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n 잡은 루이스 May 16. 2016

영화 <거인>에 비친 프란시스코 고야의 <거인>

내맘대로 리뷰 #16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의 <거인>
프란시스코 고야는 1764년 에스파냐 출신의 화가다. 그의 그림을 보다 보면 어둡고 소름 끼친다.
그의 작품은 후기로 가면 갈수록 점차 어두워졌고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2009년 1월, 고야의 <거인>이라는 작품이 고야의 조수였던 아센시오 훌리아(Asensio Julia) 손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영국의 더 타임스(The Times)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검은 하늘에 머리가 닿을 듯한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모습의 거인과 그보다 작은 사람들이 땅 위에서 도망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만 보아도 어두운 배경에 공포스러운 느낌이 역력하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거인>      출처 : www.ibiblio.org


영재 그리고 요한

집을 나와 그룹홈의 도움으로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열일곱살 소년 영재(최우식)에게는 아버지도 있고 동생도 있다. 

보호시설의 손을 떠나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가 왔지만, 영재는 무능력한 아버지에게 돌아가 사는 것이 너무 싫다. 

무능력한 영재의 아버지는 영재를 통해 양육비를 구걸하며 사는데 동생인 민재까지 시설에 맡기려고 한다. 

팔다리 멀쩡한 몸인데도 말이다. 

영재는 보호시설의 원장과 보호시설을 찾는 신부님에게 그 누구보다 살갑게 대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신부가 될게요"라고 말하는 영재. 


겉으로는 아이들도 잘 챙겨주고 시설 원장 부부와 신부님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숨겨진 이면에는 보급품을 훔쳐 학교 친구들에게 되팔고,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지갑을 채우기도 한다. 

늘 돈에 쪼들리며 살아왔으니 아무리 훔친 물건이라 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같이 동고동락하는 친구에게도, 원장 부부에게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정도로 그는 계산적으로 행동하고 늘 눈치를 본다. 

영재를 보호하는 시설이나 아버지를 통한 영재의 뼈아픈 성장통이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이유는 영재 주변의 어른들들이 형성한 냉혹함에서 기인한다.


훈계하는 원장 그리고 영재(최우식)


"너 같은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라며 비수를 꽂는 시설 원장의 차가움이나 "네 동생도 시설에 맡기자"는 무책임한 아버지의 행동은 영재를 더욱 거인으로 자라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영재는 보호시설에서 요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히 신부님이 시설을 찾아왔을 때도 영재라는 이름보다 요한이라는 이름을 내세웠던 것은 신부가 되기 위해 이미 마음을 먹었으니 잘 봐달라는 의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영재는 요한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시설의 보호로 청소년기를 연명하고자 함이다. 

영재가 살고 있는 시설은 1997년부터 서울시에서 도입한 복지제도로 꾸며진 그룹홈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 또한 이러한 시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하니 어쩌면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무책임한 아버지(김수현), 그리고 현실이 답답한 영재
거인이 되어버린 영재

스스로 거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영재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거인>처럼 어른이 되어 세상과 맞붙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두운 배경 속에 등장한 거인의 모습이지만, 흉악할 정도로 괴기스럽지도 않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거인은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이 그림이 만들어졌던 1810년~1816년경에는 에스파냐를 지배하던 집단의 폭정과 더불어 혁명군대 "나폴레옹"의 무리들이 에스파냐를 도륙하던 어두운 시기였다고 했다. 

화가에게는 어두웠던 폭정의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들마다 이와는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불안한 작가의 심리나 어두운 사회에 대한 거대한 불안이나 갈등 따위. 

후자를 보면, 영재가 처한 현실과 맞물리게 된다. 영재도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된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영재의 하루살이는 기댈 곳이 마땅치 않다.  


"사는 게 숨이 차요." 


아등바등 살아가는 영재는 영화 포스터에 담긴 짧은 카피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자전적 이야기를 훌륭하게 연출한 감독과 영재의 내면을 가감 없이 연기한 최우식의 "거인"은 처절할 정도로 모질었던 소년의 성장기이자 그리 멀지 않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영화<거인> 포스터




※ 2014년 11월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저는 작년에 관람했습니다. 기존에 포스팅했던 글인데 편집하여 올립니다.

최우식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 <부산행>에도 출연하는 그의 연기가 다시 한번 기대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곡성>이 관객에게 던지는 미끼는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