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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03. 2024

바삐 출근하던 어느 날

오늘의 단상


언젠가 출근하던 아침, 지하철 역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가던 아저씨 하나가 생각이 난다. 그는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시계도 보고 휴대폰도 봐가며 안절부절이었다. 어느 누가 봐도 '나 급해요', '나 늦었어요'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뒤쪽에 섰는데 앞을 보니 어느 할아버지가 가만히 서계셨다. 그냥 서서 계신 것이니 일부러 뒷사람을 가로막은 게 아니다. 다만 할아버지가 에스컬레이터 계단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뒷사람이 지나갈 수 없는 좁은 에스컬레이터 구조였을 뿐이다. 액션 영화처럼 할아버지를 뛰어넘을 수도 없거니와 '저 좀 급한데 비켜주실래요' 혹은 '좀 내려가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말하기에도 그런 상황이었다. 계단은 반대편 입구에 있었던지라 그에게는 이게 유일했다. 어쩌면 굉장히 길게 느껴졌을 그 짧은 순간을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에스컬레이터가 아무리 길어봤자지 고작 1분도 걸리지 않는다만 그에게는 엄청 깊어 보였을 것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할아버지가 내리는 순간 뒤에 있던 아저씨가 마구 뛰어갔다.  '오 혹시 저건 축지법인가' 할 정도다. 안내 모니터를 보니 열차가 떠나려던 찰나였다. 안타깝지만 여기서 뛴다고 해도 지하철을 잡아타기는 어려웠을 것 같았다. 결국 아저씨는 지하철을 놓쳤다. 스크린도어 앞에서 헉헉거리던 아저씨가 투덜거렸다.  


'아, 저 할아버지 때문에 놓쳤네. 투덜투덜'


얼마 뒤에 나도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됐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한 손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신 할머니 바로 뒤로 바짝 붙었다. 나도 휴대폰 시계를 확인했다. 에스컬레이터 아래에 다다르고 (축지법할 수준도 아니지만) 100미터 달리기 하듯 뛰었지만 안내 모니터에서는 방금 출발한 지하철 꽁무니만 표시되고 있었다. '안녕, 나 먼저 갈게! 다음 거 타라(일찍 오지 그랬니)‘ 이거 뭔가 약 올리는듯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저 할머니만 아니었어도 탈 수 있었을 거 같은데'

그리고 스크린도어 앞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잠깐 생각을 해봤다. 집에서 조금 서둘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1분만 빨리 왔어도. 내 앞에 누가 서있든 내가 그 누군가로 인해서 지각을 했다고 치자.

"에스컬레이터에서 어떤 할머니가 '길막'하는 바람에 늦었어요"

아이고 그랬구나.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 충분히 이해.. 하기는 무슨. 과연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냥 부지런하게 나왔다면 그렇게 서두를 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사람은 때때로 늦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이 생기게 되면 후회할 것도 없거니와 사실 또 후회해봤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게 남탓 할 일이냐는 말이다. 스크린도어 앞에서 나는 다음 열차를 타고 출근했다. 여기 또 다른 누군가도 열차를 놓쳤다가 타게 됐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일찌감치 서둘러 여유 있게 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하철이 열심히 달려준다. 내 마음을 아는 건지 오늘 유난히 더 빨리 달리는 것 같다. 그래, 달려라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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