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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큐 Miss Que Aug 10. 2020

세상 어딜 가서 살아도 좋으니, 남편이 하는 일만잘되길

어릴 때 마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다녔다. 초등학교 2학년에 부산으로 온 것을 마지막으로 쭉 대학까지 부산에서 다녔다. 그런데 이사를 많이 다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다. 친구들을 보며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꼈던것같다. 초등학교 때 한동네에서 자라 소꿉친구가 많은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고, 한동네 오래 살면서 엄마들끼리 친한 친구들도 부러웠다.


그런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떠나고 싶어 졌다. 내가 살던 곳을 떠나면 뭔가 특별하고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상하이에서 2년 가까이 일을 하고, 서울에서 1년 일을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신혼을 뉴욕에서 시작했다. 여기까지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을 즐겼다.  뉴욕에서 오레곤주 포틀랜드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남편의 일로 내가 뿌리내린 그곳을 떠나 캘리포니아 주 엘에이에서 2년, 지금은 산호세에서 2년째 거주 중이다.


마산> 서울> 부산> 영국> 상하이> 서울> 뉴욕> 포틀랜드> 엘에이> 산호세


내가 1년 이상 살았던 도시들, 참 이사도 많이 다니는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적고 보니 별로 많지도 않다. 이 곳 산호세는 실리콘벨리 회사들이 모여있는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이사의 달인들이 많다. 미국에서만 열 번 넘게 이사 다녔다는 사람도 보인다.  


지금 내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오기 전까지  (T. Kinder, Kinder, 1st Grade 과정동안) 3개의 미국 초등학교를 경험했다. 같은 도시에 산다고 이사를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이제는 정착하고 싶고, 아들에게 내가 그렇게 원했던 소꿉친구, 고향 친구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몇 주 전 남편이 뜬끔없이 묻는다. "싱가포르에 갈래?" 이건 또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이곳에 남아서 초등학교만이라도 이 학교에서 졸업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표시를 분명히 했는데도, 계속 물어본다. 남편의 커리어에 좋은 선택을 하도록 지지해주고 싶지만, 이제는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베트남에 살고 있는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싱가포르에 대해서도 묻고, 하소연도 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베트남에는 아빠의 직장 따라 이사 다니는 경우가 흔하다고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유난이라고 했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그래!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진행하던 일에 차질이 생겼다. 싱가포르 일은 무산이 되었다. 내가 가기 싫다고 해서 잘못된 건 분명 아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먹고 사니즘이 뭔지! 세상 어딜 가서 살아도 좋으니, 남편이 하는 일만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사를 많이 다니니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 가족이 주위에 없으니, 이사한 지역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 위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있다. 세상천지에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만 그들도 떠돌이 철새 신세라 금방 떠나버리기도 한다. 이런 부분이 나에게 혼란을 가져다준 걸까? 아니면 40이 다 되어가니 중년의 위기라도 온 걸까?


한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들은 기억이 난다. "태어나서 자란 곳에서 아직 살고 있는 사람은 손들 들어보세요" 100명 정도가 안 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중 딱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물론 이 지역의 특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다음 질문은 " 부모님은 태어나서 자란 곳에서 아직 살고 계신가요?" 그다음은 조부모님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아직 살고 있는지 였다.


요즘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태어나서 자란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문화와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뒤섞여 일하고,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 내 부모님이 그리고  부모님의 부모님이 해왔던 검증된 방식으로 산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많은 곳에서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전통적인 사회구조에서 벗어나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선택과 자유가 주어졌다. 나는 이 자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걸까? 새로운 주거형태, 새로운 양육방식, 새로운 부부관계,  이 넘치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고, 대화해서 내가 원하는 관계가, 내가 원하는 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혼란을 줄일 수가 있다. 선택과 자유를 가진 대가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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