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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큐 Miss Que Jul 03. 2020

장래희망이 은퇴인 예비사위

예비 장인어른이 물었다. "자네, 꿈이 뭔가?"

장인어른: 자네, 꿈이 뭔가?

예비사위: 리타이어입니다. (은퇴입니다.)

장인어른: .........

예비사위 :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은퇴해 예쁜 섬에가서 소영이랑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장인어른:........... 미래의 비전이 무엇인가?

예비사위: 은퇴가 제 비전인데,,,,,

장인어른: 아 앞으로 당장 무얼 하고 먹고 살아갈 생각인가?

예비사위: 네! 돈 버는 일은 빨리 끝내고 은퇴해서 좋아하는 요리 소영이에게 해주며 잘 살고 싶습니다!


동문서답도 이런 동문서답이 없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처음 남편을 선보인 그날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흘러갔다.


평소에 남자 친구 사귀는 내색을 한 번도 안 하던 내가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온다고 하니 부모님은 놀라셨을 것이다. 자라는 동안 "똥파리 옆에는 똥파리만 끓는다" 던 지 "남자를 잘못 만나면 인생을 망치다" 던 지 남자에 관한 별별 잔소리를 다 들었다. 잔소리가 심해질수록 나는 남자 친구의 존재를 더 꽁꽁 숨겼다. 대학시절 10시가 통금이라 10시만 되면 복도식 아파트에 자주색 실크 잠옷 위 카디건을 걸친 엄마가 화난 얼굴로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술을 잔뜩 마시고 다 같이 몰려 우리 집에 가서 자자고 끌고 가던 날,  신이 난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코너를 돌자마자 저 멀리 복도 끝에서 무림 고수 같은 비장한 표정으로 자주색 실크 잠옷을 바람에 휘날리며 나에게 돌진하는 엄마를 마주 했다. 친구들이 코너를 돌자마자 목격한 장면은 엄마의 날아 차기! 우리 엄마가 운동신경이 그렇게 뛰어난 줄 평생 몰랐다. 코너를 돌고있던 친구들은 그 상황을 목격했고, 아직도 우리 엄마의 날아 차기를 아직 기억한다.


그런 보수적인 부모님 밑에 자란 내가, 교포를 예비사위라고 데리고 왔다. 수염은 덥수룩하고, 말투는 어색한데, 부산말은 특히 더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남편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럭저럭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부산 사투리는 스페인어보다 어렵게 들린다고 했다.  아빠는 평소보다 근엄한 표정으로 저녁 식사시간 어색했던 대화를 풀어보려고 계속 노력했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은 아빠는 어색한지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아빠는 갑자기 신문을 펼치시더니 자동차 광고를 예비사위에게 보여준다. 이 광고가 무얼 말하는 것 같은가? 무슨 말을 전달하려고 하는가?  예비사위가 하는 일이 브랜딩이라고 하니 아빠는 그렇게 대화를 이러 나가려고 했던 것 같다. 점점 심오해지는 자리이다. 내가 커트 사인을 보내며 끼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편한 대화를 그냥 재미있게 지켜볼 것을 왜 그렇게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


은퇴라는 남편의 대답, 잘 모르지만 그 맘때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의 빠른 은퇴가 유행 같은 말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살다 보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종종 만났고, 아티클에서도 많이 보였다. 결혼한 지 몇 년 뒤 뉴욕에서 포틀랜드로 이사를 갈 때 포틀랜드라는 도시에 관해 남편과 사전조사를 하던 중 젊은이들의 은퇴지 라는  콘셉트의 뮤직비디오까지 보았다. 포틀랜디아라는 미드 중 일부분이다. 뉴욕에서 살던 남편이 말하는 은퇴와는 차이가 있지만, 이 정도면 그때 은퇴 유행이 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강산이 변해 은퇴라는 개념은 많이 희미해지고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사람들은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오랜만에 비디오 클립을 다시 보니 추억이 샘솟는다.


"90년대의 드림 같은 이상적인 곳이 실제 존재한다."

"젊은이들이 은퇴하는 곳"  

"아침 11시까지 자도 되는 곳"

"타투 잉크가 마르지 않는 곳"

"주류 가게에서 너의 CD를 팔아주는 곳"

"섹시한 여자가 안경을 쓰는 곳"

"광대짓을 해도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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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4 hShMEk1 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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