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인간, 뫼르소

알베르 카뮈, <이방인> 북리뷰

by 루이

내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던 날, 나의 마지막 소원처럼 많은 구경꾼들이 왔었던가. 새벽부터 몰려온 인파 속에서 나를 비난하던 함성을 들었던 것도 같고, 텅 빈 사형대에서 외롭게 스러져 갔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지금 내가 떠올리고 있는 것은 내 상념에서 파생된 파편일 뿐. 혹자는 나를 패륜아라고 욕했고, 어떤 이는 나를 무자비한 살인마라고도 불렀다.


그랬다. 나는 체포되기 전까지 그들의 시선에 따르면 모친의 장례식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후레자식이었으며, 마리에게는 파렴치한 정부였고, 죽은 아랍인에겐 냉혈한 사이코패스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가 아랍인을 살해할 까닭은 딱히 없었다. 나는 강렬하게 쏟아지는 예의 태양 광선에 정신이 혼미했고, 섬광처럼 번쩍이던 그의 칼날 빛에 눈이 아찔했다. 나는 그저 쏟아지는 땀과 햇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저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나는 날이 더우면 바다에 나가 수영을 했고, 여자가 그리울 땐 여자와 잠을 잤다. 대상은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저녁을 먹지 않고 잠을 잤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내 방식대로. 하지만 엄마의 죽음이 슬프지는 않았다. 엄마가 살아있든 돌아가셨든 어떤 쪽이든 내게는 상관없었다. 나는 마리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할 수 있었다.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라캉이라는 자는 이런 나를 상상계 속의 어린애라고 비웃었겠지.


내가 살인죄로 기소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사유’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본능이 때때로 타인과 불협화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리는 나의 무심한 대꾸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경건하고 비장하게 보냈어야 할 엄마의 장례식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다에 뛰어든 내 행동은 세상의 관습에 부합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눈이 부셨고 더위와 땀을 피할 수 없어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정당한 살인 사유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비로소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상징의 질서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헌데, 우습게도 그들의 질서는 너무도 부실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담당 변호사라는 자는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의 감정을 윤색하려고 했고, 검사라는 작자는 장례식 날 내가 지나치게 무덤덤했고, 커피를 마셨고, 마리와 함께 코미디 영화를 보고 수영을 했으며, 엄마의 나이를 잘 몰랐다는 이유로 아랍인을 계획적, 의도적으로 살인했다고 몰아붙였다. 그는 내 ‘죄’가 아닌 나 ‘자신’을 근거로 나를 유죄로 확정지었다.


나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나는 사실이 아닌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작전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감옥에서의 몇 달 간은 힘들었다. 담배도 피울 수 없었고, 수영을 할 수도 없었고, 여자와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나는 수감자가 됨으로써 비로소 내가 이전에 자유로운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내 수감자로서 사고하는 법을 갖게 되었다. 누구나 결국 모든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라는 엄마의 말처럼. 나는 항소를 숙고해 보기도 했지만 사리를 따르기로 했다. 죽음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을 진지하게 응시했다. 접견과 마지막 회개를 거부하는 나를 부속 사제는 끈질기게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부속 사제와 나의 대화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분노와 좌절로 부서져 버렸다.


나는 결코 이 세계의 질서와 화해할 수 없었던 것일까. 카뮈라는 작자는 날것의 삶을 드러내기 위해 ‘나’라는 극단적 인간을 만들어냈다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본연의 욕구와 타자의 질서 가운데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지금, 자신의 욕망을 본래 자신의 것이라 장담하지 말지어다. 당신의 욕망은 곧 타자로부터 재단된 것이다. 당신 스스로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라. 당신은 세상과의 괴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그 부조리한 죽음 앞에서 내 삶을 긍정하기로 했다. 나는 이 부조리한 세계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내 삶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새삼스러울 것도 아니다. 이미 그렇게 살아갔던 시시포스라는 자가 있었으니.

- <연옥으로 가는 길목에서 뫼르소와의 인터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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