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을 찾아서' 중에서
나는 8시가 되면 아들을 빨리 재우고 하루 엄마 역할에서 퇴근하고 싶어 진다. 남편은 재울 시간이 되어도 영화를 틀어주며 조금이라도 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오늘은 저녁을 먹으며 영화를 한편 봤는데도 남편은 또 어떤 영화를 틀지 고르고 있었다. 아들과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은 밤인가 보다. 그러던 중 윌 스미스의 '행복을 찾아서'가 눈에 들어와 보기 시작했고, 아들도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늦은 시간까지 영화를 같이 보았다. 이 영화의 명대사는 많은 곳에서 인용되어 익숙했지만, 다시 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처음 봤을 때 못 보고 지나쳤던 장면도 눈에 들어온다.
영화 속 주인공의 가족은 아빠 사업의 난항으로 그리고 계속되는 생활고로 힘들어진다. 그리고 엄마는 가족을 떠났다. 집에서, 모텔에서 차례로 쫓겨난 아빠와 아들은 지하철 화장실에서도 자기도 하고, 노숙시설을 이용하며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아들이 아빠에게 물었다. "엄마가 나 때문에 떠난 거예요?"
아빠가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뭐라고?"
아들이 말했다. " 엄마가 나 때문에 떠난 거예요?"
아빠는 아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준다. " 엄마는 엄마 때문에 떠난 거야!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
엄마가 엄마 때문에 떠났다고? 내 예상과 다른 답이다. 나는 아빠 본인 때문에 떠났다고 말할 줄 알았다. 엄마가 떠날 때 무능한 아빠를 탓하며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빠는 엄마는 엄마 문제 때문에 떠났다고 한다. 엄마는 엄마 때문에 떠난 게 맞았다. 이 장면은 주인공 아빠가 얼마나 자존감 높은 사람인지 보여준다. 부인의 비난과 버림에도, 거리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절망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자책에 빠져있지 않고, 자기를 믿고, 끝까지 노력한다.
아들아! 그 누구도 너에게 할 수없다고 말 못 하게 해야 해. 그게 나라고 하더라도!
꿈을 가져. 그리고 너의 꿈을 꼭 지켜!
사람들은 스스로는 하지 못하면서 '넌 할 수 없다' 고 말하고 싶어 하거든.
자네는 셔츠도 입지 않고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을 내가 고용한다면 뭐라고 말하겠나?
그가 근사한 바지를 입은 게 분명하군요.
보는 것처럼 쉽던가?
아니요, 전혀요.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도 지금 힘든 시간이 다가왔다. 앞으로의 상황은 안개로 뒤덮인 듯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영화를 보니 한 장면 한 장면 다 새롭게 보인다. 영화 곳곳에서 주인공의 초긍정 마인드를 엿볼 수 있었다. 오늘 이 영화를 통해 한 수 배워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