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에세이 #도쿄 2편
길지 않은 여행이라도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 보면 짐가방에 담을 콘텐츠는 늘 무궁무진해진다.
여행 중 '아, 괜히 가져왔네'라고 생각했던 물건들을 보며 다음엔 이러지 말아야지, 다음엔 더 잘 챙겨봐야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난 지금도,
'만약을 대비하여' 짐가방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후회를 한다.
"어디다 넣지?"
비닐 속에서 빨래를 기다리는 옷가지를 꾸역꾸역 한쪽으로 밀어내고 이 곳에서 샀던, 그리고 곧 사게 될 물건들의 영역을 확보한다.
"비켜라, 손님 오신다!"
여행 후,
짐가방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던 자그마한 기념품을 지인들에게 건네면
"아니 뭘 이런 걸 사왔어"라며 내심 기뻐한다. 내가 반대 입장이라도 마찬가지겠지.
일본에 왔으니 아기자기하면서도 이 곳의 특색이나 이 곳에서만 살 수 있는 더불어 "가성비" 끝내주는 물건을 사고 싶었다. 그 흔한 열쇠고리나 냉장고 자석 같은 '뻔하디 뻔한' 물건들이 아닌 뭔가 특별한!
오사카에 살고있는 아는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행 기간이 짧은데 어디 가볼만한 곳 있을까? 아, 그리고 사가지고 갈만한 물건이나 살 곳 좀 추천해줘"
그 친구가 이야기한 '가볼만한 곳'과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곳'은 비슷했다.
우린 일본 디즈니랜드에 가고자 했고 그 친구는 바로 옆 디즈니씨(Disney Sea)를 추천했다.
기념품에 대해선, "글쎄, 나도 뭐 딱히 사간 적이 없어서..."
결국 우린 여행 정보 책에서 나온 내용을 참고하여, 아키하바라로 향했다.
'피규어' 같은 상품이나 일본 카메라 제품 그리고 전자제품에 관심이 있었던 내게 아키하바라는 적소였다.
JR아키하바라 역에서 하차하여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나라 용산 전자상가와 같은 느낌이 든다.
하늘을 보니, 곧 빗방울을 쏟아낼 듯 날이 매우 흐렸다.
아키하바라(あきはばら)는,
도쿄에서도 전자상가가 다수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오디오나 컴퓨터, 작은 부속품부터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을 파는 점포들이 존재하고 있고 서로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휘황 찬란 그리고 화려한 입간판들로 정신이 없을 정도다.
점포만도 1천 개 이상이라고 한다. 당연하지만 같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점포마다 가격 차이가 있다.
이 곳은 1970~80년대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거리로 이름 높았던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대형 할인매장이 생기면서 이 곳의 높던 인기도 점차 하락세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전체적인 개선을 이뤄내면서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알려져있다.
전자기기를 사랑하는 '덕후'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곳일 수도 있겠다. 일본이 출시한 게임이나 만화책에 나오는 피규어 그리고 코스프레 의상 등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매장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되면서 "오타쿠의 성지"라고 불리는 게 아닐까 싶다.
사진 속 피규어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어마어마한 종류의 피규어들을 여러 매장에서 볼 수 있는데 19금에서 29금 정도 되는 성인이나 볼법한 피규어들도 넘쳐난다.
피규어들도 그렇지만 코스프레 의상을 판매하는 곳을 보면 '저런 옷을 어떻게 입을까?' 의심을 살 정도로 특이하고 요상했다.
코스프레 샵이 많은 만큼 주변에 실제 이런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보였다.
코스프레 의상과 더불어 일본 특유의 화장법이라고 하는 갸루(ギャル ) 메이크업을 더하니 만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인물처럼 보이긴 했다. 이러한 볼거리도 굉장히 특색 있었다.
역을 벗어나 주변 매장을 돌아보면 컴퓨터 부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컴퓨터 조립이나 업그레이드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꽤 좋은 장소일 수도 있겠다.
카메라 매장이 어디 있을까 하고 돌아본 결과, 한 대형 매장에서 반가운 녀석들을 만나게 되었다.
캐논과 니콘이 쓰여있는 코너에서 손에 넣고 싶은 렌즈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절 좀 데려가세요!"
라고 말하는 듯했지만 가격 면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 결국 포기했다. 물론 돈도 없었고.
결국 난 피규어 몇 개만 가방에 쑤셔 넣고 어쩌면 열쇠고리만도 못한 선물을 주게 됐다.
다행히 더 달라고 하는 사람은 있어도 '이걸 어디다 쓰냐?'며 내팽개친 지인은 없었다.
아니 없었을 거다.
물론 나도 하나 싸게 득템 하여 지금까지 책장 앞에 자리하고 있다. 그저 관상용이지만!
다시 아키하바라 역으로 돌아갔을 때 이미 해가 떨어져 저녁이 된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시간은 아직 3시.
지인이 일러준 대로 우린 디즈니씨로 향했다.
게이요선 마이하마 역에서 하차하고 다시 디즈니씨로 가기 위한 모노레일을 타면 비로소 광활하고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테마파크에 들어설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면서부터 이미 놀이공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모노레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의 캐릭터들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열차의 처음과 끝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시원하게 뚫어 연결해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본의 지하철만큼이나 작지만 뭔가 시원해 보이는 모습. 모노레일에는 흐린 날씨임에도 디즈니씨로 들어가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도쿄 디즈니씨(Tokyo Disney Sea)
모노레일에서 내려 수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디즈니씨 정문 앞으로 이동했다.
티켓 판매소에서는 열이면 열, 누구나 요금표를 바라보게 마련이다.
디즈니리조트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것처럼 우린 1데이가 아닌 스타라이트를 이용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반나절은 아키하바라에 있었고 이 곳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4시쯤이니, 6시 이후 이용하는 애프터6 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많이 남은 상태였고 오후 3시부터 입장이 가능한 티켓을 구매해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물가물)
입구부터 디즈니의 캐릭터들이 아이들을 포함, 관광객들을 반긴다.
디즈니씨는 디즈니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여러 가지 쇼나 공연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 곳은 '바다'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로 메디테러니언 하버(Mediterranean Harbor), 아메리칸 워터프런트(American Waterfront), 미스테리어스 아일랜드(Mysterious Island), 머메이드 라군(Mermaid Lagoon), 아라비안 코스트(Arabian Coast), 포트 디스커버리(Port Discovery), 로스트리버 델타(Lost River Delta) 등 7개의 항구가 테마별로 구분되어 있다.
디즈니랜드는 1983년, 디즈니씨는 2001년에 개장되어 리조트로 확대되었다. 주식회사 오리엔탈 랜드가 월트 디즈니로부터 라이선스를 취득해 운영 중이다. 결국 디즈니 소유의 공원이 아닌 것이다.
디즈니씨의 각 테마랜드와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모든 것들의 정교함은 너무나도 훌륭하다.
낮에 보는 이 곳의 모습도 아름답긴 하지만 해가 진후, 곳곳에서 켜지는 주변 불빛들이 이 곳들의 아름다움을 밝혀주면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그저 눈으로 둘러볼 수만은 없어 몇 분이 되더라도 긴 줄을 기다려 몇 가지 놀이기구를 타기로 했다.
진짜 어린이가 된 것처럼 설레고 또 설레었다.
아주 덥지도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아 걸을만했다.
꽤 넓은 곳이긴 하지만 주변 시설들도 구경하고 또 좋은 공기도 마시며 걸으니 더욱 느낌이 좋았다.
다리가 아픈지도 모른 채 이것저것 둘러보고 사진도 찍으니 서서히 허기가 졌다.
놀이공원이니 '먹을 것'도 꽤 비싼 터라 대충 허기만 달래 주고 호텔 부근에서 저녁을 먹기로 합의한다.
핫도그를 파는 곳에 들어가 주변 사람들을 보며 한입 두입 먹는 모습을 보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모습 같았다. 지치기도 많이 지쳤고 심지어 뭔가 남루하다는 느낌까지...
핫도그를 다 먹지도 않았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드디어 비가 오는구나'
한참동안 빗방울을 머금었던 구름으로부터 한방울 두방울 우리의 머리와 어깨에 톡톡 떨어진다.
우린 비를 피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비가 그쳐주길 바라며 밖을 바라봤다.
그나마 많이 내리진 않아 다행이었다.
잠시 지나가는 비였는지 얼마 걸리지 않아 비가 그쳤다.
그리고 곳곳에 불이 켜졌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디즈니씨의 야경이구나'
아메리칸 워터프런트에서 화려한 불빛을 뽐내는 S.S콜럼비아호의 자태를 보고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배는 디즈니씨를 상징하는 호화 여객선으로 타이타닉을 떠올리게 한다.
낮에 들어왔을 때의 첫 모습과 불빛이 만들어주는 디즈니씨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그런 불빛들이 호수에 비쳐 이 곳을 더욱 환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대략 4시간을 어린아이처럼 뛰어놀고 더 늦기 전에 호텔로 돌아가기로 한다.
오늘 하루도 제대로 즐기게 해 준 '하루'라는 시간에 감사하며 후배와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의 숙소인 아카사카요코 호텔 부근에 주점이 하나 있어 이 곳에서 저녁과 반주를 먹기로 했다.
입구부터 뭔가 주렁주렁 걸려있는 것이 마치 '서낭당'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 곳도 주점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 한잔 두 잔 기울이는 모양이다. 북적거림 속에서 편한 자리를 찾아 여유 있게 메뉴를 골랐다.
뭔가 얼큰하고 매콤한 국물과 강렬한 독주가 생각났다. 일본의 사케 또는 정종, 청주 등은 대략 15도 내외인 듯 하지만 일본 소주를 보면 25도 이상이 넘어가는 술들도 꽤 많았다.
우리가 선택한 이 술을 보더니, 이 곳 직원이 꽤 독할 거라 했다. 그리곤 얼음이 담긴 컵과 함께 술을 전했다.
무릎을 꿇고 하나씩 하나씩 우리의 테이블 위로 가지런히 놓더니 한잔씩 따라주겠다고 했다.
마치 몇 번 본 사람처럼 우리도 친근하게 대했고 한잔 마시라며 건네기도 했다.
친절하게 말을 건네곤 환한 미소로 응대했는데 그의 친절함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주문한 술병의 라벨을 보니, 美ら島, 즉 츄라시마(ちゅらしま)라 쓰여있었다.
'아름답고 깨끗한 섬'이라는 뜻인데 오키나와 사람들이 오키나와를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럼 이건 아와모리인가? 아와모리는 오키나와 전통 소주로 쌀로 만든 술이라고 했다.
어쨌든 꽤 강하긴 했다. 입을 통해 내려오는 술의 강렬함이 식도를 타고 위까지 점령했다.
서서히 국물이 땡길 때쯤 팔팔 끓은 전골이 등장했다.
메뉴판을 보긴 했지만, 대부분 모르는 단어들이라 이 곳 서버에게 '얼큰한 국물'을 위주로 추천을 받았고 음식이 나오고 보니 곱창전골이었다.
국물은 생각보다 얼큰했고 맛도 괜찮았다. 더구나 이 술과도 잘 어울렸다.
오늘 하루의 피곤함이 싹 녹는 듯했다.
이대로 잘 수 있겠는가?
우린 다시 편의점에 들러 작은 정종과 맥주 몇 캔으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벌려놓았던 짐들을 다시 짐가방에 담아 떠날 준비를 했다.
공항까지 가기 위해 리무진을 타야 했는데 이 곳에는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탔다. 줄곧 버스, 지하철만 탔던 우리에게 택시는 사실상 사치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후배가 택시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이 곳의 택시 문은 대부분 자동으로 닫힌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습관적이었다.
"すみません(스미마센, 미안합니다)"
"だいじょうぶ, だいじょうぶ(다이죠부, 다이죠부, 괜찮아요)"
멋쩍게 웃으며 주변의 거리를 다시금 눈에 담는다.
그래도 혹시 몰라 단어를 이어붙여 기사에게 물었다.
"음.. 인터컨티넨타루 호테루에 에어포토 리무진가 아리마스까?"
"하이, 아리마스"
조사가 맞는진 모르겠으나 공항가는 리무진이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있냐고 물었고 기사는 있다고 답했다.
궁하면 통한다. 궁즉통인가? ^^
어쨌든 인터컨티넨탈에 무사도착.
우리가 묵었던 호텔보다 몇배는 큰 이 호텔 로비에서 마치 이 호텔에서 묵었던 고객마냥 자리를 차지하고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이렇게 짧았던 도쿄여행이 끝났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감정은 크게 변함이 없었으나 일본이 만들어내는 문화나 개개인의 이미지를 보면 배울 점들은 분명 존재한다.
고객들 혹은 손님들을 향한 그들의 친절함과 그 친절함 앞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감사함은 우리나라의 갑을 문화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도심여행은 만만치 않다.
많은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더구나 짧은 기간이라면 정말 볼 것만 딱 정해서 봐야한다. 후회없이 미련없이.
이후 후쿠오카 벳푸, 오키나와를 통해 다시 일본을 관광했다.
가까운 나라이지만 후쿠시마 영향으로 쉽게 끌리진 않는게 사실이다.
도쿄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보고자 한다.
그 언젠가, 일본에 대한 내 감정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다음은 짧은 벳푸 여행과 오키나와로 이어가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