 미디어 시장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뭔가 참 웃긴 일이다. 포털은 언론사에게 돈을 주고 뉴스를 사 온다. 그래야 콘텐츠를 확보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색을 내는 것은 뉴스 사용료를 받는 언론사다. 포털이 돈을 주고 사 오는 언론사의 기사는 한정적이지만 쌓아놓으면 엄청난 수준이다. 하루만 쌓여도 다 쓰지 못한다. PC나 모바일 모두 뉴스를 표출하는 영역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부여된 MY뉴스 영역

검색 결과에 나타나는 뉴스는 또 다르다. 수많은 언론사의 기사가 검색 결과에 나타나긴 하지만 실제 돈을 받는 언론사는 일부다. 네이버와 다음이 언론사에게 지급하는 뉴스 사용료는 연간 500억 원 규모라고 한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네이버의 경우 검색 점유율만 70%를 넘어선다. 네이버와 다음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비중도 엄청난 수준일 것이다. SNS는 물론이고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꽤 많은 비중으로 올라오긴 했어도 포털이 제공하는 뉴스 콘텐츠의 소비 시간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네이버나 다음 모두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알고리즘으로 전면 개편했다. 자동화 이전에는 사람들 즉 편집자가 직접 골라 배열했다. 포털 메인 영역의 자리다툼은 극에 달했다. 트래픽으로 이어질 수 있음은 물론이고 언론사로 들어오는 창구에 광고를 붙여 실제 수익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트래픽에 목숨을 건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속보 다툼을 하는 경우도 트래픽을 위한 것이지만 '오보'를 낳고 '왜곡'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물론이고 공항패션에 결혼과 이혼, 죽음까지 다뤄야 이들에게 '돈벌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망자에 대한 예의와 배려는 애초에 찾아볼 수 없는 것 아닐까? 저널리즘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까? 필자가 다녀온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는 조금씩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과 드라마틱하게 급변한 보도 형태, 트렌드 등을 다각적으로 다루긴 했지만 이렇게 옐로 저널리즘과 유사언론의 폐해, 메이저 언론사들의 추락을 손꼽아 언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저널리즘의 미래 2019

대한민국에 젊은 기자들은 넘쳐난다. 반면 꼰대 같은 데스크도 즐비하다. 레거시 미디어가 있다면 그에 대조되는 새로운 저널리즘(가령 유튜브 저널리즘, 솔루션 저널리즘 같은)이 있고 경성 뉴스가 있다면 연성 뉴스도 존재하는 법이다. 뉴스의 형태를 떠나 보도를 통한 팩트 전달이 침해와 위협, 논란과 이슈로 이어진다면 사회의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민의 알 권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과유불급’이다.

대한민국에 언론사는 너무나 많다. 그릇된 인식과 편향된 보도, 돈벌이가 될 수 있다면 어뷰징도 낚시도 결코 서슴지 않는 저널리즘.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차라리 이러한 저널리즘에 돌멩이를 던져라!

대한민국의 미디어와 저널리즘은 반드시 변화를 맞이하여 스스로 새롭게 태어나거나 자멸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악플 역시 어떠한 제재와 방법에 의해서든 매우 크게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법규나 가이드에 의한 강제성이 아니라 인식 개선과 자정적 노력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생존할 수 있는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미래다.


※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근조한국언론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의 5가지 원칙(참고 : 중앙자살예방센터)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원칙 1. 기사 제목에 '자살' 또는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

1) 자살 예방을 위해 자살 사건은 되도록 보도하지 않는다.

2) 자살 사건을 주요 기사로 다루지 않는다.

3)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 대신 사망 사실을 알리는 간결한 표현을 선택한다.

4) 자살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살로 단정 지어 보도하지 않는다.

5) 자살과 관련된 자극적이거나 (자살에 대한) 긍정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원칙 2. 구체적인 자살 방법이나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

1) 범죄 사건 다루듯이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등을 구체화하지 않는다.

2) 자살 동기를 단순화한 보도는 매우 위험.

3) 목격자의 인터뷰 내용이나 경찰, 소방 등 관련 기관의 발표라 하더라도 신중을 기할 것.

4) 특히 유명인의 자살보도는 파급력이 매우 크므로 더욱 신중할 것.


원칙 3. 자살과 관련된 사진, 동영상은 모방 자살로 이어질 수 있어 유의.

1) 자살 사건과 관련된 영상 자료 사용을 자제.

2) 유명인 자살의 경우 사진, 영상 자료 사용에 각별히 주의.

3) 자살 사건 보도 시 자살 예방 관련 기관 정보나 긴급 도움 요청 관련 이미지 제공.

4) 이러한 원칙은 인터넷 방송, 1인 방송이라 할지라도 엄격하게 준수할 것.


원칙 4.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도록.

1) 자살을 합리화하거나 극적으로 묘사하지 말 것.

2) 다른 사람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행위는 '동반자살'로 표현하지 않는다.

3) 자살로 인해 고통이나 문제에서 벗어났다는 식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

4) 자살을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수단으로 보도하는 경우에도 신중할 것.

5) 자살로 발생하는 부정적 결과를 알린다.

6) 자살예방을 위한 보도를 한다.


원칙 5.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

1) 유가족의 심리 상태를 고려해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2) 고인의 인격과 비밀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호해야 한다.

3) 유가족의 신분을 노출할 위험이 있는 정보는 보도하지 않는다.

4)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

출처 : 중앙자살예방센터


※ 참고가 될만한 기사 하나를 붙여봅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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