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상
장마와 무더위 그리고 열대야까지 아주 완벽한 여름이네요. 세차게 몰아치던 비가 뚝 그치고 나면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거리는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겠죠.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하면 휴가를 알차게 보낼지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아니면 해외로 질러버릴까. 해외를 가보려고 대충 알아보니 어익후 많이 비싸구나. 아무튼 '더워 죽겠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휴가를 계획하고 있네요. 알고 보면 에어컨 잘 나오는 시원한 우리 집이 최고의 선택이 아닐지. 얼음 가득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홀짝홀짝 마시면서 OTT나 보고 책이나 읽는 거 말이죠. 근데 이게 또 하루 이틀 하기엔 너무 무리죠. 더구나 남는 게 없을지도. 뭐 암튼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휴가 가기 전 '설렘'이라는 게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게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사실 평일에 회사를 가지 않는다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죠?)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꺼리'가 넘쳐나니까요. 더구나 여행을 하는 그 시간 동안 약간의 디지털 디톡스도 되는 것 같아요. 놀기 바쁘니까요. 단, 사진 찍는건 제외. 기록을 위한 사진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참고로 저는 절대로 SNS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이라고 했을 뿐.
어쨌든 여행을 계획하고 짐을 싸면서 느낄 수 있는 그 설렘이란 이루 말할 수 없죠.
저는 국내외 이곳저곳을 수십 번도 더 다녀오긴 했지만 이제는 그런 여행을 아이와 함께 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챙겨야 할 것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어른들이야 티셔츠 하나에 바지 하나만 있어도 뒹굴 수 있지만(과하게 말해서 그렇다는) 아이들은 그게 안되잖아요. 유모차, 기저귀뿐 아니라 분유나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 아기들이라면 더 꼼꼼히 잘 챙겨야 하죠. 아프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아픈 경우를 대비해서 비상약에 체온계도 챙겨야 하고. 이게 또 해외에 가는 거라면 더욱 많은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합니다. 그러니 아이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나 홀로 여행이나 친구들과 즐기는 여행과는 아주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비행기에 탔는데 어라 저 구석에서 어떤 아기가 마구 울고 있군요. 비행기 떠나갈 듯 울어재끼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아, 잠 다 잤네", "아기니까 그럴 수 있지" 아니면 "저 어린애를 데리고 무슨 여행이냐?"
아이가 어렸을 때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승무원분들이 아이와 눈맞춤 하면서 선물을 주기도 하셨어요. 제주도라면 불과 1시간 남짓인데 그 짧은 비행시간 동안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는 거잖아요. 그 선물이라는 것도 임시방편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부모 된 입장에서 아이가 떼를 쓰거나 울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죠. "제발, 얌전하게 가자" 이 마음뿐이었어요. 크게 울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움직이며 칭얼거리는 소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어차피 거기서 거기) 눈으로 레이저를 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 눈빛에서 나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죠. 그 눈빛이 어떤 의미인지 감히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없지만 대략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강렬한 눈빛에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의미를 담아 사슴 눈망울로 답을 했죠. 다행히 승무원분들의 도움까지 받아 어르고 달래주며 짧지만 길었던 (고작) 1시간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동남아로 여행을 가게 됐는데 앞자리에 외국인이 탔고 우리는 그 뒷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불 꺼진 비행기 안에서 졸려 죽겠는데 불편해지니 칭얼거리기 시작했죠. 앞자리에 앉은 거구의 외국인 아저씨가 뒤를 쳐다보는데 흠칫 놀랐답니다. "Sorry"라고 하며 아이가 조금 불편해하는 것 같다며 짧게 이야기를 건넸더니 "애들이니 다 그런 거 아니냐"며 오히려 이해해 주는 모습이었어요. 당연히 감사했죠. 별말 아니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이랄까, 아무튼 이렇다 할 불만 표시 없이 마냥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또 공감하는 것 같아서 고맙게 느껴졌어요. 비행기에서 내릴 때에도 아이에게 미소를 전했고 그 미소에 다시 한번 "땡큐"를 날리며 화답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추억을 쌓기 위함입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말이죠. 그럼에도 "그 어린애가 뭘 알아. 기억도 못할 텐데"라면서 굳이 그 나이에 뭐 하러 여행을 가냐면서 타박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럼 아이가 어느 정도 커야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건가요? 여행이라는 것에 정해진 나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물론 부모의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 역시 더 넓은 세상을 볼 자유도 권리도 있습니다. 그게 국내든 해외든 말이죠. 더구나 어렴풋이라도 좋은 기억과 추억을 심어주는 것 그리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성장하는 데 있어 매우 훌륭한 발판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어쩌면 교과서보다 더 좋은 교재가 되지 않을까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핵심기억이라는 게 나옵니다. 자아를 형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재료가 되기도 하죠. 여행을 하는 동안 심어진 핵심기억들이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고 올바르게 성장하는 데 있어 소중한 영양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에너지가 될법한 기억들, 그게 바로 추억인거죠.
여행이란 그런 것이죠. 가기 전에는 설렘을, 다녀온 후에는 좋은 기억과 추억 그리고 그리움까지. 아 물론 밀린 빨래와 카드값도 생기겠군요? 빨래야 하면 되는 거고 카드값은 뭐, 열심히 일해야지 별 수 있나요? 하지만 전 그걸로 좋은 추억을 샀습니다! 자 그럼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