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가짜? 뭣이 중헌디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북리뷰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오랜 팬으로서 원작소설의 제목에 대해 늘 신경이 쓰이곤 했다. 특히 황금가지판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라는 번역은 그 모호성을 짙게 했다.
1.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갖기를’ 꿈꾸는가.
2. 안드로이드도 ‘꿈’이라는 정신작용을 경험하는가.
폴라북스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번역을 보면 하나의 해석이 덧붙여진다.
3. 안드로이드는 안드로인 만큼 꿈을 꿔도 ‘전기양’을 꾸는가.
개인적으로는 3번에 손을 들어 주겠지만 그 어떤 해석으로도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인간과의 비교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즉, 인간을 닮은 로봇에 불과한 안드로이드로서 과연 인간의 모든 경험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인공지능(AI), 유전자조작 인간, 복제인간... 인간은 과학기술이라는 쾌거를 등에 업고 인간을 대체할 만한, 인간과 가장 비슷한 기능(?)을 지닌 존재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양산해 낼 것을 기대하면서도 그것이 과연 인간과 얼마나 동일해질 것인가, 아니 인간보다 뛰어나서 인간을 앞질러 버리면 어쩌지, 그래도 어디 감히 인간만 하겠어...등을 염려한다.
그리하여 인조인간,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등의 이름이 Scifi에 등장할 때마다 그런 염려들이 서사의 주를 이룬다. 때로는 반항적 모습으로(「블레이드러너2019」, 「아일랜드」), 때로는 순응적인 모습으로(「나를 보내지마」, 「블레이드러너2049」) 등장하는 ‘인공’의 존재들은 그 태생적 결핍으로 늘상 콤플렉스를 지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자연산’ 인간들로 하여금 과연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게 만든다. 로이 배티의 시적인 대사와 비장한 죽음 앞에서 ‘인간성’에 대한 본질에 의문을 갖지 않을 자 몇이나 될 것이며, 자신이 리플리컨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맥없이 스러진 K의 낙망한 모습에 가슴이 짠해지지 않을 관객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지만 이 모든 감동의 이면에는 ‘인간’의 시선이 내재되어 있는 탓이다. 즉, 아직은 ‘구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필립K. 딕의 원작소설은 보다 복잡하다. 「블레이드2019」와 「블레이드2049」가 과학기술의 비정함과 리플리컨트들에 대한 연민을 통해 다소 말랑말랑한 감정을 부추기는 것과 달리 딕의 소설은 보다 많은 것을 매우 드라이하게 묻는다. 소설에서 인간과 리플리컨트를 구별하는 요소는 ‘감정이입’이다. 즉,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상대의 감정을 얼마나 동일시할 수 있겠느냐의 여부. 그러나 버젓이 인간으로 규정된 릭 데카드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 아이랜의 정서를 공감하지 (못한다가 아니고) 않는다. 릭과 아이랜은 기분조절장치를 통해 자신들의 정서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며 위대한 인간의 공동체적 공감 능력은 ‘머서’와의 융합 장치를 통해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하지만 ‘머서’의 종교마저 사기행각으로 밝혀지면서 인간의 위상은 여지없이 격하된다. 인간과 꼭 닮은 안드로이드를 쉽게 ‘제거’한 릭은 인간과는 별로 닮지 않은, 실제 살아 있는 염소를 통해 그 헛헛함을 메우려 한다.
한편, 인간에 의해 피조된 안드로이들은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식민지를 탈출하기도 하고 기꺼이 생명을 내던지기도 한다. 또한 ‘머서’교의 안드로이드 버전을 꿈꾸기도 한다. 단독형 포식자에 불과한 그들만의 집단경험을 위해서 말이다. 이들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기대에 몹시도 어긋나는 짓들을 하는 것이다. 돈 조반니와 피가로의 결혼을 노래하기 위해 눈에 띄는 삶을 불사하는 루바 루프트, 자신을 개별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레이첼의 프리스에 대한 질투와 절망 역시 그러하다.
주객이 전도된 듯한 상황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아이러니하게 진행된다. ‘특수인’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사에서 배제되는 인간 이지도어, 뭉크의 그림에 정작 인간은 무감한 반면 진지하게 감정이입하는 안드로이드 루바 루프트, 안드로이드를 쫓는 인간(릭 데커드)을 체포하는 안드로이드 갈랜드, 안드로이드를 상사로 두고도 감지 못한, 인간인지 앤디인지 정체가 모호한 인간 필 레시, (아내에게 불가능했지만)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릭, 로봇인지 실제 생명체인지 쉽게 구분될 수 없는 동물 고양이, 두꺼비...
이쯤 되면 인간이냐 아니냐, 자연산이냐 제조된 것이냐, 진짜냐 가짜냐의 구분이 무색해진다. 고양이가 죽은 줄 모르는 남편에게 고양이 로봇은 여전히 살아 있는 고양이일 뿐이다. 두꺼비 로봇은 그저 인공 파리를 먹으면 그만이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의 개념이 필요한 지점이다.
아이러니로 점철된 딕의 소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니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그 정의를 새롭게 해야 될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고 예견하고 있고, 그의 질문은 이미 우리의 코앞으로 다가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