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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큐 Miss Que Jul 04. 2020

가드닝 박스와 나의 대결

세상에서 제일 비싼 가드닝 박스 

요즘 가드닝 프로젝트가 한참 결실을 맞는 때이다. 


나도 봄에 오이 모종 두 개와 수박씨를 뒷마당에 뿌렸다. 수박은 싹이 나다가 죽었고, 오이 둘 중에 하나는 말라죽었다. 다행히 하나는 지금 꽃을 피웠으나, 오이를 생산할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직접 키운 깻잎도 주고, 자두도 주고, 케일, 상추도 준다. 지난 시절 내가 직접 야채를 수확했던 추억에 빠져본다. 씨를 뿌려 심거나 모종을 사 와 심고, 비료를 뿌려주고 물을 주는 건 쉬운 일이다. 땅을 고르게 갈고, 잡초를 뽑는 기타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많다. 기초 다지기에 노력을 들이지 않고, 대충 씨만 휙 뿌리고 물을 주며 결실을 맺기를 기대했었다. 어디에서 많이 봤던 장면이다. 뭔가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늦었지만 아들의 여름방학이기도 하고 해서 가드닝 박스를 만들어 심기로 했다. 뒷마당 한편에 심으면 되는데 왜 굳이 가드닝 박스를 만들기로 했는지 모르겠다.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나는 열정이 활활 타오른다. 불도저와 같다. 세상 무엇도 나를 막지 못한다. 빨리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한번 쓰고 말 것 같은 비싼 공구들을 샀다. 나무는 제일 튼튼해 보이고 색깔이 이쁜 걸로 골랐다. 씨앗 8팩을 합친 전부는 한국돈으로 20만 원 정도가 들었다. 남편은 그냥 완제품을 사는 게 나았겠다고 한다. 그럴수록 내 의지는 더 활활 불탄다. 하루 만에 뚝딱 90프로 이상을 완성했다. 나무가 아주 조금 부족하다. 작은 조각이 필요함으로 전기톱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전기톱까지 구매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고민은 되고 있다. 


이 가드닝 박스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 남편이 말했었다. 또 그러다 중간에 그만둔다고, 오기가 생기는데, 지금 전기톱 $이라는 큰 장애물이 생겨 올스탑 된 상황이고, 내 열정은 벌써 꺼져간다. 많은 잠재 문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이 구멍을 가진채 마무리할 것인지, 거금을 들여 전기톱을 사거나 빌려 세상에서 제일 비싼 가드닝 박스를 만들 것인지 갈림길에 놓였다. 


나무를 잘라주는 곳에 가져갔더니, 세로로는 못 자르고, 가로로만 자를 수 있다고 한다. 나에게 마무리는 약점이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어 더 이상 가슴 뛰지 않지만, 손톱(hand saw)으로 자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더라도 절대 이 구멍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아들의 여름방학 프로젝트는 온 데 간데없고, 나와 가드닝 박스의 대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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