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러닝 2

by Pen 잡은 루이스

얼마 전 <인공지능 시대의 러닝>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두서없이 글 하나를 썼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치 ‘스마트워치 예찬론자’처럼 보였던 것 같아 굳이 덧붙이는 넋두리 하나만 남겨보고자 한다. 디지털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내가 그 정도로 '예찬론자' 였던가 싶은데 글쎄 뭐 아예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이런 의미는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스치니 좀 찝찝해서 말이다. 누가 물어보기나 했나. 그건 또 아니다. 스스로 곱씹어보는 글이라고 해야 하나.


시대는 변했다. 아니 변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는 발전을 거듭하고 디바이스 역시 진화한다. 우리는 달리기라는 단순한 행위에서도 디지털과 호흡을 맞춰가는 중이다. 전현무도 했다는 '댕댕이런'이나 여의도 한 바퀴 '고구마런'이 있는 걸 보면 확실히 트렌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GPS 기능이 있는) 디바이스가 없으면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도 없지 않나. 그럼에도 운동을 하는데 웨어러블 따위가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실 있으면 좋을 수도 있지만 없어도 그만이긴 하다. 그림은 다른 곳에 그려도 되니까.


달리기에만 국한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운동은 어떨까? 어쩌면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는 자"와 "그냥 운동에만 몰두하는 사람"으로 나뉠 수도 있긴 하겠다. 난 전자와 후자 모두에 해당한다. 적절히 믹스해서 가장 달콤 쌉싸름한 커피 마냥. 아니다. 어쩌면 물을 적게 부어 엄청 달달하거나 실수로 많이 붓는 바람에 맹물로 망쳐버린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골프를 칠 때도 디지털과 함께 하는 경우들이 있다. 높이가 어떻고 거리가 어떻고 바람이 어떻고 코스가 어떻고 하는 스마트워치나 거리측정기가 그런 경우다. 축구나 농구를 하는 경우라면 스마트 워치는 단지 선택일 뿐이다. 수영을 하거나 크로스핏을 하는 경우에도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운동량을 체크하기도 한다. 주짓수 같은 격투기를 할 때에는 온몸에 붙은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데 스마트워치 또한 락커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어야 한다. 반지도 팔찌도 목걸이도 안된다. 러닝의 경우에는 보폭을 늘리고 심박수를 체크하고 기록을 앞당기기 위해 수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렇게만 보면 필요할 수도 있고 필요 없을 수도 있고.


아날로그 시대, 우리의 달리기는 어떠했나.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기며 뛰었을 뿐, 주변 소음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발바닥이 내가 뛰는 길을 기억하던 그런 시대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언급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70대가 된 하루키가 한창 달리기를 할 때 음악을 들으면서도 온 세상에 몸을 맡겼다는 문장이 새삼 와닿는다. 무슨 육상선수처럼 트랙 위를 뛰는 것도 아니고 교통 통제가 되는 대회도 아닌지라 도심을 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신호에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오가는 차를 피하게 되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달리는 경우도 많은데 하루키가 그랬듯 내가 달리는 코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특히 시장 근처를 지날 때에는 천천히 걷는 어르신들을 조심조심 피해 가며 뛰어야 한다. 가끔 조경이 좋고 평지로 이뤄진 다른 아파트 단지를 빌려서 뛰곤 한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세발자전거나 킥보드를 몰고 다닌다. 종종 러닝 하는 주민들도 보이는데 때때로 페이스 메이커가 된다. 가끔 내가 몇 바퀴씩 돌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무아지경이 되는 경우도 있다. 스톱워치를 누르지 못했거나 앱을 켜지 못한 날에는 "내가 몇 바퀴나 뛰고 있는 거지?"라며 괜스레 허탈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록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래도 오늘 잘 뛰었다”라는 뿌듯함은 충분히 남는다. 운동을 한 후의 상쾌함은 오래간다. 기록이 없어도 충분하다. 사실 스마트워치를 차고 뛴다고 해서 나중에 킵초게가 되는 것도 아니고 션이 되는 것도 아니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러너로서 몸에 좋은 운동을 하는 경우'라면 그저 마음 편히 뛰는 게 최고인 것 같긴 하다.


인공지능 시대이자 스마트 디바이스 시대에 달리기를 이야기하는 일이 어쩐지 과하게 시대정신을 끼워 맞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괜히 “AI 코치”라고 해서 인공지능과 달리기를 억지로 엮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렇게 2탄으로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지만 달리기에 있어 테크놀로지는 곁에서 도움을 주거나 참고가 될법한 조용한 어시스턴트일 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핵심은 언제나 오늘도 잘 달렸다는 그 순간의 기분이니까.


또 이도저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암튼 오늘도 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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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이 전편입니다. https://brunch.co.kr/@louis1st/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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