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큐 Miss Que Aug 13. 2020

옛날옛적에 앨리스라는 개가 살았어

아톰

아톰이 늙어간다.

아톰이 우리 집에 온 지 언 11년이 다되어간다. 엄마가 미국으로 와서 산 시간과 같아. 엄마 외투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아서 어릴 때에는 주머니에 넣고 다녔어. 아톰은 처음부터 아주 예민하고 소심한 강아지였어. 보스락 봉지 소리만 나도 천둥번개가 치는 듯 눈치를 보며 온몸을 웅크렸지. 엄마는 회사를 마치면 집 근처 뉴욕 매디스 스퀘어 개 공원에 아톰을 자주 데리고 갔었어. 쉐익쉐익 버거가 처음 유명해진 곳이지. 육즙이 좔좔 흐르는 패티는 아톰도 좋아했더랬지. 어린 아톰은 그때까지 앉아서 소변을 보다가, 공원에서 다른 남자 개들이 다리를 힘차게 촥! 올리고 소변보는 걸 본 날부터 다리를 들고 소변을 보기 시작했어. 얼마나 힘차게 다리를 드는지 뒤로 넘어갈 것처럼 다리를 들어댔었지. 그런데 요즘 들어 아톰은 다시 앉아서 소변을 보네. 부쩍 잠도 많아졌어. 눈에도 생기가 덜하고. 내가 불편하게 앉으면 한 번도 안 내던 짜증을 내며 이빨을 보이기도 하네. 아톰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많이 늙어 가나 봐. 우리 아톰한테 더 잘해주자.


옛날 옛적에 엄마가 너 만할 때에, 아니 너보다 한 살 정도 많았을 때 우리 집에 앨리스라는 하얀 강아지가 처음 왔어. 엄마의 엄마는 워킹맘이어서, 엄마는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았어. 아마 그래서 절대 안 된다던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 학교를 마치고 조용한 집에 도착하면, 혼자 목에 걸린 열쇠 목걸이로 문을 따고 들어와 티브이를 켰었어. 티브이를 보지 않아도 그냥 켜 놨어. 시끌시끌한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우는 게 좋았거든. 앨리스가 오고 난 후로 티브이를 켜는 날이 줄어들었어. 엄마는 앨리스와 많은 대화를 했어.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 앨리스는 처음부터 성질이 아주 고약한 개였어. 7년을 함께 한 어느 날 학교를 다녀왔는데 그날은 엄마의 엄마가 집에 있었어. 밥을 먹고 언제나처럼 마지막 한입은 엄마의 엄마 몰래 식탁 밑으로 앨리스에게 몰래 넘겨줬어. 그런데 앨리스가 내 손위에 밥을 먹지 않는 거야. 몇 번을 부르고 기다려도 오지 않아, 앨리스를 부르며 찾기 시작했어. 학교를 다녀와 너무 배가 고파 앨리스와 눈도 맞추지않고 밥부터 먹었던 거야. 한참을 찾다가 엄마의 엄마를 봤는데, 눈 주위가 시뻘게진 엄마는 앨리스가 우리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어. 무슨 뜻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아파트 계단을 한숨에 뛰어내려 가 앨리스를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찾기 시작했지. 주차장 차 밑, 놀이터 곳곳을 다 뒤졌어. 앨리스는 원래 집에서 도망을 잘 나 가거든. 언제나 처럼 찾을수 있을줄 알았어. 한참이 지난 후에 멀리서 엄마의 아빠, 엄마, 오빠가 다가와서 앨리스는 하늘나라에 갔다고 여기서 찾을 수 없다고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말했어.



요즘 자기 전 아이에게 매일 옛날이야기를 해준다. 재미있는 동화책이나 팟캐스트, 열광하던 드래건 오디오 북은 이제 다 시시해졌나보다. 내가 하는 어설픈 스토리라인, 한번 이상 반복해서 들었던  뻔한 이야기인데도 아이는 재미있게 듣고 또 해달라고 조른다.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내 추억도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어젯 저녁은 조금 슬픈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요즘은 오랫동안 건강문제로 고생했던 나의 아버지가 급격히 쇠약해지는 게 보여 슬프다. 나이 들어감과 병 그리고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던 요즘이다.


*사진은 영화 Big Fish에서 주인공의 임종 순간을 그의 아들이 아름다운 스토리로 꾸며 나가는 장면이다  

영화 'BIG FISH'  마지막 장면


작가의 이전글 홈스쿨링 까짓것? 나는 절대 못할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