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조임과 풀기의 묘미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 북리뷰
크리스마스 전야, 고택(古宅), 유령이야기... 할로윈도 아닌 크리스마스이브에 새삼 귀신 이야기라니, 19세기말 버전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라도?
이야기는 여러 겹으로 구성된다. 가장 외곽에 존재하는 화자 ‘나’, ‘나’를 비롯해 난롯가에 모인 이들에게 이야기 꾸러미를 제공하는 ‘더글러스’, 마지막으로 내화 속 화자인 가정교사 ‘나’. 두 겹으로 막을 두른 내부 이야기는 액자 구성의 핵심답게 독자들의 호기심을 당긴다. 더구나 ‘지극히 매력적이고 영리하며 산뜻한 인상’을 주었다는, ‘가정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더글러스의 호평과, 굳이 우편을 통한 원본 공수로 사흘이나 이야기를 지연시킨 고도의 스킬, 부유하고 매력적인 주인 남자와 풋내기 가정교사라는 떡밥은 외화 속 청중은 물론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유령이야기라니, ‘제인 에어’의 판타지가 재현될 수도, ‘우돌포’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과연 ‘나(가정교사)’의 이야기 속 유령들은 쏘쿨한 출몰 및 아이들과의 관계, 과거 은밀했던 사연들과 뒤섞여 ‘나’에게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유령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겠다는 투철한 소명의식을 심어 주었고, 그리하여 독자들은 악령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괴이한 행동과 엑소시스트로서의 ‘나’를 기대하고 있었더랬다. 헌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가정교사의 서술은 신뢰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본 환영이 그로스 부인의 부가설명과 결합되면서 ‘나’는 그들이 퀸트와 제셀의 유령이라 확신하지만 이들이 과연 그들의 망령인지 애매하다. 또 그들 망령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근거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마일스가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는 것, 때때로 밤에 잠자리를 벗어나거나 낮에 호숫가를 배회하는 아이들의 행위가 유령의 영향임을 증명하진 않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태도의 그녀는 그 어떤 사실도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확인한 바 없으며 그녀의 말에 철석같은 믿음을 보여 준 것 같았던 그로스 부인 역시 유령의 실체를 본 적 없다. 제셀의 환영을 좇아 호숫가에 모인 3자 구도(제셀-‘나’-그로스 부인과 플로라)의 장면은 이야기 반전에 결정적이다. 플로라의 경멸과 그로스 부인의 황당한 표정, 허공을 향한 ‘나’의 손가락질은 그녀에 대한 독자의 신뢰를 배반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나아가 마일스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이야기가 급 마무리되는 순간,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소설의 앞장을 뒤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의 소홀한 독서를 반성하게 된다.
믿을 수 없는 화자(가정교사 ‘나’) 덕분에 독자는 이야기 구석구석에 놓인 문장, 어휘, 대사 하나하나를 허투루 넘기기 힘들어진다. 더글러스에 따르면 ‘젊고 경험도 없는데다 신경질적’인 캐릭터에 ‘책임은 막중’한, ‘엄청나게 외로웠’을 그녀, 게다가 ‘수려한 모습의 젊은 남자의 유혹에 굴복’했으리라는 외화 서술자 ‘나’의 귀띔에 따라 이야기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퀸트의 등장은 ‘길모퉁이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알아 봐 줄’ 주인을 기다리는 화자 ‘나’의 상상으로부터 촉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환영은 그로스 부인이 들려준, 어디서나 흔히 있을 수 있는 하인들의 스캔들과 맞물려 망상으로 변질된다. 그리하여 ‘나’만의 세계 속에서는 망령들에게 영혼을 잠식당한 살아 있는 아이들(자신이 수호해야 할)의 말은 거짓이 되고, 그들의 행동은 모호하고도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그녀의 망상은 과연 ‘주인이 눈여겨보지 않은 나의 매력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계략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수기는 과연 유령으로부터 아이의 영혼을 구해낸 그녀의 승전보였을까.
일방적이고 모호한 진술은 이러한 내적 화자에 대한 의구심을 짙게 한다. 또한 가정교사 ‘나’의 수기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기록이며 그녀가 죽기 전 더글러스에게 건네진 것이다. 더글러스 역시 죽기 직전 외화의 화자 ‘나’에게 건네주었으며, 최종 기록으로서의 이야기는 외화의 화자 ‘나’가 만든 정확한 ‘복사본’에서 비롯되었다. 자, 이쯤 되면 독자는 그 정확하다는 ‘복사본’의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가장 내부의 이야기는 똬리를 타고 외부의 세계로 나오는 동안 환상과 망상, 미망으로 점철된 기묘한 이야기가 되었다. 어쩌면 가장 외부의 화자 ‘나’를 벗어나 작가 헨리 제임스의 손끝으로 온 순간, 이 다층적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만 모호하고 까탈스러운, 아둔한 독자들을 한동안 아연하게 만드는, 그저 허구의 한 토막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나사를 조이고 풀어내는 양, 긴장과 이완의 어디쯤을 수없이 오가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