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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02. 2020

탈주? or 영토화의 재탕?

돈 탭스콧ㆍ알렉스 탭스콧, 「블록체인혁명」북리뷰

제1세대 인터넷이 ‘정보’의 민주화를 이루었다면, 제2세대 인터넷은 ‘가치’의 민주화를 추구한다. 가치...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가치란 다름 아닌 돈이렷다. 돈이 민주화를 이룬다. 얼핏 듣기엔 누구나에게 공평하고 평등하게 금전이 주어질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실상은 그 각도가 살짝 비껴간다. 무엇이든 돈이 될 수 있는 사회, 땅덩이나 건물이 아니어도, 가진 것 몸뚱이 하나뿐인 무산계급일지라도, 데이터화될 수 있다면 존재 자체만으로도 누구든 돈(가치)을 창출해 내고 거래할 수 있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인터넷을 기반으로 말이다.               


인터넷이라는 전대미문의 이름으로 등장, ‘제3의 물결’, ‘정보의 바다’ 운운과 함께 가상(假想)의 실체로서 인류 삶의 언저리에 접근하여 이젠 지구상 인류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된 개념. 종이에서 네트워크로 영역을 넓힌 활자들은 누구나에게 열린 정보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것 같았다. 어쩌면 불평등하고도 모순적인 사회구조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와 함께. 하지만 인쇄술의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건재해온 계급 구조는 (제1세대)인터넷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기존의 경제 권력은 네트워크를 독점하고 데이터를 수집, 통제하면서 더욱 비대해졌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권력과 자본을 지닌 기득권은 죽지 않는다.               


저자들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술은 자본사회의 이처럼 헤어날 수 없는 폐쇄적 구조를 배경으로 구안되었다. 부의 재분배 차원을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 자본주의의 기존 생산방식을 뒤흔들어 보자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게..) 블록체인기술이 추구하는 거래는 ‘탈중앙화’와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거대 기업과 자본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존 경제체제의 불투명하고 의뭉스런, 때로는 비도덕과 불평등이 횡행하는 거래를 벗어나, 모든 거래는 네트워크상에서 “검증되고, 청산되고, 블록에 저장되어 체인을 형성한다.” 가치의 교환이 기록된 원장은 강력한 암호기술을 통해 영구히 보존된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발달은 블록체인기술과 맞물려 가치 민주화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객관적인 평판을 바탕으로 지속될 수 있는 이 거래에는 상상력을 지녔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물리적 공간, 에너지원, 서비스 등 무엇이든 가치화될 수 있다면 거래는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기업, 은행, 정부 등 기존 중개인의 영역에 있던 제3자들을 삭제하고 거래 당사자들을 연결하여 즉각적이고도 매끄러운 결제를 유도한다. 그리고 블록체인은 정부가 아닌 ‘글로벌 거버넌스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다수 당사자들에 의해 상향식으로 자율 규제되기를 기대한다.               


불편은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었듯, 자본주의가 양산한 여러 불편들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기술을 등장시켰다. 기술적 원리나 가치 판단은 차치하고 그저 거칠게 이해한 바, 블록체인혁명은 기존 자본주의체제 하의 편중된 부와 불평등, 공고한 위계구조 등 고질적 모순을 타개해 보려는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이 시도가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기능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돌다리도 흔들어 보고 건너자는 심정으로) 왠지 지난한 시행착오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선, 기존의 (악랄했던?) 중개자들을 제끼고 장밋빛 거래와도 같은 블록체인 상의 계약이 성립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의 신뢰성, 윤리성이 전제되어야 할진대, 모든 거래가 네트워크상에서 공유되고 객관적 평판이 거래 유지의 조건이 된다 할지라도 과연 ‘파우스트식 거래’가 종식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신뢰나 평판 따위를 우습게 아는 ‘먹튀’의 후예들이라면? 게다가 암호화 기술로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다면? 


다음으로, 거래의 대상 즉, 콘텐츠의 문제다. 누구나 무엇이든 거래의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 아이디어와 상상력만 있다면, 아니 각자의 신원 명세조차도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매일매일 인터넷 거대공룡들에게 개인정보를 도난당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정보가 돈의 가치로 환산되어 거래될 수 있다는 것은 일면 매혹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두에서 제기했듯 무엇이든 가치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은 꽤 위험한 측면이 있다. 이는 자본사회의 병폐 중 하나였던 물신주의를 더 극단적으로 치닫게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사악한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마지막으로, 기존 기득권 세력의 발빠른 대처를 감당할 수 있을까.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은 어쩌면 기존의 정보 세력들이다. 블록체인기술을 이용, 비용절감과 효용의 극대화를 실현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해 내는 거대한 기업들을 과연 개인이나 작은 기업들이 뛰어넘을 수 있을까. 거래 비용의 절감은 과연 누구의 혜택으로 돌아갈 것인가. 권력과 자본을 지닌 기득권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의 혁명은 이미 새로운 시대적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권화와 투명성, 개인의 익명성 원리가 보다 긍정적으로 활용될 영역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여러 단계의 체를 걸러 정제되고 진화할 블록체인 시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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