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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l 19. 2020

뉴파워 시대에서 균형잡기

제러미 하이먼즈ㆍ헨리 팀스, <뉴파워 : 새로운 권력의 탄생> 북리뷰

제목에 붙은 부제 ‘새로운 권력의 탄생’이란 문구만 보면 기존하던 권력에 필적할 만한 또 다른 권력이 어디선가 기세등등하게 흙바람을 일으키며 등장할 것만 같지만, 권력이란 ‘의도한 결과를 얻는 능력’이라는 러셀의 정의와, 권력은 소유하는 대상이 아닌 ‘관계’ 속에서 작동되는 양식이라는 푸코의 관점을 참고해 볼 때, ‘원하는 대로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관계의 메커니즘에 뭔가 새로운 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기존의 구권력이 신분이나 지위, 제도 등을 배후로 비교적 소수의 기득권층의 주도 하에 작동되고 있었다면, 신권력은 보다 다양한 곳에서 보다 다수의 참여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창발적으로 작동된다. 즉, 세상을 바꾸는 힘의 출처와 작동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권력은 주로 유사한 상황이나 취지, 가치관 등을 지닌 이들이 모여 연대의 파동을 형성하며 힘을 확장해 나가기 때문에 그 영향력의 끝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으며 주동자를 찾기란 더더욱 어렵다.  미투운동, 페이션츠라이크미, 스코틀랜드 여학생들, 아이스버킷챌린지 등의 사회운동에서부터 겟업, ISIS의 살인 릴레이와 같은 정치운동, 레딧, 리프트, 라이드 오스틴, 레고 등의 기업 운영전략, 새로운 스타트업 펀드에 이르기까지 저자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롭게 작동되고 있는 신권력의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그 공통적인 속성을 추출해 낸다.


새로운 힘은 다수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물론 이 다수를 하나로 연결하는 매개-공통된 가치관과 목적의식-는 필연적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다수의 참여자들의 행동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ㆍ능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으며, 이는 신권력 메커니즘의 주된 동력이라 할 만하다. 물론 이 새로운 조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뉴미디어,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형성된 네트워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누구나 쉽게 SNS를 이용하고, 동영상을 제작하며, 이를 공유할 수 있게 한 것은 IT기술의 쾌거라 할 만하다.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고 소통하는 데서 나아가 여론을 형성하고 사회적 흐름을 주도하며,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신권력 에너지원으로 기능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중의 위상을 끌어올려 놓았다는 점에서 기술적 진화의 성과를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수의 대중이 움직인다고 그것이 선(善)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저자들 역시 신권력이 ‘증오와 오류를 전파하는 데도 귀재’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온갖 정치적 음모론과 테러 선동, 신권력의 속성을 십분 활용한 이윤 독식 등 반대 칼날의 위용 역시 SNS의 전파력만큼이나 기민하고 강력하다. 온라인 마녀사냥, 가짜뉴스, 자극적 정보의 범람 등에도 신권력 메커니즘은 적용될 수 있다. 저자들은 ‘엘리트 계층의 볼모’가 아닌,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지속적이고 심오한, 다층적인 사회 참여를 대중에게 요한다. 그리고 이를 ‘전층사회(full-stack society)’라 명명한다.


하지만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대중이 갖추어야 할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저자들의 고민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이 의미 있게 기술 플랫폼에 참여하고 일, 건강, 교육,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주인의식을 느끼는 그런 세상 말이다... 문화적,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서 온갖 기관들이 보다 심오하고 보람 있게 참여할 경로를 구축해야 가능하다. 대중의 각성이나 참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로브 빈베르크, 오드리 탱, 헬랜 베번 등 저자들은 전층 사회의 모범적 모델로서 신권력 메커니즘을 긍정적으로 활용한 이들의 사 례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 변화의 주도 세력은 ‘아래로부터’가 아닌 ‘위에서부터’란 점이 아쉽다. 우리는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상호 간에 그리고 사회 전체와 소통하도록 해주는 모델을 구축하고 추구해야 한다.... 중요한 사안에 사람들이 중지를 모으도록 해주는 지속적이고 적절한 경험이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기능을 회복하려면 천사의 편인 사람들이 사용자들에게 탁월한 경험을 제공하고 지속적인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설득력 있는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 결국 ‘천사의 편’인 이들이 나서 주어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들이 ‘신권력 나침반’을 기준으로 분류한 지도자들의 유형 분석과 책의 후반부(10장~12장) 쯤에 이르면 권력 형성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기업 및 리더들을 위한 맞춤 계발서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대중은 여전히 수동적 대상으로 남아 있다. 책을 집필한 저자들의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헷갈리는 지점이다. (뭐, 집필자와 독자의 목적은 다를 수도 있지만)     


‘천사의 편’을 만나지 못한 신권력 시대의 대중은 선동의 우매한 희생양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차라리 네트워크의 망을 벗어나는 편이 현명할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주어졌다면, ‘천사의 편’을 기다리기보다 ‘천사의 편’을 가려내는 혜안, 혹은 오늘날 ‘천사’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지, 그 지향성에 대한 논의가 더욱 분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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