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성장을 이루는 것들
박현욱, <동정 없는 세상> 북리뷰
영화 ‘동정(同情) 없는 세상’과는 사뭇 다르긴 했지만, 박현욱의 ‘동정(童貞) 없는 세상’은 비단 제목의 언어유희에 피식하고 넘어갈 것만은 아니다. 동정(同情)이 되었든 동정(童貞)이 되었든 나름 두 단어는 지켜졌을 때 가치가 느껴지는 대상들이고, 그것이 없는 세상이란 둘 다 뭔가 허전하고 삭막해 보이는 것이다. 사춘기를 훌쩍 넘어 청년기, 혹은 성년의 시기를 목전에 둔 준호의 좌충우돌 동정 떼기를 화두로, 끝자락에 선 십대들의 치기를 가볍게 다루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 ‘동정(童貞)’은 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기도 한다.
수능이 끝난 고3은 이미 고삐가 풀릴 대로 풀려 있고 그 누구도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밤늦도록 술을 마셔대고 담배를 피우고 몰래몰래 사창가를 들락거려도 자타공인 성인의 반열에 오른 그들은 무방비 상태 속에 그야말로 붕 떠 있는 상태. 게다가 그동안 억눌린 성적 욕구는 어디로, 어떻게 분출해야 할지 정작 아노미 상태.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선 이들은 장래를 고민한다. 그야말로 세상에 ‘내던져질’ 일만 남은 것이다.
얼핏 보면 준호는 평범한 고딩이다. 아니 어쩌면 속된 눈으로 바라보았을 땐 그닥 좋은 가정환경은 아닐지 모른다. 스무 살에 준호를 낳았다는, 하지만 준호에게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한 번도 준 적 없는 준호의 엄마는 아마도 미혼모일 것이다. 게다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고는 하지만 누나의 집에 빌붙어 있는 서른 넘은 외삼촌은 룸펜이다. 그리고 그 두 명의 부양자들은 준호에게 평범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교육’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수능 결과 여부는 물론 졸업 후 진학이나 진로에 대해서도 천하태평이다. 살아 있는 성교육이랍시고 윤활유 사용을 권장하거나 법적 연령 섹스에 대한 정보를 건네는 게 고작인 룸펜 삼촌, 통속적인 TV드라마 시청을 즐겨하며 연예인이 되거나 정 할 게 없으면 엄마 미용실에 나오면 된다는 엄마.
하지만 이들은 준호라는 아이를 결코 평범하게 키우지 않는다. 이들은 ‘숙경씨’, ‘명호씨’의 호칭으로 불리면서 어른과 아이의 분리된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대화’라는 것을 스스럼없게 만든다. 또한 이미 소싯적 충분히 놀아보았을 것 같은 숙경 씨나, 집안의 희망이자 전도유망한 엘리트였던 명호 씨는 학교 성적이라는 것이, 그리고 진로에 대한 지나친 조바심이라는 것이 인생 전반에서 얼마나 무용한 것인가를 이미 충분히 숙지함으로써 준호에게 ‘가야할 길’을 닦달하지 않는다. 20년 동안 존재하는 것 자체로도 가장 큰 효도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야설 속에서도 작가로서의 재능을 추출해 줄 수 있는 사람, 가출이야말로 가장 쓸모없는 행동임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이 풍기는 아우라야말로 오늘날 좀처럼 보기 힘든 순수, 곧 ‘동정(童貞)’의 한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