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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May 12. 2016

영화 <곡성>이 관객에게 던지는 미끼는 무엇인가?

내맘대로 리뷰 #15

※ 최대한 스포일링을 자제하며 쓴 글입니다만 내용에 따라 스포일링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있으니 읽으실 때 꼭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누가복음 24장에 나온 성경말씀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실제 영화 속에서 나온 문구와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곡성> 포스터

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추격자>와 <황해>에서 봤던 그의 연출력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개봉 전부터 영화는 어마어마한 관심과 화제를 불러 모았다. 1차 편집본과 시나리오를 본 임필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잠을 못 이뤘거나 급체를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언론시사 이후 이동진 평론가의 단순한 10자 평과 10점 만점의 별점 마저도 마케팅이 될 만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곡성>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10자평


영화는 선과 악, 엑소시즘, 오컬트, 코믹 요소가 잘 버무려진 미스터리 스릴러물이었다. 

다만 오컬트 무비를 '지양'해왔던 난 봐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고민이 앞섰다. 

내 인생에서 오컬트 무비는 다시 없을줄 알았는데.  


이번 영화는 캐스팅도 남달랐다. 

믿고 보는 티켓파워 황정민, 연기력 갑에 핫한 배우 천우희. 조연으로 영화에 등장해 주연급 카리스마로 거듭난 곽도원까지. 

영화를 본 후 느꼈지만 아역 김환희와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의 연기는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곡성의 어느 한적한 마을. 

야생 버섯에 중독된 마을 주민들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데 정신착란으로 인한 살인이라고 하기엔 기이한 광경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단순한 치정이나 원한으로 보기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과 잔혹한 죽음이 지속된다.  


사건현장을 보고 있는 종구(곽도원)


사건에 투입된 경찰 종구(곽도원)는 사건을 수사하던 중, 살인사건을 목격했다는 무명(천우희)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건 현장 주변을 맴도는 일본에서 온 외지인(쿠니무라 준)은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사게 된다.

이후 자신의 딸 효진(김환희)마저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괴로워한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자 무당 일광(황정민)을 부르고 굿판을 연다. 

원인은 무엇이고 어떠한 힘에 이끌려 가는 것일까?




미끼를 물 것인가?

이 영화는 엑소시즘을 단순하게 표현한 오컬트 무비가 아니었다. 긴장감과 공포 역시 단순함 그 이상이었다. 

초반 시퀀스부터 음침하게 시작된 연쇄적인 죽음과 살인은 아주 느리게 표현되어 긴장감을 촉발시켰다.

팬티 하나만 걸친 일본 외지인이 깊은 산 속에서 산짐승의 내장을 파먹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무명이 일본 외지인은 귀신이라고 말하는 점 등 종구는 외지인을 점점 의심하기 시작한다. 

마을에 들어온 외지인(쿠니무라 준)


관객들 역시 영화가 던져주는 미끼에 대해 서서히 의심하게 된다. 

'이게 과연 진짜일까?', '외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종구는 관객들과 달리 의심에서 확신으로, 확신에서 혼돈으로 빠져든다. 종구는 아픈 딸을 살려야만 하는 아빠이자 피해자의 입장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딸의 고통. 종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영리한 관객들은 그 미끼를 쉽게 물지 않는다. 


무당 일광(황정민)이 마을에 찾아오다.

무당 일광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의 중후반부는 거침이 없었다. 

느리게 표현된 전반 시퀀스 내내 차곡차곡 쌓아왔던 긴장감이 절정에 다다른다.     

점차 선과 악, 사람과 악마(또는 귀신)의 경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관객들의 일부도 서서히 의심에서 확신으로 넘어가며 영화가 던지는 미끼를 물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미끼가 진짜일지는 엔딩까지 가서도 알기 어렵다. 




놓칠 수 없는 미끼, 맥거핀

영화는 실체가 없는 '그 무엇인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파고든다. 

맥거핀(Macguffin), 즉 '그 무엇인가'에 대한 떡밥은 수도 없이 던져진다. 

종구는 딸 효진의 위기를 함께 하는 아빠로서 그리고 피해자로서 원인을 찾아나선다. 

그때마다 나타나는 맥거핀으로 인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곳곳에 심어놓은 공포감과 코믹함이 절묘하게 뒤섞여 관객을 뒤흔든다. 

FIP 대표 토마스 제게이어스


이 영화가 20세기 폭스 산하의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FIP)의 탄탄한 지원을 받게 된 것은 한국 어느 마을의 음울하고 섬뜩한 분위기가 동양의 샤머니즘에 대한 시퀀스들과 조화롭게 이루어졌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에겐 분명한 매력포인트였을 것이다. 

정말 신기한 건 동양적 샤머니즘과 더불어 외국 오컬트 무비에서 흔히 볼법한 사제와 엑소시즘, 사탄이 영화 속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무당 일광의 굿판


토속신앙과 무속이라는 전형적인 한국적 소재와 외국 관객에 어느 정도 익숙한 가톨릭(또는 기독교) 코드를 첨가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성경말씀은 종구나 사제의 의심 즉 인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다. 하지만 나는 있다' 


예수의 모습인데 진짜 내가 믿던 예수인지, 예수의 모습을 한 악마의 모습인지 의심을 하게 되는 예수의 제자들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종구나 사제를 통해 표현한다. 

아주 잠시였지만 영화 속에서 표현된 예수의 스티그마타(Stigmata)는 섬뜩할 정도였다. 

이는 외국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는 장치로서 오컬트의 기본에 충실한 표현인 듯하다.  

* 스티그마타란 예수의 몸에 새겨진 못 자국, 즉 성흔을 말한다.


156분의 러닝타임 중 엔딩 시퀀스에 다다를 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기운이 빠진다. 

수도 없이 던져대는 미끼에 얻어맞은 효과일까? 

관객들은 156분 내내 알 수 없는 실체와 마주한다. 그리고 진짜가 무엇인지 추리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아주아주 섬세하고 느리게 표현된 전반부, 속도감 있게 연출된 중후반,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는 '나홍진 미쳤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거칠고 잔혹하며 탄탄했다. 

엔딩 시퀀스에서 보여준 교차 편집은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아니 놓쳐서도 안되고 반드시 눈 크게 뜨고 봐야 할 하이라이트다. 무섭더라도 말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바로 '연기'다.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무당 일광으로서 얼마나 찰진 표현을 했을까라는 의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으로 변한다. 굿판을 열며 방방 뛰고 소리를 지르는 그의 연기는 기존 영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 봐야 황정민. 뻔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뻔하지 않은, 황정민의 연기


종구 역을 맡은 곽도원은 주연 자리에서 충실하게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영화 <황해>에서 보인 곽도원의 연기에 감탄했던 나홍진의 이번 캐스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직 미혼인데다가 자식이 없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그의 걱정은 그저 '팔자'였다. 


출중한 카리스마, 주연배우 곽도원
사건을 목격했다는 무명(천우희)

천우희는 등장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한다. 등장하는 씬 조차 많지 않은데 등장하는 씬마다 새롭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배우는 따로 있다.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과 아역 배우 김환희.

우린 이 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아이유가 연기를 펼쳤던 KBS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에서 손태영의 캐릭터인 혜신의 딸로도 등장한 바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아이가 이런 연기를 펼칠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주연 배우급 못지않은 섬뜩한 연기는 <엑소시스트>의 아역(린다 블레어)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아픈 딸 효진(김환희)을 안고 있는 종구

김환희가 연기한 효진 캐릭터와 더불어 쿠니무라 준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 

그는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에서 알려진 배우다. 35년간 연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한국영화에 등장했고 칸에도 가게 됐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에너지와 눈빛은 무서울 정도다. 

혼신의 연기를 펼친 외지인 역의 쿠니무라 준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나홍진 감독은 단 세편만으로도 힘 있는 감독이 되었다. 

<추격자>, <황해>에 이어 <곡성>까지 모두 칸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곡성>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나홍진 감독

영화의 결말을 두고 많은 의견이 엇갈릴 듯 싶다. '내가 뭘 본거지?'라고 생각 한들 개인적으론 2번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감히 말하지만, 

꼼꼼하고 탄탄하게 만들어진 영화 <곡성>, 대한민국 호러 무비 역사를 다시 쓰게 된 듯 싶다.    


 


내 마음대로 쓴 15번째 리뷰였습니다.

내용에도 언급했듯, 

개인적으로 오컬트 호러는 지양하는 편입니다만 영화에 대한 궁금증과 놀라운 연출이 화제가 되어 전야개봉에 예매를 하고 156분동안 벌벌벌 두려움에 떨었네요.

15세 관람가이지만 공포감은 그 이상입니다. 참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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