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리뷰 #25번째, 영화 <마일스>
마일스 데이비스를 연기한 돈 치들은 우리에게 '아이언맨의 친구'로 익숙하다. 로드 중령을 연기했던 그는 이른바 '만년 조연'이었다. 그는 2012년부터 시작된 미드 <하우스 오브 라이즈>에서 마티 칸 역을 맡아 주연 롤 타이틀에 이름을 올렸고 2016년 시즌 5까지 계속해서 출연 중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마일스>라는 영화를 통해 연출과 각본, 주연까지 섭렵했다. 마일스 데이비스 특유의 거친 목소리 톤까지 그는 마일스로 완벽하게 빙의(憑依)했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마일스 데이비스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트럼펫 연주가이자 재즈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음악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이었는지 몰라도 그는 10대부터 트럼펫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교 시절에는 재즈 밴드까지 결성한 바 있다. 이후 줄리어드로 진학하기는 했으나 자신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하지만 연주는 계속됐다. 연주가들과 퀸텟(Quintet)을 결성하기도 했고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해 음반을 내기도 했다. 마일스는 기존과 달리 신선한 포맷을 갖춘 쿨 재즈나 퓨전 재즈로 재즈 음악이 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보다 넓게 확장시킨 아티스트였다. 1980년대에는 랩과 재즈를 믹스한 힙합 재즈(Hip-hop Jazz)까지 선보였으나 제대로 선보이지도 못한 채 사망했다. 1991년 그의 나이, 65세.
새카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마일스(돈 치들), 한 손에는 늘 그렇듯 담배가, 한 손에는 그의 상징인 트럼펫을 들고 있다. 데이브와 인터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에서 다뤄진 마일스 데이비스의 1970년대 후반은 잘 나가던 음악 인생에서 암흑기 같은 시간이다. 코카인과 술, 담배 없이는 조금도 살 수 없었던 그의 어두웠던 공백기를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자취를 감춘 마일스는 약에 찌들어 폐인처럼 살아간다. 그러던 중, 마일스와 인터뷰를 원했던 '롤링스톤'의 기자 데이브 브릴(이완 맥그리거)이 찾아오고 점점 세상의 빛이 드리워진 밝은 공간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마일스의 음악 그리고 인생
영화는 마일스의 연인이자 아내 프란시스 테일러(이마야치 코리닐디)와 함께 했던 과거의 이야기를 플래시백(Flashback)으로 교차 편집해 현재의 마일스와 연결한다. 과거의 마일스는 다소 예민하고 거칠긴 하지만 한 여자에 푹 빠져 사랑을 하게 된다. 더불어 누구나 알아보는 인기 있는 뮤지션이지만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순수하고 확고한 마음으로 음악에 접근한다.
"틀려도 되니 연주에만 집중해", "여긴 이렇게 바꿔서 다시 해볼까?"
열정이 넘친다. 퀸텟 속에서 그저 트럼펫만 불어대는 한 명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지휘자이자 프로듀서이자 카리스마 있는 마스터의 모습을 선보인다. 하지만 그는 점점 변해간다. 프란시스에 대한 사랑은 점차 집착과 의처증으로 변해갔고 급기야 파국에 이르고 만다. 마일스의 방안에는 감미로운 선율의 음악보다는 술 냄새가 나고 담배연기만 자욱할 뿐이다.
연출을 맡은 돈 치들 감독은 마일스의 생애 중 '왜 굳이' 이런 폐인 같은 삶만 도려내 영화화했을까 사뭇 궁금했다. 화려했던 전성기와 높은 인기에 가려진 어두운 이면은 그가 음악에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반비례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찌든 내 나는 그의 집 한 귀퉁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음악은 그에겐 변화의 시작이지만 그가 속해있는 레이블의 사장에게는 그저 돈일뿐이다. 마일스의 손을 거친 새로운 음악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따끈한 신보 같은 것. 하지만 이 테이프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카 체이싱과 총격이 난무하기도 한다. 마일스는 성치 않은 몸으로 끝까지 자신의 음악을 지킨다.
그는 말한다.
"내 음악을 규격화해서 재즈라고 하지마. 내 음악은 교감의 음악이야!"
재즈 음악을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면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나 역시도 그렇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내면과 그의 어두웠던 한때를 10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그려내 자칫 '수박 겉핥기'는 아니었는지 궁금해진다. 그의 팬 그리고 재즈를 사랑하는 팬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지도 궁금하다.
분위기 충만한 그의 연주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나른해진다. 한없이 거칠고 예민한 그에게서 이런 음악이 나올 수 있다니. 꽤 낭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